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긴 비의 행렬.
자다가 잠이 깨어 뒤척이다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드러누워 창 밖으로 흔들리는 어두운 나무 실루엣을 바라본다.
어둡고 안경을 끼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가 길게 천천히 흔들리고 빗소리가 후드득 새벽을 채운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냥 가만히 누워 어둠 속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이 오랜만이다. 아주 오랜만.
마치 유년시절에나 해보고 안 해본 일 같이 느껴진다.
뭔가를 안 하고 있는 순간이 없는 것 같다. 요즘은. 핸드폰 때문에.....
잠시 화장실 가는 순간에도 뭔가를 들여다보면서 간다. 뭔가에 잠식되어가는 시간들이다.
그 뭔가는 너무나 하찮고 부박한 파편들이다. 세상의 파편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 새벽에 나서면 꼭 새소리를 듣게 된다.
인도를 여행할 때였나. 그 이른 아침에 여기저기서 들리던 새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새벽 4시마다 몸을 털고 일어나 어딘가로 떠났던 그때, 희부연 아침 속에 항상 새가 울었다.
새들도 밤에는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지..
오후에 산책하다 보면 꼭 갑자기 바람이 불고 새가 우는 시간대가 있다. 아예 어둠이 내리면 바람이 멎고 새도 조용해지는데 꼭 저녁으로 바뀌는 즈음에 바람이 떨리고 새가 우는 잠깐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글을 쓰다 말고 베란다로 나가서 창을 열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맑고 예쁜 소리다. 참 청아한 소리다.
아직 어둡고 비가 와서 마음은 가라앉는 새벽인데 새소리는 뭔지 모를 설레임을 준다.
이렇게 푸르게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면 꼭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 새벽도 되기 전에 어스레한 야음을 더듬으며 떠나는 몸서리나는 출발.
영혼과 육체의 전율. 어지러움. 가지고 갈 것이 또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메날크, 출발할 때 그렇게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그는 대답한다 -죽음의 전주곡 같은 맛이라고.
그렇다. 무슨 다른 것을 보기 위하여서라기보다 그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닌 모든 것과 이별을 하자는 것뿐이다.
아아! 나타나엘이여,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을 우리는 떨쳐 버릴 수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사랑으로 -사랑과 기대와 희망(이것들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소유이거늘) -
그득히 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헐벗어 버리지 못하는 넋이여.
아아! 거기서도 살면 어엿이 살 수도 있었을 그 모든 고장들! 풍성한 행복의 고장. 일이 고된 농장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밭일들. 피로, 수면의 무한한 정일靜逸....
떠나자!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닥치는 대로 발길을 멈추자.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
역시 좋다. 평생을 두고 마음에 남는 글귀들이 있다.
나는 이 글만 보면 새벽의 어스레한 야음과 푸른 새벽 속의 몸서리나는 출발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다시 시간 속으로 삶 속으로 떠나는 출발을 하고 싶어 진다.
떠나서 아무 곳에서나 닥치는 대로 발길을 멈추고 싶은 욕망. 살면 어엿이 살 수도 있을 어떤 곳에서....
그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닌 모든 것들과 이별하고 마침내 사랑만으로 채우고 떠날 수 있는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닌 것들을 추려서 하나씩 버리는 여름 속으로 가자.
그리하여 찬바람이 불 때면 마침내 홀가분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