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22
어디선가 새로운 생명이 나타났다. 당연히 지구상에 매일매일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도착할 것이다.
멀리 살아서 얼굴 보기 힘든 조카가 아기를 낳았다. 멀리 사니 정말 이제 얼굴 볼 날이 드물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해, 어찌어찌 간신히 결혼식 날을 잡아서 식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친정 쪽으로 첫 조카라서 뭐든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초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더니 결국 결혼도 처음으로 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사진을 보니 여러 감정이 스민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부딪힐 공기를 어떻게 호흡하는지, 이 작은 아기가 그 변화를 어떻게 견디는지 별 희한한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예방주사를 맞히러 병원으로 데리고 가던 날, 세상의 공기가 그렇게 탁하다는 것에 놀랐다. 그때가 벌써 삼십여 년 전 일인데…
매일 같이 내가 출퇴근을 하던 터널을 지날 일이 심하게 걱정이 되었다. 터널은 더 공기가 안 좋은데 그 구간을 이 새로운 생명과 함께 지나야 하다니…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세상은 언제나 너무 헌 것이다. 이 헐고 헌 세상에 매일 같이 새로운 생명들이 도착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추석 연휴에 졸면서 가족이랑 같이 보던 소울이란 애니메이션 영화가 생각난다.
그곳에는 매일 같이 지구로 향해서 출발하는 영혼들이 있다. 그중 지구로 가지 않기 위해 별별 짓을 다 하며 버티는 영혼이 하나 있었다.
영혼들은 가슴에 불꽃이라 하는 배지가 생겨야 지구로 태어날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그 22호라는 영혼은 그 어떤 것에도 냉소적이어서 흥미를 보이는 것이 없다. 지금까지 인류의 스승이라 할 만한 존재들이 모두 그 영혼의 멘토를 했지만 다들 손들고 떠났다. 그 누구도 그 22호 영혼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켜 줄 수가 없었다.
졸면서 본 영화라 정확하게 캐치한 건지 모르겠지만 마치 지구에 오기 전 모든 영혼들은 이미 뭔가에 특화된 불꽃을 가져야만 되는 것 같았다.
음악이랄지 과학이랄지 혹은 그 어떤 다른 분야에서든 그 영혼을 기쁘게 하거나 설레게 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불꽃 배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 영화대로 하자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뭔가 어느 영역에 불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반박하고 싶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기도 하다.
'네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네 가슴이 원하는 것을 해라.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것을 해라…'
이런 소리들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절망하게도 한다.
특히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자면 참 너무 막연하고 이상적이라서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딱히 좋아서 미친 듯이가 아니라 어찌어찌하다 보니 하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뭔가 계속하다 보면 그 일이 받아들여지고 그 일 때문에 생겨나는 성격이나 특성으로 그 사람의 퍼스낼리티가 형성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한때 나도 젊었을 때 본능, 직관 뭐 이런 흐름을 꽤나 따랐던 사람인지라 네 가슴의 소리를 따라라 이런 것에 반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왠지 선뜻 그 소리가 안 나온다.
차라리 견디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제는 인내의 힘에서 지어지는 견고함을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인내 속에서 작은 기쁨들을 만나지기를 꿈꾼다.
그 작은 기쁨들이 많아져서 긴 흐름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기쁨을 따라가라, 생생히 살아라' 이런 말들이 끝까지 가주지 못하는 그 막다른 곳을 알기에, 늘 흔들리고 변하는 인간의 감정과 느낌이라는 게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기에 선뜻 네 마음의 소리를 따르라고 하지 못하겠다.
내가 살아온 방향이 내 마음의 소리를 따른 것이었는지 어찌어찌하다 보니 살아진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영화로 돌아와 그 영화 스토리대로라면 나는 어떤 불꽃 배지를 달고 이 지구에 왔을까?
음악일까? 문학일까? 남들이 가끔 좋다고 칭찬해주는 목소리일까? 그걸로 무얼 할까?
나만 기쁘면 되나?
지구에 품고 온 그 불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지구에 정말 개미 눈꼽 만큼이라도 빛을 밝히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