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걷다

늙은 로마를 걷다

by somewhere

정말 많이 걷는다. 걷고 또 걷는다.

지도를 열면 가보겠다고 저장해 놓은 하트가 꽃처럼 피어있다. 숙소 부근에 포로 로마노가 펼쳐져있고 베네치아 광장이 있다.

말로만 듣던 시이저가 살던 집, 그가 죽던 곳들을 다니고 그들의 압도적인 콜로세움에서 방점을 찍는다.

골목만 돌아서도 온통 유적지다.


지금 햇볕이 좋다.

대욕장이라는 카라칼라 벤치에 앉아있다.

친구들은 대욕장 즉 공동목욕탕이었다는 거대한 유적지에 들어가고 나는 햇볕 속에 앉아있다

이천 년 전 내 앞을 지나서 욕탕 속으로 들어갔을 사람들.

천 하나로 칭칭 둘러 입은 요상한 로마식 옷을 입고 서둘러 따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러다 어느덧 이천 년이 흐르고 허물어 내린 돌더미, 뼈대만 남은 돌더미 앞에서 나는 햇볕을 쬔다.

2월의 볕이 따스하다.

앉아있다 보니 천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노예가 있고 피 흘리는 기독교인이 있고 관중앞에서 목숨걸고 야수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던 시절.

노예의 등을 밟고 금 욕조에 들어가는 황제와 지하로 파고들던 인간이 같이 있던 시절.

인간사회 극심한 계층은 도대체 왜, 언제 생겨난 것일까?

왜 한 인생은 욕조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등을 내어주고 한 인생은 향기로운 물속에서 유희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죽고 죽이는 황제들, 피 비린내 나는 권력다툼, 병마와 가난에 헐벗은 삶 그 어떤 인생이 진정 평안을 누리며 살았을까?

그 신기루 같은 평안을 줄 존재를 찾아 하늘로 탑을 쌓아 올리고 지하로 파고들며 고행을 떠났을까?


해질녘, 포로 로마노 폐허에 물든 노을과 야경을 보려고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오후를 보냈다.

막 노을이 짙어지고 조명이 켜질 무렵 내 눈앞에 희미하게 직장동료의 얼굴이 보인다. 세상에 이 로마에서 친한 동료를 만나다니ᆢ그것도 그 동료는 잠깐 점만 찍고 가는 패키지 여행객이다. 잠시 20 여분 그곳에 머무는데 나를 만난 것이다. 이런 우연이 교차한다.

그가 다시 여행객 속에 섞여 지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언덕에서 우리는 어둠에 잠기는 로마를 바라봤다.

테베레 강 너머에 불 밝힌 베드로 성당 돔을 찾아보며 베드로 사도가 지닌 천국의 문 열쇠로 그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바래본다.

거대한 조각상이 좌우로 늘어선 언덕 위 길을 내려와 숙소 입구 슈퍼에서 오늘도 와인 한 병을 산다.

오늘이 두 명의 친구에겐 여행 마지막 날이다.

술 한잔 기울이며 서로 여행소회를 밝힌다.

친구라지만 다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보니 할 이야기도 제각각 느낌도 제각각이다.

다섯 명이 이십여 일을 낯선 곳을 여행하니 서로 몰랐던 모습도 보게 되고 미묘한 감정 기류가 발생하기도 했다.

살아온 연륜과 성숙함이 있는지라 지혜롭게 서로 감싸며 다닐 수 있었다.

여행 중 어느 날 드렸던 기도 (우리는 종교가 다 다르지만 아침식탁에서는 늘 같이 기도를 드렸다.), 우리 서로 연약한자로 서로서로를 품게 하소서 했던 기도가 내내 여행의 끈이 되어 주었다.


지금 이 글 마무리는 시실리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쓴다.

이탈리아 반도 제일 아래 마지막 섬. 시실리아노 혹은 시칠리아노.


이곳까지 가자고 한 것은 나다.

아마 바흐 곡 때문일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꼭 이 곡을 쳐야겠다.


https://youtu.be/wmRtH0TYk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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