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하고 고독한 자연 풍광이 펼쳐지고 시대적 배경이 1920년대 인지라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이다.
얼핏 포스터에 떠 있는 문구만 보고 섬에서 일어나는 순박한 스토리이겠거니 하고 정말 아일랜드나 보자 하는 맘으로 갔다.
바닷가 앞 외딴집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를 선전하는 문구는 이렇다. <인생의 친구가 오늘 절교를 선언했다>
창문을 두드리는데 안에 있는 사람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밖에 있는 사람은 그 반응을 이상하게 여긴다.
여느 때와 달라서 그럴 것이다. 의아해하면서 먼저 펍을 향해가서 그 친구 것까지 맥주를 주문해 놓고 기다린다.
뒤늦게 온 더 늙은 친구는 이제부터 그와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가.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내게는 그 영화에서 <다정함 niceness>이란 단어가 유난히 깊게 들렸다.
젊은 친구는 맹하지만 그 섬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늙은 친구는 섬사람답지 않게 지적이고 문화적인 사람이다.
맥락을 보자면 어제까지도 둘은 자타가 공인하는 절친으로 지낸 사이다. 늘 오후 2시면 같이 동네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사이. 그런데 갑자기 오늘 늙은 친구가 앞으로 아는 체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느닷없는 일이라 젊은 친구는 도저히 납득을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까지도…. 하지만 늙은 친구의 기세는 진지하고 심각하다.
영화 리뷰에는 이런 내용들이 몇 있다. 혼자 있고자 하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될 것을….
그러나 그 젊은 친구는 너무 순진하고 순수해서 아무 예고나 전조 없이 던져진 그 감정의 단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분이 상해서라도 같이 절교를 할 테지만, 젊은 친구는 평범하지가 않다. 세상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부족한 사람’이다.
늙은 친구의 말인즉슨 얼마 남지 않은 그 인생의 시간을 쓸데없는 수다보다는 사람들에게 남을 음악을 작곡하며 보내고 싶다고 한다.
부질없이 젊은 친구와 술 마시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흐름에서 나를 두드린 것은 <다정함>과 <예술>이다.
늙은 친구가 <예술, 음악적 무엇인가>를 위해 <다정함>을 버리겠다는 것이고, 젊은 친구는 어찌 인간이 <다정함>을 버릴 수 있는가 묻는다.
내게는 그렇게 대립되어 읽혔다. 둘의 분쟁이.
내가 살아온 모습이 늙은 친구 같은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 충만한 뭔가를 위해 <다정한> 인생의 장면들을 무시한 적이 많았다.
<예술…>따위로 갑자기 인간관계를 끊을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젊은 친구는 늙은 친구의 광포한 자해의 협박도 이해하지 못한다.
늙은 친구가 자신을 성가신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받아들이지 못한다기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가서 말을 하고 자꾸 가서 이유를 묻는다. 그래서 늙은 친구는 극단적 자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린다.
젊은 친구가 그 섬에서 다 아는 ‘부족한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여태껏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놀아준 늙은 친구도 다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젊은 친구는 묻고 또 묻는다. 어찌 <다정함>을 버릴 수 있는가 하고…
모차르트처럼 길이 남는 음악을 작곡하고 싶다고 늙은 친구가 말하자, 모차르트는 모르지만 <다정했던> 자기 부모님은 기억한다고 젊은 친구는 소리친다.
이해가 안 되어서 묻는 사이 늙은 친구의 자해는 극에 달하고 드디어 충격을 받은 젊은 친구는 격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 사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이니쉐린에서 건너다 보이는 아일랜드 본토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있어 늘 대포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누구를 잡는 건지도 모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쟁이 물 건너 저 본토에서 계속되고 있다. 차라리 아일랜드의 적, 영국과만 싸울 때는 헷갈리지 않았는데 IRA와의 내전은 모두를 헷갈리게 한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이지 모호해지는 가운데 그냥 전쟁이 계속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빨치산과 정부군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각자 민중을 이데올로기로 나누어 죽이고 또 죽이던 그 시절처럼.
이니쉐린에서 가장 <다정하던> 젊은 친구가 어떻게 전쟁꾼이 되어가는지 어떻게 복수에 사로잡혀가는지 보게 된다.
오히려 늙은 친구는 자신의 극단적 행동으로 인해 젊은 친구의 소중한 당나귀가 죽은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젊은 친구는 돌이킬 수 없이 선을 넘어가 버렸다. 둘 중 누군가 죽을 때까지 전쟁은 계속되리라 말한다.
밴시는 죽음을 예고하는 여자 정령이라고 한다. 아마 아일랜드 특유 귀신 인지 모르겠다. 중국의 강시처럼.
영화에서는 진짜 죽음을 예견하는 귀신같은 노파가 불길한 모습으로 출몰한다. 창백한 얼굴과 검은 옷, 그리고 자욱한 안개.
예견한 죽음이 떠오르는 바다. 깎아지른 절벽의 단절.
뭐라 형언 못할 묵직함으로 영화는 충격을 안겨주며 끝이 난다.
그 영화를 블랙코미디라 한다. 아무리 블랙이지만 코미디가 왜 이러냐고 하는 리뷰가 많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