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쨌거나 다른 지역도 시간만 좀 늦을뿐 다 피기는 하니 그리 크게 자랑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유난스럽게 꽃놀이를 다른 지방에서 많이 오니 좀 별다른가 싶기도 하다. 어디든 때가 되면 꽃이 필텐데 뭘 굳이 남의 동네까지 꽃구경을 다니는지 좀 이해가 안 되었다.
어디에 무슨 꽃이 핀다고 그 철에 구경을 다녀보거나 하지 않아서 꽃놀이 다니는 사람들이 참 한가하게 느껴졌었다.
어쩌면 내가 전혀 궁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평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순천 동천이나 광양 서천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집에서 동쪽으로 10여분 차로 가면 광양 서천이고 서쪽으로 10분 가면 순천 동천이다. 두 천이 모두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을 녹인다.
특히 봄이 오면.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이곳보다 아름다운 곳은 현재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주 어머니 모시고 다녀온 제주여행에서는 노란 유채꽃에 홀렸다.
유채 노란빛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
두 딸이 모두 백수가 된 기념으로 정작 본인들보다 더 서운해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 나들이를 다녀왔다.
딸들이 모두 교사인 것이 나름 자랑이었던 어머니는 그 두 딸들이 모두 퇴직하자 이상하게 더 서운해하신다.
어머니 인생의 훈장이 떨어진 느낌인가 보다. 우리는 속없이 어머니 앞에서 백수 되어 주중에 이렇게 놀러를 다니니 이 얼마나 좋은가 타령을 하고 다녔다.
노란 유채꽃을 보니 내가 첫 발령받고 노란색 투피스를 입고 부임했던 기억이 났다.
가기도 힘들고 도착해서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되는 섬인데도 어쩌자고 그런 옷을 입고 갔는지 모르겠다.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사주신 옷이었다. 개나리처럼 환한 노란색 상의에 검정스커트, 목에 노란 실크 스카프까지 매는 딱 스튜어디스 같았던 옷. 그리고 귀여운 무늬가 들어가 있던 노란색 니트 투피스. 이 두벌만으로도 나는 그 섬에서 아마 엄청 눈에 띄는 사람이었을 거다.
섬마을 여선생. 어찌 그리 바람 부는 날이 많았던지. 머리를 붙잡고 옷을 부여잡고 걷던 날이 많았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쓸 수 없이 사선으로 내리치는 지라 레인코트를 사서 또 입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쩌자고 그 섬에서… 형광색조의 연두였던 그 레인코트를 버리지 말고 둘 것을…
그동안 입었던 수많은 옷들은 아무 미련이 없는데, 이상하게 내 나이 스물셋, 섬마을 선생 때 입었던 그 옷 세벌은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 옷을 버리지 말고 둘 것을… 그냥 간직하면 좋았을 텐데…
나는 봄에 샛노란 프리지어나 유채꽃을 보면, 또 개나리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보면 항상 그 옷이 생각난다.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프리지어였거나 유채꽃이었거나 개나리였을 것이다.
그 어린 딸이 노란색옷을 입고 섬으로 가니 한동안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하필 처음 엄마랑 섬에 들어간 날 오후에 폭풍주의보가 내려 엄마는 섬에 발이 묶이셨다. 며칠 후 섬에 딸을 두고 흔들리는 배로 나가실 때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파도쳤었다고…
나중에 내 자췻짐을 챙겨서 들어오실 때는 두 친구를 대동하고 오셨다. 어린 자식 두고 갈 때 ‘간이 녹는 것’을 아는 친구들끼리 서로 동행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기억이 흐릿한데 이번 제주도 여행 중에 그때 이야기를 하셨다. 그 친구 중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한 분은 치매라 정신이 없으시다.
봄의 노란색은 여전히 예쁘다.
정말 정말 무턱대고 예쁘다.
CD플레이어가 있는 내 차에서 오늘 아침에 흘러나온 노래처럼 예쁘다.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라고 계속 노래하는 것이 노란색처럼 마음을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