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퇴직 첫날.

by somewhere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수천번도 넘게 상상해 보고 꿈꾸던 그날.

그 날인 오늘, 나는 아침 바쁘게 서둘러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배낭 속에 태블릿과 두꺼운 책을 담아 동네 도서관을 온 것이다.

긴 겨울여행 후 아직도 생활리듬을 회복하지 못하던 것에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모든 학교가 문을 여는 오늘,

나도 배낭을 메고 분연히 집을 나온 것이다.

1교시가 시작하는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그러면서 생각한다. 응… 이제 1교시니 많이 늦은 것은 아니야.

나름 시차적응하지 못하고 뒹굴던 것도 방학이 끝나기까지만 무의식적으로 한 거였나 보다.

그저 편안하고 감미로운 휴식만이 가들 찰 줄 알았던 퇴직이 웬걸 이상한 허전함과 두려움을 동반한 채 평소의 루틴대로 시작되는 것이 좀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는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다 보니 퇴직했다는 것이 실감 나는 것은 책을 읽다가 접고 일어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읽고 싶은 대로 계속 읽고 글도 쓰고 싶을 때 멈추지 않고 써도 된다.

게다가 두꺼운 모비딕을 읽기 시작했다. 고래이야기가 가득한 모비딕.

황량하고 기괴한 미국 동부 어느 추운 선창가를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읽는다.

아침에 내려온 커피를 줄 곧 마시고 배가 고파질 때 싸 온 고구마를 먹고 다시 책을 읽는다.

기쁘다.

이렇게 나의 퇴직 첫날이 지나간다.

밖은 햇살이 환하고 바람이 몰려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학교에서 3월은 유난히 배가 고프다.

3월의 햇살이 누구에게든 따스하고 환하길 바래본다.

그리고 뱃속 든든하기를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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