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는 울고…..
여름이 가장 성성해진 요즘이다. 그래서 盛夏라고 써본다.
나는 요즘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여름을 견디면서 느끼는 희열….
내 글 어딘가에도 나와있지만 나는 추운 것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다. 겨울왕국에서 사는 꿈을 꿀 정도로….
여름엔 거의 칩거에 들어가다시피 한다.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질 않는다.
퇴근시간 지나도 기다렸다가 해가 지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나가질 않는다.
그런데 밤에 에어컨을 틀지 않고 견딘다. 이 더위와 여름의 모든 것을…
오늘 삼십 도를 훨씬 웃도는 기온인데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놓고 앞뒤로 문을 열어놓은 후, 온 세상을 진동하는 매미소리와 잡다한 소음 속에 그저 있는다.
왜 이 별것도 아닌 시간이 희열을 주지? 단순히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인가?
거실 블라인드를 평소보다 좀 낮게 내리고 소파에 모로 누워 책을 뒤적인다. 이 책 보다 저 책 보다….
딱 둘리만화의 고길동 포즈다.
더우니 웬만하면 쓸데없이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또 정수기 냉수를 받아 차가운 기가 가시길 기다렸다가 마신다. 차가운 물에 얼음까지 띄워 마시던 내가 이러다니…. 체온이 내려갔을까?
대학 다닐 때도 여름이면 어두컴컴한 자취방에서 창밖을 보며 어서 여름이 저 창밖으로 지나가기를 바랐던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이를 악물고 견뎠다. 오죽했으면 강렬한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까뮈의 이방인 뫼르소를 직관적으로 공감했을까.
뜨겁고 강렬한 햇빛이 내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고, 밖이 뜨겁고 환할수록 내가 더 창백해지고 파리해져 가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내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걸까.
온전히 여름 안에 존재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있다.
오늘 이런 시구절을 읽었다.
-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
세사르 바예호, <여름>
지금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우렁우렁 한 매미소리.
그 매미들도 온 마음을 다해 이 여름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애쓰며 살아냈을까... 땅속에서 기다렸을까....
저 푸르게 제 잎사귀 초록을 다해낸 나무 이파리들도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 짙어졌을까.
굵게 후득이고 내리치는 여름 비는 어느 먼먼 하늘 구름 속에서부터 온 마음을 다해 모와 왔을까....
온 마음을 다해 이 여름에 당도한 모든 것들 앞에 나는 그저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야 하리.
나 또한 온 마음을 다해 여기까지 오느라고, 늙..었..다.
그래서 이제 여름의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찬 물이 뭉근해지도록 기다리기도 한다.
성하盛夏의 시간이다.
우리 모두 성성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