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기 전.

비행기 활주로에서

by somewhere

최근 이러저러한 일로 비행기를 자주 탔다.

나는 비행을 두려워하는 편인데 그래도 국내선은 맘 편하게 탄다.

나라가 작은 탓에 아무리 길어도 한 시간 남짓이고 땅 위로 날아가기에 많이 두려워하진 않는다.

참 간사하게도 떨어지면 어차피 죽는 건데도 바다 위를 날아갈 때가 더 무섭다. 쓰다 보니 진짜 피식 웃음이 난다.

비행기가 출발하면 천천히 꽤 오랫동안 활주로를 향해 굴러가 날아갈 방향을 향해 정중앙에 선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듯 멈춰서는 순간이 있다.

난 그 순간이 언제나 참 멋지다.

모든 기어를 올리고 가장 높은 동력을 다해 달리기 전 잠시 숨을 멈춘 순간,

또한 오르기 전 모든 힘을 다해 달리며 에너지를 모으는 순간,

그리고 마침내 날아올라 지상에서 발을 떼는 순간.

좌석에 앉아 비행기의 모든 움직임을 느끼며 같이 호흡한다.


흔들리며 구름을 뚫고 올라 하늘 위 어디선가 수평을 맞추고 안정적 비행을 시작한다.

구름을 지날 때 흔들리던 기체가 평온해지고 시야도 맑아진다.

두터운 구름이 잔뜩 깔린 날도, 그 위로 솟구쳐 오르면 환한 빛이 존재하는 공간대로 진입하게 된다.


나는 비행을 두려워하면서도 비행기의 매력에는 한껏 빠져든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오래전 중국을 여행할 때였나 갑자기 비행기가 수직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그 후에 들은 말인데 에어포켓 뭐 그런 현상인데 그 시간이 3초쯤이라는데 그때 느끼는 공포가 너무 강렬해서인지 꽤 길게 느껴진다.

너무 끔찍한 순간이었다. 추락. 그 큰 물체가 툭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두어 번 한 것 같다.

그리고도 워낙 공포증이 많아서인지 비행기를 타면 고도의 각성상태가 된다. 전날 거의 자지 않고 비행기를 타는데도 잠을 자지 못하고 술을 마셔봐도 소용없다. 하늘에 떠 있다는 상황이 계속 나를 떨게 하는 것이다. 비행기 미디어에 있는 영화나 오락거리들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재미란 것도 맘이 편해야 느껴지는 것이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는 코미디나 개그도 전혀 웃기지가 않다.

그러면서 마치 전 생애를 반추하듯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뼈아프게 후회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그럴 땐 꼭 후회되거나 잘못한 일들만 떠오를까. 특히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을 더 깊게 사랑해주지 못한 게 제일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니 장거리 비행 후 공항에 도착하면 몸은 떡이 되어 기진맥진이지만 마음은 뭔가 한결 깊고 유순해진 것 같으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도착한 그곳이 각별하게 느껴진다.


내게 특별한 느낌을 줬던 여행지를 떠나올 때면 거의 어김없이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인도를 떠나올 때 그랬고 캐나다 옐로나이프 등이 그랬다. 하늘에 있다는 것이 마치 임사 체험하는 것처럼 의식의 차원을 바꾸는 거 아닌가 싶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다시 생으로 돌아오면 가치관들의 전폭적인 변화를 겪으며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나는 진짜 죽었다가 살아 나온 것이 아니고 잠시 죽음을 느끼며 내 생을 돌아본 것이라 전폭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한동안은 더 친절해지고 더 관대해진다. 그것이 여행의 잠깐 끗발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렇긴 하다.


나이가 들수록 장거리 비행할 엄두가 안 난다. 머리 위로 불 반짝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아 … 비행기 타고 싶다 하면서도 대륙을 넘는 비행기는 오르고 싶지 않다. 자꾸 편안하고 싶은 거…이런 게 늙는 건가 보다.

비행기 안에서 느끼는 듯한 그런 각성을 평상시 삶에서도 갖는다면 인생은 참 진지하고 성숙해질 터인데...

땅에 붙어 서서 스스로 안전하고 평안하다고 느껴지면 또 온갖 것에 한 눈 팔고 잡다하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좋을 대로 살아간다.

하기사 비행기 안에서처럼 강렬한 각성의 순간이 계속된다면 수명이 단축될 것 같기는 하다. 별 특별할 일 없는 일상 속에서, 어떤 위험이나 두려움이 없는 평온한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마치 마지막을 사는 것 같은 진지함으로 살아간다는 게 가능할까....




다음 주에도 비행기를 탈 일이 있다.

날아가기 전 한껏 에너지를 올리는 그 순간에 또 매료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 위를 날다가도 내려야 할 곳에 정확이 내려와서 땅에 닿는 그 기특한 비행기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을 것이다.


<midnight blue> Louise Tucker & Charlie Skarbek


이 글을 쓰다 보니 뜬금없이 이 노래가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 노래인데 ᆢ

가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Dreams fed by memories 추억으로 빚어진 꿈, 혹은 추억이 만드는 꿈..


한밤중 이륙 허가를 기다리며 활주로에 서있는 비행기 위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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