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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May 02. 2023

I want you to stay

Song by Victor lundberg

이사를 가야 한다.

이십 년이 넘게 살았던 집을 떠나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집.


새로 이사 갈 집에 작은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어떤 노래가 흐른다.

이상하게 음악이 글을 부를 때가 있다.

노래 제목 외에는 못 알아먹지만 뭔가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다.

I want you to stay.

네가 머물렀으면 좋겠어.


살던 집을 정리하며 여기서 머무르고 싶다 생각하고 

새로 살 집을 둘러보며 여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집의 오랜 나뭇결 거실, 겨울이면 가득 들이치는 햇살에 마음이 풀어지던 넓은 창.

봄부터 그 넓은 창을 가득 메우던 푸르른 나뭇잎들. 아파트인데도 마치 숲 속에 살던 것 같던 집.


한방 벽을 가득 채웠던 책을 다 팔거나 기부하거나 버리기로 하고 정리를 시작했다. 마치 내 살아온 인생을 다 만져보는 것 같았다.

그 책을 읽었던 시절. 그때의 심정들이 기억났다. 혼란과 에너지가 솟구쳐 주체가 안되던  젊은 시절엔 주로 정신문화사 책을 읽었다. 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그 길을 찾아갈 거라고 외치던 결의들이 보이는 책들이다. 읽을 거라고 쟁겨두었던 두꺼운 불경들도 있다. 꽤 큰돈 들여 마련해 놨는데 결국 못 읽었다. 심리학 관련, 상담 관련 책도 많이 보인다.

교사로서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내 정신이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읽었었던 것 같다.

나는 왜 이러나ᆢ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면서ᆢ

또 내가 너무나 커다란 존재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 아이들은 어째야 하나 하고 책들을 뒤적이며 살아왔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나의 아저씨> 요약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며 또 빠져들었다. 여전히 어떤 장면들은 눈물 없이 볼 수가 없다.

다시 보니 이선균이 너무 연기를 잘했다. 그 슬픔과 우울과 절망을 어찌 그리 처연히도 표현했나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그 인간적 따스함까지. 

따뜻함이 인간의 궁극적 품위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유는 저걸 찍던 시절 어둠이 천착되어 있는 존재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지안 그 자체였다.  <눈을 감아보면 ᆢ>하고 흐르던 ost는 들을때 마다 가슴이 저린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 박동훈이 우연히 만난 이지안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했던 말,

<지안ᆢ평안에 이르렀는가ᆢ>


나는 그 많은 책들의 골짜기를 지나 평안에 이르렀는가.


오랜 시간 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다.

소설은 한가해 보였다.

처방이 시급한 상황에 후시딘 바르듯 책을 읽어왔다.

이제 나는 소설을 읽을 정도로 평안에 이르렀는가ᆢ


버리지 않고 가져갈 책으로 남긴 것은 한 줌도 안된다.

얇은 시집과 산문집 몇 권.


이사 갈 집에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나는 카페에서 저 노래를 네 번째 듣고 있다


I want you to stay.



https://youtu.be/YMRLS6Qws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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