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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Dec 18. 2021

이제야 춘천....

언젠가, 아마도...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일까? 살림 냄새 땀 냄새나는 현실에서 잠깐 떠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잠시 떠난다는 것.


그래서 여행지에서 맡는 공기가 유독 자유롭고 신선하며 같은 빵도 더 맛있는 건지 모르겠다.


<언젠가,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지독한 질투심이 느껴졌다. 속된 말로 이 사람은 뭔 팔자를 타고나서 이렇게 천지를 유람하며 돌아다녔단 말인가 하며 배가 아플려 했다.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이니 여행이 가고 싶기도 했지만, 또 너도 나도 다 안 가니 좀 맘이 편하기도 했다. 어디를 안 돌아다녀도 된다는 것이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하는 지점도 있었다.


여행이 주는 피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때론 여행이 마치 큰 공부를 하고 온 것처럼 여겨져서 여행을 안 다니면 도태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행을 많이 하면 사람이 넓어진다던데 나는 그래서 좀 넓어졌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진짜 내 기억 속에 남은 여행은 뭐가 있을까? 한 2년 전쯤 겨울에 혼자 춘천엘 간 적이 있다.


십 대 때부터였든가 이십 대 때였던가. 춘천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마음속의 도시였다. 안개의 도시. 마치 무진기행의 무진처럼 안개가 가득한 상상 속의 도시였다.


그때 같이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가 유난히 춘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춘천 살며 글을 쓰던 이상한 사람, 이외수의 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젊었을 때 이외수의 글은 젊었던 우리에게 선병질적인 아픔을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가 겨울 한 낮 따스한 볕에 기대앉아 머리의 이를 잡는다는 그 춘천엘 가보고 싶었다. 또 그 친구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진짜 춘천에 잠시 살면서 보내온 안개에 젖은 편지들이 내게 춘천에 대한 은밀한 꿈을 품게 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강원도는 내가 사는 남도에서는 외국보다 더 갈 기회가 없는 곳이었다. 실제로 일본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것도 두세 배나.


그런데 2년 전 겨울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서울에서 모임을 마치고 혼자 춘천에 가서 4일을 지냈다. 4일 동안 계속 춘천을 걸었다.


어차피 따로 갈 곳도 없고 시간 맞춰해야 할 일도 없으니 그냥 걸어 다니기만 했다.


눈바람이 몰려 지나가는 공지천으로 의왕호로 인적 없는 길을 걷다가 이디오피아란 유명한 커피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며 책을 읽다가 시장에서 메밀전병과 막국수를 사 먹고 또 내내 걸었던 춘천여행이 왠지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소양강 처녀 동상이 있던 곳에서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하던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유독 추워 보이던 처녀를 애잔하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Bono의 With or without you가 흘러나와서 강바닥에 가라앉을 뻔했다.


소양강댐 전망대를 다녀오던 날, 날이 저물고 사람도 없는 외진 곳에서 추위에 떨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때,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뭔가를 기약 없이 기다려 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그리고 보면 예전에는 언제 올지 몰라 정처 없이 기다리는 것들이 참 많았다. 사람도 기다렸고 차도 기다렸고.... 또 오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오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만나지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이제 어디서든 다 예상되는 스케줄 속에 살고 있다. 외국 여행을 가도 거의는 여행의 윤곽이 잡혀있다. 미리 수집한 정보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로 갈지 몇 시에 누구를 만날지 혹은 언제 누가 올지...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니 일찍 숙소에 들어가 길고 긴 밤을 작은 나무 침대 안에서 보냈다.

4인용 게스트 하우스의 침대 하나가 마치 내게 거대한 우주처럼 그 공간을 열어주었다.

그 작은 동굴 같은 공간 속에 있으면 오롯이 내 자신에 집중이 된다. 설거지할 그릇도 없고 TV도 없다. 이방 저 방 돌아다닐 것도 없다. 그냥 그 침대 안에서 책을 읽거나 하다 잠들게 된다.


그리고 보면 여행은 정말 혼자 하는 것이 진짜 아닐까 싶다.


김연수의 여행기나 내가 좋아하는 유성용의 <여행생활자> 같은 책을 보면 남자라서 가능하겠다 싶은 장면들이 많다. 처음 가는 도시에서 밤에 모르는 좁은 골목길을 간다거나, 파키스탄의 길이 열렸다가 막혔다가 하는 어느 깊은 계곡에 들어가거나 하는.


유난히 겁이 많은 나는 꿈도 꿀 수 없는 장면이다.


나이가 들어선 지 여행이 이젠 좀 버겁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막막함의 깊이도 더 커진다. 갈수록 친숙하고 따뜻한 내 집 한 칸 생각이 많이 난다. 여행 첫날이나 두 번째 날 밤까지는 공황장애 같은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갈수록 여행에 적절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심지어는 그렇게 부유하는 것이 때론 인생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젊은 날에는 늘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 지기 때문에 여행이 좋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여러 경험으로 자신의 틀을 깨거나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 속에서 하루하루를 깊이 살아가는 일상의 여행도 사람을 한없이 키우고 넓히며 깊게 해 준다.


내가 자주 걷는 학교 앞 천변이나 들판에서 나는 세상 그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아름다움과 광활함과 고독과 자유를 느낀다.

나는 이제 바람처럼 세상을 떠도는 시기는 지난 듯하다. 이제는 삶이 가득한 내 현실에서 한 걸음 한걸음 여행할 때가 아닌가 싶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땀내 나는 현실에서도 매일 신선한 공기는 만날 수 있고 빵도 맛있다.   

내가 걷는 내 일상의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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