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글이 오기를 ( 그 지인과 함께 하는 밴드 표지가 오로라 사진이다. 아마 네이버 밴드에서 무작위로 주는 표지일 것이다.)
오로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에 맞추어 오로라가 춤을 춘다는 내용이었다. 그럴 수가… 그럴 리가…
몇 년 전에 캐나다 yellowknife란 곳엘 간 적이 있다. 오로라를 보겠다고.
북극에 가깝게 캐나다에서 아주 높은 위도에 있는 곳이다. 오로라를 보는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밤이면 오로라 헌팅(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다니고, 낮에는 작은 소읍 같은 그 도시를 걸어 다녔다. 나는 이상하게 오로라보다도 그 촌 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남는다.
10월 초였는데 겨울 옷을 단단히 입고 다녔다. 대기가 맑아서 그런지 낡은 핸드폰이라도 들이대기만 하면 정말 사진이 환상적으로 나왔다.
특히 바다 색깔이 추위가 녹아든 파란색이었다.
원주민(이누이트, 요즘은 에스키모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들이 주로 사는 곳이어서 거의 동양인에 가까운 외모의 사람들이 이미 낮부터 많이 술에 취해 돌아다녔다.
원주민이나 인디언들의 어떤 신비하고 영적인 분위기는 우리가 가진 막연한 환상이고 막상 현실에서는 처참하게 버려진듯한 삶의 황폐함일 때가 많다. 그 땅이 사람들 살기가 너무 척박해서인지 땅도 뭔가 유폐된 것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3일을 잡고 가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 해서 3일을 잡고 갔는데 실상 10월은 썩 확률이 좋지 않은 때였다.
첫날밤은 미니버스에 서양인들이랑 여럿 같이 타고 오로라를 볼 만한 스팟을 찾아 계속 움직여 다녔다. 결국 새벽 두 시까지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문제는 두 번째 날 밤. 호텔로 픽업 온 미니버스를 타고 보니 세상에 나와 내 일행 즉 동양 여자 두 명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버스는 지도에도 잡히지 않을 듯한 곳을, 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밤을 헤매며 버스 키만큼 풀이 가득한 수풀 속으로 자꾸 들어갔다. 그 어두운 밤만큼이나 무서웠던 것은 아무 말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 까만 피부색의 운전사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오로라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무서운 사람이 우리를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로 데려가 팔아버릴 것 같았다. 어딘가로 계속 전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곧 데리고 갈 테니 준비해라 뭐…이런 소리를 하는 것 같고.
나보다 한참 나이 어린 동행이 가진 아이폰으로 계속 우리가 지나는 곳을 추적해 보라 했다. 그녀가 가진 아이폰으로는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가 저장되며 보이는데, 건물 하나 지명하나 쓰여있지 않은 지도의 어떤 공백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계속 두려움과 불안에 떠느니 가장 두려움을 주고 있는 그 실체와 맞닥뜨리기로 했다.
운전사 바로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짧은 영어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떤 사람들이고…. 그런데 오로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늘 안 보일 것 같으면 그냥 호텔로 데려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당신도 일찍 쉬고 좋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 운전사는 계속 어딘가로 물어보고 타진해가며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간간히 자기 이야기를 해줬다.
꽤 나이가 든 사람이었는데 콩코에선가 캐나다로 이민 왔다고 했다. 대학교수를 했던 사람인데 캐나다에서 돈을 벌려고 옮겨 다니다가 그 북쪽 땅 끝까지 흘러온 사람이었고 가족은 토론토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깊이 있고 품위가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힘들여 고생해서 번 돈으로 자식들이 대학공부를 하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캐나다에서 보는 서양인들의 개인주의적인 삶이 안타까워 자신은 가끔 자기나라 음식을 요리해 이웃들에게 돌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가 표현하는 대로 진짜 겨울에는 ‘야만적으로 춥다는 곳'에서 그렇게 돈을 벌며 살아가는 그에게 쨘한마음이 들었다. 아프리카 이민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그때 우리가 했던 이야기 내용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밤, 나는 이 운전사 알리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꽤나 엘리트였을 사람이 다른 나라로 옮겨와서 가장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 뭉클했다. 결국 어느 호숫가쯤에 차를 내리고 블랙홀 같은, 오로라가 나타날 리 없는 북쪽의 끝 무렵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 몸서리나는 추위를 맛봤다.
오래 서있을 수가 없어 금방 차에 올랐고, 너무 성실한 알리는 기어이 여기저기 더 버스로 기웃거리다 결국 호텔로 우리를 다시 데려다줬다.
그다음 날은 자기가 다시 올지 어쩔지 모른다고 하더니만, 낮에 우리가 늦잠 자고 일어나 다시 그 도시를 어슬렁 거리려 막 나가려 할 때 호텔로 찾아왔다. 그날 밤에 자기가 안 온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일부러 들른 것이다. 알리가 입고 있던 그 낡은 잠바엔 추위가 가득했다. 난 알리와 인사하며 눈물이 날 뻔했다.
세 번째 밤에 우리는 아예 오로라 관광객을 위해지어 놓은 오로라 빌리지에 가서 진짜로 오로라를 봤다.
그런데 지금 나는 항상 그때를 생각하면 오로라보다도 알리가 생각난다. 그 추운 한기를 머금고 다니듯 한 알리의 모습과 그 낮은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때 메일 주소를 내가 건네줘서 알리와 몇 번 메일을 주고받았다. 어디서든 신의 축복이 깃든 인생을 살기 바란다고 했던 그의 마지막 문장이 기억난다.
나는 지금도 그 추운 곳에 알리가 사는지 궁금하다. 제발 돈을 벌어 이제 토론토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면 좋겠다.
오로라는 신기하기는 했다.
내가 본 오로라는 마치 하늘 너머 누군가가 살짝 커튼을 제치고 손에 든 불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오로라를 그냥 light라고만 불렀다.
그 하늘 위 커튼을 살짝 여는 손. 그렇게 무한한 우주가 한 공간처럼 느껴지게 하는 신비함.
측정할 수 없이 크고 광활한 우주가 나를 감싸는 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지고 춤추는 오로라 너머에 누군가 아름답고 따스한 마음으로 빛을 보내주고 있는 존재가 있는 것 같은….
그런 곳이 있다. 이 지구상 위 somewhere……
삼각대를 대지 않고 대충 핸드폰으로 찍으면 이렇게밖에 안 나온다. 나 같은 어리바리는 당연히 이렇게 찍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