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에 이는 바람

님이 오시는지

by somewhere

아침 FM을 틀었더니 <님이 오시는지>라는 가곡이 흘러나온다.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 달 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 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취일까 /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맘은 외로워 한없이 떠돌고 /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 달 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 꽃향기 헤치고 님이 오시는가

내 맘은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중학교 때 저 노래를 듣고 너무 아름다워서 가사를 여러 번 적고 또 적으며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달 빛 먼길 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이런 가사들이 마치 그림처럼 내 머릿속에 펼쳐졌었다.

글이 이렇게 시각적 이미지를 불러올 때 그 어떤 실체적 그림보다 더 깊게 스민다.

그즈음 안개꽃이란 것이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했다. 어쩜 그렇게 안개 같은 꽃이 있을 수 있는지....

우슬 우슬 점점이 달려 하늘거리던 안개꽃, 그런 안개꽃이 가득 흔들리는 수풀가에서 새벽이 오도록 서성이는 누군가를 상상했었던 것 같다.


창을 내다보니 개천 둑에 무리로 피어있던 코스모스가 이제 많이 희미해졌다.

지난주 코스모스는 마치 '보세요. 이 우주가 얼마나 찬란히 아름다운지... 그래서 우리가 코스모스예요'

라고 친절히 흔들리며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을이라 해도 낮엔 햇살이 뜨겁고 아직 실내에서는 에어컨을 돌려야 쾌적했던 초가을이 코스모스와 같이 지나간다. 클림프 <키스> 같은 황금의 가을이 살짝 그 빛의 농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2022. 10.04 점심때


마치 보물찾기 하듯 여기저기 끼워져 있는 10월의 첫 휴일에 마지막 남은 잔재를 치우듯 끝까지 두었던 여름 원피스 몇 개를 씻어서 널었다. 이제 그 옷들만 걷어들이면 여름옷은 완전히 장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일본 소설 제목이 너무 좋다.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나는 여름을 서랍 속에 개켜 넣고 문을 닫았는데 이 책 속 어딘가엔 여름이 오래 남아 있다.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릴 때 그 책에서 봤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커피가루가 중얼거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강한 향내가 떠돈다. 아침 냄새다.>

물이 커피를 통과해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바닷물이 모래틈 사이로 스밀 때 나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커피가 중얼거리는 것 같은 소리라고 하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실상 나는 성질이 급해서 물이 커피를 통과해 나가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한번 부어놓고 잠깐 다른 일 하고 와서 다시 한번 붓고 할 때가 많다.

이제 아침마다 그 앞에 지켜 서서 커피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한번 들어봐야겠다. 이제 가을이 조금씩 깊어갈 거라고 물은 더 뜨겁게 하라고 말할 것 같다.

커피가 중얼거리듯 나도 가을이라고 중얼거려본다. 나는 실제로 혼자 중얼거리듯 말할 때가 가끔 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그 생각이 그냥 말로 나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라 참 다행이다.

이제 오후에 방둑 길로 천변으로 가서 길게 걸어보자고 중얼거려본다.

가서 그냥 모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저녁 바람은 뭐라 하는지....

빠르게 떨어져 내린 낙엽은 뭐라 하는지....

저녁 서늘한 가을바람에 내 마음은 뭐라 하는지...



님이 오시려나....



https://www.youtube.com/watch?v=3HfmhK50HEU&t=1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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