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책과 글
책장정리를 하면서 버릴 책을 고르고 있는데 버릴 것과 놔두어야 할 것의 기준이 애매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오래되어 누렇게 바래버린 책을 우선 버릴 것인지, 새것이지만 손이 안 가는 책을 우선 버릴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다 정말 오래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 이문구의 '관촌수필(冠村隨筆)'이다. 초판은 77년도에 발간되었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94년도에 발행된 것이다. 오래되기도 했지만 여러 번의 이사과정 중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햇빛을 가리지 못한 채 방치된 적이 있어 책은 유난히 누렇게 바래 있다. 글씨도 너무 작아 침침해진 눈으로 읽기에 무리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퍽 좋아한다. 이문구 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생생한 사투리와 우리말 표현력은 어느 누구와도 견주지 못할 것으로 나는 안다.
이제 시간이 더 지나면 이문구 책 속의 오래된 우리말 언어들은 책 속에만 남아있기 십상이다. 나만 해도 어려서부터 군인이던 아버지 덕에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사느라 충청도 사람이긴 하지만 지방색이 드러날 만큼의 사투리는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들을 사전 없이도 대충 알아듣고 이해하는 내가 영락없는 충청도 사람이며 생각보다 옛날 사람임을 실감한다. 또한 그런 면에서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은 염려스러움도 느낀다. 나는 작품 속 이문구의 고유명사와 같은 그 언어들이 사전 속으로 사라질까 아쉽다.
올 가을에는 이문구의 대표중단편선 '공산토월(空山吐月)'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72년도에 발표한 일락서산(日落西山)부터 77년도에 발표한 월곡 후야(月谷後夜)까지 총 8편에 달하는 그의 연작소설(聯作小說) 관촌수필 중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곳에서 그의 가족사와 더불어 할아버지와 어머니, 옹점이, 대복이, 석공 신 씨 등 중심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삶을 회상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 생활 속 실감 나는 충청도 사투리와 당시 생활상과 이문구 고유의 섬세한 언어들을 만날 수 있고, 다른 책에 실린 그의 대표적인 글들 또한 읽어 볼 수 있다.
책 뒤편에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원'의 '이문구 소설어 사전'에서 참고했다는 낱말풀이가 있다. 풀이가 필요할 만큼 이문구의 표현과 말은 토속적이고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
오늘 책장 정리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나의 첫 책
나는 교과서 외 첫 책 읽기를 '혜란이 이모네' 만화책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청룡당' 무협지를 거쳐 이백 원짜리 '삼중당 문고'와 '범우 문고'를 거치며 발전했다.
내 소유가 된 첫 책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표지가 두껍고 제목이 금색 음각으로 새겨진 멋진 책이었다. 70년대 초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스무 권짜리 전집을 사라고 소개했는데 그것을 사겠다고 손드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스무 명의 아이들에게 각자 한 권씩 사서 돌려가며 읽고 나중에 그것을 소유하도록 했다. 그 책 중 열 권은 우리나라 창작동화였고 열 권은 세계문학이었다. 선생님에 의해 반 강제로 선택된 스무 명 아이들이 나중에 한 권씩 소유하게 되었을 때 모든 아이들은 창작동화를 갖고 싶어 했다. 어렵고 재미도 없는 외국번역책을 원하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스무 권 책 제목을 적은 종이를 통에 넣고 한 사람씩 뽑게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뽑은 책이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였던 것이다. 그의 하루가 몹시 지루해서 당시 읽기를 포기했었던 그 책은 오래도록 책꽂이 귀퉁이에서 새것인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느 날엔가 사라져 버렸다.
지금, 재미있게 읽었던 열 권의 창작동화는 제목과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오히려 세계문학 열 권의 제목은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만큼 5학년 짜리 아이에게 읽히는 것이 무리인 책이었다. 그중에는 '데미안' '그리스로마 신화' '노인과 바다' '좁은 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햄릿' 그리고 단테의 '신곡'도 있었다. 어마어마 한 명작들이었던 것이다.
그때 친구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나는 그 어려운 책들을 초반 몇 장을 읽고는 읽기를 포기했었다. 변변한 친구도 없던 나는 종일 지루하게 보낼 때여서 글자로 된 것은 가리지 않고 몽땅 읽어 치우던 때였는데도 그랬었다. 책 중간중간에 흑백으로 된 삽화가 있었고 그 그림의 내용을 알기 위해 삽화 근처 몇 페이지만 읽기도 했던 것이 생각난다.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나타나 자신이 그의 동생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는 장면과 정신을 놓은 오필리어가 긴 드레스 차림으로 꽃을 들고 시냇물에 반쯤 잠긴 채 긴 머리를 풀고 있던 그림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어떤 책의 몇 부분만 지금도 기억한다. 그 조잡했던 삽화 그림과 함께.
지금도 어려워 읽지 않는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세계명작이다.
사라져 가는 '인지(印紙)'
나는 조금 오래된 작가들이 좋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장길산의 황석영, 박완서, 김주영, 최인호, 윤대녕, 이문구 등. 그들이 쓴 책도 좋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책 뒷장에 작가의 도장이 찍힌 '인지(印紙)'가 붙어 있는 책을 볼 수 있었다. 더러 '작가와의 협의 하에 인지를 생략합니다'라는 문구로 대신한 책도 있었지만 작가의 개성 넘치는 도장이 찍힌 인지는 실제 그 작가를 대하는 듯 정감이 있었다.
'인지(印紙)'라는 것에 대해 요즘 아이들은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인지'에 대해 아는 정도는, 작가는 책을 출판할 때 받는 인세를 계산하기 위해 발행 부수나 판매 부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도장이 찍힌 '인지'인 것이다. 인지는 작가가 발행하는 것이므로 책 판매 부수를 정확히 알게 되고 그에 따른 '인세'를 출판사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디지털 출판이나 인쇄기술의 발달과 함께 출판 유통방식의 변화로, 많은 책에서 인지가 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이런 문제는 신경안 써도 되는 시스템이 되어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인지'는, 사라져 가는 옛 출판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역사적 요소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내 도장이 찍힌 '인지'를 붙인 내 책을 갖게 되는 것. 아직도 나는 이 멋진 일을 꿈꾸고 있다.
바뀌는 취향
나는 요즘 많이 보이는 '자기 계발서'를 사서 읽지는 않는다. 이제 그것들이 내 삶에 영향을 주기에 나는 너무 늙어버렸다. 내면의 힘과 성장을 다룬 책이든, 잠자는 재능을 깨우는 책이든,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책이든, 미래의 나를 후회 없이 만드는 책이라 해도 쉽게 손이 가면서 읽어지지 않는 것이다. 조금 젊었더라면 여러 분야의 자기 계발서들이 유용하게 내 삶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지금까지의 나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자기 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사실 내 나이쯤이면 살아온 인생성찰과 철학이 담긴 '후회 없이 늙어가는 법' 정도의 '자기 계발서' 한 권쯤 읽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에 대한 편식인지 번역되어 있는 외국작가의 책도 즐겨 읽지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과 문화, 감정들에 쉽게 빠져들지 못해 집중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나의 경우, 나이 먹을수록 작가의 평소 생활이나 인생관, 주관이나 성품이 드러나는 '산문집'이나, 짧고 재미있는 '단편소설'류를 읽게 된다. 되도록 전업 작가의 글을 선택하는데, 그들의 글에서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글의 전문성과 숙련된 문장을 만나 배우게 되는 점이 좋다. 그리고 작가가 좋은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한 사람의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다. 또 쉽게 읽히는 책을 좋아한다.
지루하고 난해한 책은 잠을 부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