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게스트 하우스 로비 문을 열고 막 나온 순간 맛 본 바람과 공기는 갑자기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거기가 어딘지 빨리 생각이 나지 않아 걸으면서 계속 바람을 느끼고 그 이른 아침의 빛과 공기 새소리를 들으며
어디였을까 계속 떠올리려 애쓴다.
분명 이 공기는 이 아침의 빛은 내 기억 속의 어딘가에 있던 것이다.
내 속에 각인되어 있는 아침인데 어디였더라….
게스트 하우스 같은 방에 머문 젊은 친구들이 아침에 해돋이를 보겠다고 같이 가자 해서 나서는 길이었다.
해변가에 있는 숙소라 집만 나서면 보일 줄 알았는데 방향이 아니었다. 좀 더 동쪽으로 걸어가야 해서 해안 길을 걸었다.
20분 후면 해가 뜬다는 시간이 된다. 앞에 펼쳐진 저 모퉁이 길만 조금 돌면 동쪽 바다가 펼쳐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모퉁이 돌고 보면 아직은 아니다.
꼭 인생 같다. 자꾸 저 모퉁이 돌면 뭔가 더 보일 것 같고 그곳에 도착하면 앞에 또 아쉬운 모퉁이가 나타난다.
좀 더 동쪽이어야 한다. 가장 붉은 기운은 아직도 가려진 길 너머에 있다. 그렇게 걷다가 시간이 다 되어가서 뛰기도 하면서 계속 모퉁이 길을 향해 갔다.
결국 완전히 펼쳐진 바다를 보기 전에 이미 떠 올라 있는 붉은 해가 보인다. 바다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해가 아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충분하다.
사진 찍는 젊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다시 이 아침이 어디였더라 하고 생각해본다.
섬 특유의 공기 그리고 아침 새들의 지저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침의 부드러운 빛.
인도 녹야원이었나 발리였나… 아무래도 섬이다.
아침에 노래하는 새들 소리와 바람이 다르다.
어떤 특별한 사연이나 사건이 아닌 이런 atmosphere가 감각으로 선명하게 새겨져있기도 한다.
그 기억 속 어느 날 아침, 내가 막 숙소를 나와서 어느 큰 나무 아래 식탁에서 거친 빵을 먹던 시각, 저렇게 새가 지저귀고 이런 바람이 불었었다.
제주, 충분하다. 모든 것이 너무나 충분하다. 너무나 충분히 아름답다.
바다를 따라 걷던 모든 길이 충분히 아름답고 대낮에도 별로 인적이 없는 그 작은 마을들의 나지막한 지붕이나 고요한 골목들이 너무나 충분히 아름답다.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바닥에서부터 살아있음의 에너지가 올라온다.
점점 마음속에 노래가 흐르고 어떤 이야기들이 차오른다.
제주에서 둘째 날, 세화 해변에서부터 종달리 마을까지 걸었다. 가다가 서고 가다가 커피 마시고 하면서 갔다.
모닝커피를 마시러 들어갈 카페를 고르는 것도 딱 해돋이 같았다. 마치 모퉁이 길처럼 조금만 더 가면 더 멋진 집이 나올 것 같아 계속 지나치며 가다가 결국 아무 데나 들어간다.
바다 앞 작은 찻집에서 커피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던 주인장의 제주살이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또 길을 나서며, 나는 여행이라 이 시간이 너무 특별한데 이 고요한 제주에 사시는 그분은 조금 무료해 보이기도 한다.
종달리를 향해 가던 길가의 카페. 고양이랑 같이 커피를 마신다.
종달리..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을.
종달리 746인가 하는 북카페에서 책을 읽던 시간까지.
완벽한 고요 속에 책을 읽는다.
최근 너무나 좋아하며 읽었던 작가의 다른 책이 그 책방에 있었다. 헌책으로 파는데 사 왔어야 했다. 이미 가져온 책도 있고 해서 안 사 왔는데 샀어야 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제주도에 들어온 첫 밤, 내가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가 별 투어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별을 보러 간다는 것이다.
저녁 7시 40분에 출발인데 출발 여부가 그 20분 전에 결정된단다. 나는 7시 10분에 도착했다. 사장님이 자신의 승합차로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간지방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제주도의 산간은 칠흑같이 어둡다. 일부러 가로등을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별을 볼 수 있는 밤은, 달이 없고 주변에 빛이 없고 구름이 없어야 하는데 그 삼박자가 다 들어맞는 밤에 내가 들어섰던 것이다.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다니…. 별자리를 가르쳐 주는 앱이 있어 폰을 하늘로 향하면 그 별이 어떤 성좌인지 선으로 연결되면서 그림으로 덧입혀진다. 폰의 화면으로 보이는 저 하늘 위 별들 사이로 선들이 연결되며 말로만 듣던 큰 곰자리 백조자리가 펼쳐진다.
별이 돌고 지구가 돌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자기 별에 혼자 서있던 어린 왕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계절에 따라 별이 바뀌고 시시각각 별들이 움직이고… 실은 지구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애기지만. 내가 찍는 사진 속에서도 어느덧 별이 움직여 꼬리를 흐릿하게 단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
윤동주 -별 헤는 밤 -
진짜 별 헤는 밤을 보내고 왔다.
내 사진이다. 저 별도 그날의 별들이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축적된 테크닉으로 찍어주신… 별 헤는 제주의 밤.
하지만 나는 내가 흔들리며 찍은 사진도 좋다.
저 유난히 빛나는 별이 목성이다. 그 순간에도 쉬임 없이 돌아가는 지구 때문에 별들에 꼬리가 붙었다.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어서 일몰도 일출도 없는 심심한 세화 해변으로 날마다 걸어 돌아오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