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 계획을 세워놨는데 먼저 잡혀있던 계획들도 꼬이고 아이들이 다 집에 내려와서 여행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었다.
4인 가족이 아파트에서 일주일쯤 사니 한 사람쯤 빠져 줘야 할 것 같아 그냥 가방 들고 나왔다.
내가 사는 남도 끄트머리 도시에서 양양까지 가는 비행기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곳에서 강원도는 언젠가 말했지만 심리적으로 외국보다 먼 곳이다.
오후 비행기라 강릉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져 아침 일찍 ktx 타고 서울로 해서 기차 타고 가려했지만, 마음이 바뀌어 바로 양양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까지 가면서 땅을 더듬으며 가고 싶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바로 대번에 강원도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Fly to the 양양. 아주 낯선 도시다 내게는…왜 이름이 양양일까.
일부러 창가 자리에 앉아 우리나라 땅을 다 훑어보며 왔다. 구름이 많이 끼어있는 날이기는 했지만.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다니지 않는지라 비행기만 타도 여행기분이 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강문해변 게스트 하우스 5층 로비는 글을 읽거나 쓰기 딱 좋은 장소이고 지금 같은 밤에는 젊은이들이 맥주 마시며 한담 나누기 좋은 곳이다. 아마 이 젊은이들은 낮에 다 바닷가에서 놀거나 파도를 탔을 것이다.
오늘 강릉은 무려 35도까지 올랐다. 그 35도를 찍은 한낮에 나는 강릉시내를 걸어 다녔다.
강문해변에서 경포대까지 걸어갔다가 테라로사 경포점까지 거의 한 시간 넘게 걸었다. 다른 도시를 여행 가면 주로 걸어 다니기는 하지만
이 염천에 오늘은 좀 심했다. 온몸이 화상을 입는 듯 화끈거렸다.
걸을 때 FM방송을 듣는데 마침 윤심덕에 대해 나왔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 뜨거운 한 낮을 걷는데, 오래된 레코드라 지지직거리며 끓는 소리와 윤심덕의 이상한 바이브레이션도 뭔가 끓는 듯한 소리로 들렸고 내가 걷는 보도는 너무 뜨거웠고 그 시간 자체가 너무 기이 하게 느껴졌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네….
윤심덕의 <사의 찬미> 노래가 그렇게 긴 줄 몰랐다. 거의 4절까지나 되는 듯하다. 그 노래의 원곡인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과 윤심덕이 부르는 슈베르트 <보리수>까지 연이어 다 들었다. 내가 대학 막 입학했을 때 <겨울나그네>란 영화가 나왔었는데, 그때는 그저 청순하기만 했던 남자 여자 주인공이 유리알같이 투명한 사랑을 하던 영화가 유행이던 시절이었다. 그 영화 속 청년 강석우가 자전거를 타고 가을 낙엽이 휘날리던 교정을 지나갈 때 슈베르트의 <보리수>가 흘러나왔는데 그때 그 장면이 너무 푸르른 느낌이어서 유난히 깊게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 푸르른 노래가 태양이 끓어오르는 여름 한낮에 지글지글 끓는 목소리로 윤심덕이 부르는 걸 듣자니 정말 이상했다. 더워서 정신이 몽롱해진 채로 듣고 가자니 독일 가곡을 듣는 건지 누군가의 한탄 서린 창가락을 듣는 건지 혼미해졌다.
윤심덕이 그의 연인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날려 죽었다는 걸로 너무 유명해져서 그 시절에 이례적으로 <사의 찬미> 음반이 10만 장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 음반을 듣기 위해 축음기까지 많이 팔려서 그때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의 물꼬가 많이 트였다고 한다. 실상 살아서는 윤심덕이 음악적으로 별로 성공을 거둔 것 같지 않았는데 마치 유언처럼 남긴 그 음반이 죽음에 얽힌 스토리 때문에 사람들의 흥미를 끈 것이다.
윤심덕의 창법이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먹혔을 리가 없다. 그래서 국비로 처음 음대를 나온 성악가였지만 생계를 해결하기가 어려워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 성악을 전공한 일본 유학까지 마친 신식 여인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있고, 돈은 벌기 어렵고 당시 천하게 여겨졌던 연극배우까지 하기로 맘먹었는데 연기도 안되고…. 총체적으로 절망했을 윤심덕이 상상된다. <사의 찬미> 가사는 윤심덕이 붙였다고 하는데 정말 암담하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상당히 원초적인 분위기의 곡이다. 멜로디는 애잔한 단조 가락인데 밑에서 받쳐주는 리듬은 경쾌한 왈츠다. 슬라브 쪽 특유의 분위기다.
이래 저래 오늘 이 음악은, 강릉의 뜨거운 한낮에 이상한 장면이 되었다.
오후 다시 바닷가로 돌아와서 소나무 밑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요즘 내가 계속 듣는 Swan Magwire의 노래를 다 들었다.
늦은 오후 바닷바람이 얼마나 좋던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문득 물이 얼마나 가득한지 바다의 크기를 질량으로 느껴본다. 충만한 바다.
이 충만하고 시원한 바다가 100여 년 전 윤심덕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묻어버리고 싶은 절망의 바다로 넘실거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