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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May 13. 2023
드디어 이런 일을 겪는구나 싶었다.
시간이 촉박했어도 차를 떨군 적은 없었다. 어찌어찌 기적같이 다 잡아탔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때는 프랑크프루트에서 아시아나 잡아 탄 일.
환승시간여유가 짧다 싶었는데 첫 비행기 출발이 지연됐고 아시아나는 정시 출발이었다. 이미 체크인 카운트가 클로징 된 상태에서 프랑크푸르트 그 넓은 공항을 도대체 누구한테 어디로 길을 물어 보안검색은 통과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뛰어서 비행기를 잡아 탔다.
퇴직하고 서울 나들이가 잦아진 요즘 from과 to를 뒤집어서 날린 표, 날짜를 잘 못 찍은 표, 15시를 5시로 착각해서 버린 표, 취소했어야 했는데 잊어버린 표등 도로공사에 기부 많이 하고 다닌다.
오늘은 시간 여유롭게 잡고 나와서 촉박하리라고 생각 못했다. 평상시 같으면 역에서 차 한잔 마실 여유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미친 듯 트렁크를 든 채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아직 문을 열고 있던 기차 앞에 섰는데 바로 내 앞에서 문이 스르륵 닫혔다. 닫히고 있는 문으로 뛰어들 엄두는 나지 않아 기차를 두드렸다. 버스면 그 진동이 운전사한테 전해지련만 기차는 너무 길었다. 그래도 분명 출발할 때 외부상황을 체크할 텐데, 그렇게 기차에 붙어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을 봤을 텐데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고 게다가 한동안 서있다가 출발했다. 믿기지가 않았다.
드디어 이런 일을 겪는구나. 간신히 잡은 표를 놓쳤으니 꼼짝없이 입석표다. 그것도 세 시간 후…. 옛날처럼 좌석들 사이사이 사람들이 서서 가던 일이 흔했던 때는 입석도 갈만했다. 누구든 좌석 팔걸이에 입석자들이 걸터앉는 것을 이해해 주었는데… 참 이게 너무 옛날이야기인가? 요즘 입석표는 좌석들 사이에 갈 수도 없다. 통로이거나 기차 문간 틈새등 좌석에 불편을 주면 안 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언젠가 표가 없어 입석을 끊었다가 너무 힘들어 곤죽이 됐다.
노량진에서 용산급행을 기다린 게 사단이다. 딱 한 정거장인데 늘 용산급행 2번 홈에서 탔다. 급행이란 것 보면 급행 아닌 일반차량도 있다는 것인데 입구에서 두 번째 홈인 용산급행으로만 늘 올라가서 탄 것이다.
내가 플랫폼에 막 올라갔을 때 이제 막 기차가 지나갔는지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급행이라 그 운행텀이 당연히 길다.
별생각 없이 기다리다 점점 마음이 급해지니 이제야 눈앞에 여러 선로들이 보였다. 건너 건너편에 일반행으로 짐작되는 라인에 이미 기차가 두 번 지나갔다. 5번 홈쯤 되어 보인다. 아…. 저기로 갔어야 하는데 늘 가까운 2번 홈으로만 올라왔었구나. 그 오랜 시간을….
이렇게 다니기 시작한 지가 벌써 4년째인데 어찌 그 생각을 못해봤을까. 참 나도 어지간하다.
한 길을 알게 되면 오로지 아는 그 길만 다니는 사람이구나. 융통성이 없고 꽉 막혀있다. 이번 겨울 이태리 여행 때 내가 지도잡이를 했는데 공감각이 없는 나는 오로지 지도에 나온 대로만 갔다. 지도는 가끔 애매하게 보일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위로 선이 지나갈 때가 있다. 그럼 나는 기어이 그 선위로 오락가락해 본다. 그래서 일행 중 한 친구가 나는 바다 위로 선이 있어도 걸어 들어갈 거라고 농담했었다.
여행할 때 작은 골목들이나 모르는 길 헤매는 것을 좋아하는데 의외로 나는 이렇게 꽉 막힌 성향이었다.
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귀챦아하는 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귀챦아하는 것이 더 큰지 모르겠다. 뭐든 얼른 후딱 해치워버리고 멍하니 있고 싶어서…. 해야 할 일들을 나는 정말 빨리 하는 편이다. 빨리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그리고 그 시간에 멍하니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볼 수 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노닥거릴 수도 있고 그것이 내게는 존재의 시간이다.
그 존재의 시간 안에는 어쩌면 급행 말고 완행을 찾는 시간도, 사무적인 업무를 하는 시간도 다 들어가야 하는데 참 시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살았구나 싶다. 모든 것이 존재의 시간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남은 시간을 잘 사는 비법이 될 수도 있겠다. 설거지를 할 때도, 엎드려 마루를 훔칠 때도, 빨래를 널거나 개울 때도, 또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본 떼는 시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