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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May 22. 2022

초록과 죽음

<1917>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언젠가 같이 근무했던 동갑내기 동료가 암 말기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어른들이 딱 좋아하는 인상의 후덕하고 화사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며 지금은 걷지도 못한다는 소식이 쉽게 믿기지가 않는다. 유난히 화사하고 건강했던 어쨌든 죽음은 느닷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죽음처럼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끝까지 자신과 상관없는 걸로 모른 체하며 잘 살아간다.

십여 전쯤에 갑자기 이상한 사이클에 휘말려 매일을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병원에 가면 뚜렷한 것도 없는데 실제 살이 10여 킬로나 빠졌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냥 동네를 돌아다니는 모든 사람이 다 부러웠다. 별 일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밤만 되면 블랙홀에 빠지듯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상태가 되어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리고 가장 평범한 인간의 도리를 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막 알기 시작했던 하나님께.

시부모님을 진심으로 봉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밑도 끝도 없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가장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도리를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절박한 순간에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런 것만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마치 부족사회에서 살 듯 가장 순리적인 삶을 살고 싶어 졌달까.


몇 년 전 <1917> 영화를 봤을 때 그 영화에서 나오던 노래에 영혼이 멈춘 듯한 진공의 순간을 느낀 적이 있다. 젊은 병사들이 곧 시작될 전투를 앞두고 잠시 숲 속에 앉아 어떤 한 병사의 노래를 듣고 있는 장면이었다.

< I’m a poor wayfaring stranger.>   나는 떠도는 비통한 나그네    


  - 나는 아버지를 보러 그곳에 갈 거예요. I'm going there to see my father -

  - 나는 어머니를 보러 집으로 갈 거예요. I'm going home to see my mother -  

가사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그들이 그 어둑어둑하고 습한 숲 속에서 전투태세를 한 채로 I'm going to see my father, mother이라는 가사를 들을 때, 자신이 곧 죽을지도 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 처연함에.

그리고 그 영화에서 나오던 노래는 너무 아름다웠다. 익히 아는 멜로디였지만 그 장면에서 그 노래가 그렇게 절절하게 들릴 줄일야…

가사를 보니 가사 내용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본향을 향해 간다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냥 그 영화의 장면 속에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실제로 영화에서 father, mother이란 단어가 너무 선명하게 가슴에 꽂힌다.

 그 전투는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전하는 전령이 막 당도하는지도 모르고 그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그 노래를 들을 때 그들은 얼마나 사무치게 자기 집의 그 허름한 방이, 희미한 등불일지라도 그 온기가 그리웠을까. 그리고 그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사무쳤을까.

세상 무심하던 우리 아들도 군대를 가서 첫 통화를 할 때 엄마 하며 부를 때 북받쳤었다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별 일이 없는 세상, 가장 평범한 저녁을, 아무 말 없을지라도 그냥 곁에 있을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나는 그 앳된 청년 군인들이 숲 속에서 완전무장한 채로 그 노래를 들었다는 것에 지금도 다시 떠올리면 진저리가 쳐진다. 실상 그 노래 가사는 그 장면에서는 더 비극적이다. 요단강을 건너 아버지 어머니를 보러 간다고 하고 있으니. 요단강을 건넌다는것은 죽음을 의미하니까. 물론 기독교적 의미로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이야기 하지만.


I'm traveling through this world of woe. 나는 이 비통한 세상을 떠돌고 있어요.

Yet there's no sickness, toil or danger in that bright land to which I go.

내가 가는 환한 땅에는 아픔도 고통도 위험도 없어요.

I'm going there to see my father.  나는 아버지를 보러 그곳에 갈 거예요.

I'm going there no more to roam. 더 이상 헤메이지 않아도 되는 곳

I'm only going over Jordon. 요단강을 건너서

I'm only going over home. 난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I'm going home to see my mother. 나는 어머니를 보러 집으로 갈 거예요.

And all my loved one who've gone on 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있는 곳.

I'm only going over Jordon.    요단강을 건너서

I'm only going over home.      나는 집으로 갈 거예요.


5월의 길어진 해가 나뭇잎들 사이로 지고 있다. 붉은색으로 물들며.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5월의 토요일 오후. 바람만이 너훌 너훌 불어대는 이 늦은 오후.

이 시간이 절체절명의 아름다움이란 걸 순간 깨닫는다.

주섬 주섬 짐을 싸서 저 해지는 거리로, 바람 속으로 흔들리는 초록 나뭇잎 속으로 걸어가야겠다.

가서 오늘 끓여놓으셨다는 엄마의 바지락 국을, 열무김치를 떨림으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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