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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Apr 22. 2023

질투는 나의 힘

백혜선을 질투하며

몹시 팬은 아닌데 요즘 줄곧 동영상으로 찾아보는 사람이 있다. 백혜선.

지난주 서울 갔다가 일 마치고 그냥 산책 삼아 간 예술의 전당에서 곧 백혜선의 독주회가 있는 것을 보고 예약했다.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연주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수려하고 유려하고 우아하고 섬세한 연주였다.

연주회 끝나고 콘서트홀 로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사인회가 있을 예정이라…

줄은 서지 않고 피아니스트를 보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빨간 가디건을 연주복에 걸치고 나온 피아니스트를 뒤 에서 바라보다 왔다.

뜬금없는 소리인데 나는 내가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주변에서는 다들 내가 돈 욕심이 없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돈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나도 돈을 좋아하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돈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별로 없었다고 하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하루를 살고 나면 돈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고 할 에너지가 없어서 항상 뒤로 밀쳐두었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다 알아서 통장에서 떨어져 나가고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당장 생활이 멈추지는 않으니 그리 살아도 됐었다. 어차피 큰돈이 오고 가는 일이 별로 없는 삶이라 계획 없이도 살아졌다. 마치 어항 안에서 살던 물고기 큰 물에 내어놔도 딱 그 어항길이만큼 헤엄친다는 것처럼 별 짓을 해도 다 한도 내에서 움직였다. 가끔 이리 살아도 되나 싶어 가계부를 써 보자고 작심을 해도 일주일을 넘지 못했다. 요즘처럼 주식이다 뭐다 하며 돈에 골몰하는 세상이 되니 나는 드디어 문맹처럼 되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내 지갑 안에 만 원짜리 대여섯 장만 있으면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짜 욕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 아닌 것 같다. 욕심은 돈에 국한된 것이 당연히 아니니까.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려서 나는 담임샘이 다른 애를 예뻐한다고 자주 분을 냈다고 한다. 사람에 대한 시샘이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조성진이나 임윤찬, 임동혁의 연주는 그냥 경외감으로 보기만 하는데 백혜선의 연주는 이상하게 그 인생 자체에 대해 질투를 느끼게 한다. 아마 세대가 같아서일까? 검색해 보니 나보다 두 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좌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라는 책을 냈다고 한다. 아직 안 읽어봤다. 그는 좌절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계속 그는 어찌 이리 흥하는 인생을 산 것일까 하고 질투를 하고 있다.

그가 겪었다는 좌절이 계속 가진 자의 푸념으로만 들리니 나는 작정하고 토라진 폼새다.

피아노를 너무 잘 쳤다. 국제 콩쿠르들이 괜히 한 사람에게 운 좋다는 소리 듣게 하려고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성골 진골 출신이기는 하다. 두 부모가 다 의사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일찍이 14살 때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게다가 스승복도 있어 너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단지 피아노만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더해 줄 영적인 스승을 만난 것이다.

그 스승이 임윤찬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니 백혜선, 손민수, 임윤찬이 음악적으로는 다 한 가문 출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민수나 임윤찬을 보며 참으로 깊이 있는 음악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빚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냥 피아노를 기함하게 잘 쳐서 음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질투를 느낄까 싶다.

그냥 저 멀리 있는 별을 보듯 경하드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유독 백혜선은 질투를 하고 있을까?

게다가 그녀의 두 자녀는 하버드를 갔다. 그저 늘 매달려 피아노 연습하는 엄마의 뒤꼭지를 보며 자란 것이 엄마의 교육 전부라 한다.

그 속에 내포된 것을 다 알아먹기는 한다. 삶에 치열하고 성실히 매달리는 엄마의 모습 자체가 그 어떤 뒷바라지 보다 큰 부모 교육이었다는 소리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징글 징글하게 피아노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다. 악기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통째로 잡아먹어야 어떤 결과를 준다.

연주회로 부재인 엄마의 공간과 시간을 메우며, 선생님한테 깨지고 와서 우는 엄마를 다독거리며 그렇게 애들이 컸다고 한다.

물론 그 사이사이 깊어진 엄마의 내공이 애들에게로 흘러 들어갔겠지…

이십 대에 서울대 교수가 되어 가지지 못한 게 없던 삶을 내려놓고 어린애들만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다시 출발선에 섰을 때부터 아마 백혜선은 <좌절>에 입문했을 것이다. 뭔가를 치열하게 해 봤을 때 좌절도 깊이 다가온다.

나는 내 인생에 큰 좌절이 있었나 생각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시간이 없다. 우울했던 기간은 있지만 내가 하던 일로 좌절한 적은 별로 없다.

내가 뭔가로 고군분투하며 좌절한 기억은 별로 없고 이렇게 좌절을 딛고 뭔가를 이룬 사람의 화려한 시간을 보며 질투한 시간들은 많고도 많다. 솔직하게는 화를 낸다. 왜 인생이 이렇게 카테고리가 다른가 하고… 좌절은 사람을 깊게도 하지만 질투는 사람을 참 비루하게 만든다.


피아노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나는 백혜선에 무한 질투를 느낀다.

혹시 백혜선 같은 환경에서 그런 기회를 가졌다면 나는 백혜선처럼 되었을까?

증빙할 필요가 없는 가정이라 결론을 맘 편히 내린다. 그리고 다음 생을 기약해 본다.  

반 클라이번 출전 시 임윤찬은 하숙집에서 날 밤을 새고 연습했다고 한다. 밤을 꼬박 새우며 연습하는 음악가가 많다.

좋아하지 않고는 그렇게 몰입할 수 없다. 좋아하는 것에 그렇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은 참으로 고급진 삶이다.

그 좋아하는 것 하나 때문에 여타의 것을 다 물리칠 수 있으며 연습의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견뎌진다.

언젠가 임동혁이 천재 운운하는 소리 들으면 화가 날 때도 있다고 했다. 자기가 얼마나 아등바등 사는지 안다면 그렇게 쉽게 천재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설령 천재라 할지라도 그 밑에 들어가는 노력이 너무 엄청나다는 소리다. 그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 또한 수없이 많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뭔가에 올인하여 오롯이 집중하는 삶은 귀하고 축복받은 삶이다. 누구나 다 그런 집중과 몰입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별로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 그럭저럭 사는 인생이 태반이다.

시간의 퀄리티가 높은 삶을 사는 것. 밀도 있는 시간을 사는 것. 그것이 제일 질투 나는 일이다.


그랜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아직도 내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나는 이 나이에 심히 <좌절> 해도 될까?

한 옥타브 간신히 짚는 내 짧은 손가락들을 보며, 이러려고 퇴직했나 싶게 매일 같이 요리만 하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며 <좌절> 해도 될까?

나는 이제 내 아이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50대 중반은 <좌절> 하기 좋은 나이일까?

질투는 나의 힘이다. 사랑하기에 질투도 나온다. 나는 피아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사랑으로 질투에 빠진다.

<좌절>이 곧 <포기>로 이어지기 딱 좋은 나이에 <질투>로 좌절을 덮어본다.






구례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좌절>이란 단어가 당최 어울리지 않는 바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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