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월은 이 지방의 본격적 우기다. 순례가 끝나가는 시점에 비를 만나 다행이다. 다음 주도 계속 비가 온다지만 그때는 도시여행이라 괜찮다. 오늘 산티아고 뒷골목에서 우산도 하나 샀다. 무게가 무서워서 우산 하나도 못 담아왔다.
판초식으로 생긴 비옷은 실은 방수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가져간 다이소 삼천 원 짜리나 지인의 K2 몇십만 원 짜리나 결과는 같았다.
그냥 비를 피하지 않고 다 맞고 가는 기분이 나름 좋았다.언제 이리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걸어보겠는가.걷고 있으니 추운 줄도 모른다. 멈춰 서면 춥지ᆢ
순례길이 시작되었던 포르투갈은 무척 더웠다. 햇볕이 뜨거워 10월이 이럴 수 있나 싶었는데 스페인으로 점점 올라오며 날도 흐르니 이제 가을이 완연하다. 패딩이나 모직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한국은 가을이 깊었겠다.
이 여행에 나를 꾀어낸 지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두 번째이다. 가장 많이 간다는 프랑스길을 오륙 년 전에 다녀왔고 이번엔 포르투갈 길이고 내년쯤 또 다른 길을 갈 거라고 한다.
내년에도 나를 꾀어낸다면 그냥 국내에서 도보여행 하겠다고 해야겠다.
새벽부터 내리 대여섯 시간 걷고 오후 쉬며 그 마을을 즐기다가 (초반엔 힘들어서 도착하면 그냥 뻗었다) 자고 또 다음 날 걷던 단순한 이 시간들이 아마 기억에 오롯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살아보지 않은 패턴이라서 ᆢ
하지만,
오늘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별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참가했던 저녁미사도 별 감흥이 없었고 ᆢ
왜 이렇게 세계각지에서 산티아고 길을 오는지 모르겠다.
진짜 순례자들이 성지를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오기보다는 좀 독특한 방식의 여행을 하는 느낌으로 오는 것 같다.
언젠가 호주 멜버른에서 잠시 들렸던 어느 성당에서 눈물 콧물 빼며 미사를 참석한 적이 있어 내심 산티아고 성당 미사를 기대했었다.
어마무시한 건물들에 비해 속은 텅텅 빈 유럽의 성당들과 달리 전 세계에서 그 성당을 향하여 고행을 하며 오는 것이니 얼마나 미사가 특별할까 싶었다.
성당내부 조각 장식들이 토속적이고 기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성당 지을 당시의 문화적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짐작된다. 성당자체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더 화려해서 기함하게 만드는 성당들을 많이 봤던지라 성당내부에 대해서는 모든 게 그러려니 하고 봐진다.
하지만 미사가 시작되고 갈리시아어로 진행되는 미사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뭔가를 읊조리는 가톨릭 공통의 형식으로 진행되어도통 느낌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순례자들이 온다면 영어 버전 같이 겸해 주면 안 되었나 하는 아쉬움이 깊다.
어느 루트로 어느 나라 사람이 그날 도착했다고 소개할 때만 잠깐 영어로 말씀하셨다. 오죽 답답하면 미사 중에 번역기를 열어 보았는데도 신부님 목소리가 작아서인지 잡히지가 않았다. 미사나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전해지는 말씀이 중심 아닌가. 못 알아먹는 미사는 그냥 문화체험이 될 뿐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모양의 파이프오르간이 있어 혹시 들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것도 듣지 못했다.
성당은 파이프오르간 아닌가.
장엄한 오르간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내려올 때 잠시라도 신앞에 경외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산티아고 성당 특유의 거대한 향로미사 올릴 때만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듯하다. 영상들을 보자면.
중요한 날이나 그날 도착 순례객중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향로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그거 참 ᆢ
리스본행 낮 열차를 타고 올 때 만난 한국 아가씨는 어마무시한 거리를 하루에 걸어내며 40일 걸릴 코스를 25일에 걸어 늦은 밤 산티아고 입성해 대성통곡을 했다 한다.
힘든 여정을 끝낸 감격 때문이었는지 종교적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그런 분들도 있다.
나는 거리도 짪은 포르투갈 루트 중에서도 절반만큼만 걸은 거라 이리 감흥이 없는지 모르겠다.
가는 여정 여정의 시간은 좋았으나 산티아고에 대한 의미나 느낌이 없다는 소리다.
그렇게 걷는 것이 목적이라면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걷는 것도 좋겠다.
교회는 동네교회가 최고요 성당도 동네 성당이 최고다.
젊은이들은 길 위에서 세계 각지 사람들을 만나 사귈 기회들이 있으니 해볼 만한 경험이리라.
성당주위는 관광지 특유의 쇼핑과 음식점들로 가득 차 있다.
중간중간 찍고 가는 여정 스탬프 책을 보여주고 순례증같은 것을 받는다.이런 걸 뭐 하러 하나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참 시니컬 종자다.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되는 루트는 너무 풍경이 아름다워 그 자체 힐링이라 한다. 봄 무렵부터 좋은 ᆢ
리스본 언덕길을 걸어올라 오늘은 여기저기 헤매볼려한다.
나는 순전히 '포르투'가 주는 소리의 느낌, 리스본이 주는 이름의 뉘앙스 때문에 이 길을 나섰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