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어쩌라구..
오빠가 아프다. 전립선 쪽에 암이 생겼다. 5월에 수술을 했고 경과를 지켜보며 방사선치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는 엄마에게 말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사람들이 부모에게 자식 아픈 것을 말하지 못하는 대부분 이유가 지나친 걱정으로 부모 건강까지 해치게 될까 염려해서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것과 조금 다른 이유다. 항상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싶은 신박한 논리를 들이대는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엄마 반응을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다.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 생각하는 자기애가 강한 엄마는 아들이 아프다고 해도 자기 아픈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자주 안 찾아온다는 성화라도 면하기 위해 크게 걱정할 만큼은 아니라는 정도로 말하기로 했다.
"아니 무슨 그런 병이 다 걸리구 그런다니? 그게 다 늙을라구 그러는겨! 그르케 안 아프구 늙는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안다니?"
엄마 반응은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 시시했다. 그게 어떤 병인지 자세하게 묻지도 않았고 어느 정도 심한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정말 늙는 과정에서의 잔병치레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 충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뜨악한 기분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입버릇처럼 '아들이라구 벌벌 떨지는 않았지만, 나는 경식이 한테만큼은 최선을 다했으니께..'라고 말하던 엄마였다. 나는 아들에게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
다음날 엄마가 말했다.
"지가 나한테는 그 따위루 하믄서 저 잘되기를 바란다니? 세상 양심 없는 짓이지. 아주 아퍼서 박박 고생해두 싸다. 어떡한다니? 아픈 것두 다 지 복이구 팔자지~"
원래 상대 기분은 아랑곳없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살던 사람이지만, 아들이 병에 걸려 수술을 하고 아직 치료과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아는 엄마입에서 저런 모진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저 아픈걸 왜 나에게 말한다니? 나보고 어쩌라구!' 엄마 반응은 딱 이랬다. 이제 자신도 늙고 병들었으니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조금은 달라졌을 거라는 기대는 엄마에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사람 쉽게 안 변하고,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참 한결같다.
"아들이라구 달랑 하나 있는 거 한티 내가 이런 대우받을 줄 알았으믄 대학이구 뭐구 안 가르쳤을 껀디..니 오빠나 경미 안 가르키구 그 돈만 내가 갖구 있었어두 지금 이르케 딸한테 푸대접받으믄서 살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나만 미워하고 안 가르친 것은 맞지만, 이제 와서 푸대접은 무엇이며 부모로서 대학 가르친 그깟 돈이 얼마나 된다고 번번이 이런 공치사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돈에 저렇게 집착하는 사람이었다면 왜 평생을 빚쟁이에게 시달리며 살았을까? 부모라면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고 교육을 시키는 것은 당연한 책임과 의무가 아닌가? 번듯한 건물이나 집이라도 한 채 남겨 주었다면 아마 우리 삼 남매는 일찌감치 엄마 갑질에 질식해 죽었을 일이었다. 우리는 엄마가 채 못 갚은 빚을 힘들게 갚아야 했지만 엄마는 자식들이 고생하며 빚 갚느라 애썼다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복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좋은 복을 누리고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불평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엄마가 딱 그 짝이다.
아들이 아픈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이쁘고, 야무지고, 똑똑하고 잘났지만, 남편 잘못 만나서 세상 혼자 박복하고 기구하게 산 줄 아는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왜? 내가 틀린 말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