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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where Jun 03. 2023

기억의 정리

편지더미를 뒤적이며

며칠 이상한 시간을 살았다.

여기저기 짐을 들어내어 정리하느라 집은 난장판인데 그 속에서 마치 시간의 미궁에 빠진 듯했다.

앨범이 골칫거리였다. 예전 앨범들은 무겁고 둔중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있는지라 그 묵직한 앨범들이 줄을 섰다.

가지고 가자니 둘 데도 마땅찮고 실상 들여다보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그것이 살아온 역사인지라 버릴 수도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가는 시간이 모두 들어있고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이나 글들이 모여있는 파일집등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이 한 벽장을 채우고 있다. 거기다가 중2 때부터 쓴 내 일기까지 한 짐으로 버티고 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저 일기들은 진짜 버려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 짐더미들 속에서 일기장을 읽자니 마치 옷장을 뒤지다 그 뒤 어딘가 과거로 떠나는 공간으로 스윽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 그때 내가 그 사람을 짝사랑했었지…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 짝사랑의 대상은 바뀌며 계속되고 있다. 이상하게 재밌고 설렌다.

이사하며 짐정리 할 때만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이 일기 한 보따리를 이제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누군가의 손에 어차피 치워질 것들이고, 누구에게 이 일기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무거운 대학졸업앨범도 바라보다가 냉정히 내가 속한 과의 페이지만 찢어내고 그냥 버렸다. 책도 거의 버렸는데 그깟 졸업앨범이 무언가 싶어서.

종합대학의 전체 졸업생들의 사진이 다 들어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버리자고 생각하니 참 버릴 것이 많았다.

내 평생 모습들이 있던 앨범도 사진을 간추리고 버렸다. 사진만 따로 얇은 파일식 요즘 앨범에 한 번 정리해 보리라 하면서.

그런 식으로 앨범을 대 여섯 권 해체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아이들 사진이 빼곡히 들어있는 앨범은 아무리 두껍고 무거워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주로 나와 남편의 앨범을 해체했다. 사진을 추리자니 쉽게 추려졌다. 뭘 그리 첩첩다 담아놨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 사진들이 기억 속에 남길만한 의미가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 간추려 버릴 수 있을 만큼 시간 위에서 그 의미도 증발했다. 10년 전엔 버릴 수 없던 것들이 지금은 미련 없이 버려진다. 버릴 수 있을 때가 떠나보낼 때인 것이다.


일기더미 옆에 내가 소중히 간직하는 편지더미가 있다. 내 일기는 버려도 절대 버리지 못할 편지더미다. 이걸 꺼내 읽게 되면 짐정리는 물 넘어간다.

더미 속에서 몇 통만 꺼내 읽어본다. 모든 걸 뒤로 하고 전부 다 읽어보고 싶다.

고1 때부터 보내오던 한 친구의 편지다. 같은 반이었는데 편지를 자주 보냈었다. 대문이 덜컹거리고 움직이면 마당에 편지가 떨어져 있었다. 편지를 보내려면 우체국 가서 우표를 사서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던 때다.

엄청난 문학소녀였던 그 친구의 글은 지금 읽어도 아름답고 선연하다. 학교에서 유명했던 그 친구와는 달리 내세울 것 하나 없고 눈에 띄지도 않던 내게 왜 그 친구가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너무 수준이 높았던 그 친구의 편지들을 받으면서 나도 간간히 답장을 보냈을 텐데 어떤 글들을 보냈을까? 고1 때부터 언제까지 그렇게 손 편지가 계속 왔었을까? 대학 때는 과사무실 우편함에 곱게 꽂혀있었고 무서운 바람이 불어대던 섬마을에서 선생을 할 때도 편지는 배를 타고 왔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이미지 같았던 그 친구는 필체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번에 보면서도 탄복을 했다. 이렇게나 사람이 글이나 필체까지 모두 시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녀의 이름에도 시(詩) 자가 들어가 있다. 나는 그녀가 뛰어난 문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래서 그녀가 보낸 편지를 한 통도 소홀히 하지 않고 다 모아두었다. 그녀의 서간집이 될 거라 확신하며.

그녀가 먼저 결혼을 하고 남편 직장을 따라 도시를 옮겨 다닐 때도 늘 편지는 왔고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도시들의 겨울, 여름에 대해서 들었다. 그 친구의 편지는 내게 뭐랄까.. 어떤 영혼의 양식 같은 것이었다. 그 친구가 언급한 책과 시들을 다 읽었고 그녀가 사랑하던 영화며 시인들을 나도 사랑하게 되었다.

이상한 친구관계였다. 흔히 친구들이 하던 일들,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하는 것들은 하지 않고 오로지 편지를 통해서만 깊어진 이상한 친구관계.

주로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내가 듣는 편이었다. 아마 그 친구는 자신의 세계를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해 그저 독백하듯 내게 말을 했는지 모른다.

사람은 어떤 모양새로든 자신을 표출할 데가 있어야 한다. 별로 수다스럽지 않았고 무뚝뚝한 편이었던 내가 어쩌면 그녀에게 편했는지 모른다.

내가 한동안 소식이 없었을 때가 있었는지 편지에는 이런 글귀도 있었다. “너는 어디를 베토벤처럼 걷고 있는지…..”

내 머리가 덥수룩하고 곱슬이 심해 학창 시절 때 별명이 늘 베토벤이었는데, 설악산 베토벤이었다가 내 성씨를 따 양토벤 이기도 했었다.

지금도 왜 설악산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설악산에 수학여행갔을때 내 머리칼이 또 눈에 띄었을까?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에 가까이 들어오고 이메일을 쓸 무렵부터 그 친구와 연락이 뜸했졌던 것 같다. 이메일로 받았던 그녀 편지는 남아 있지 않다. 아... 이메일이란.

연락이 어느 순간부턴가 끊어지고 나는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을 다니는, 그리고 부모님의 병수발을 들고 온갖 일을 해나가는 인생의 뜨거운 여름을 지나왔다. 몇 년 전 혼자 집에서 와인을 마시다 몹시 취한 적이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 친구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아마 내 의식 깊이에는 그녀가 여전히 내게 편지를 쓰고 있었나 보다. 왜 그 편지가 도착하지 않느냐고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지금 그녀가 살 거라고 알고 있는 도시로 나는 이사 왔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나는 조금 더 생각해 보면서 더 망설이면서 그녀를 찾아볼까 한다.

만나면 항상 어려웠던 그 친구. 친구라고 하기엔 뭔가 대등하지 않았던 관계.

하지만 나이 앞에서 이제 그럭저럭 비슷해지지 않았을까?





버리려 했던 일기는 결국 버리지 못하고 보따리에 싼 채로 또 들고 왔고

나는 일기를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시간까지 더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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