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깟 병원에.
"자식이 셋이나 되는디, 나를 그래 이런 하빠리 병원에다 데려다 놔야 된다니? 니들이 고대루 받을 거여! 내가 고이 죽을 줄 안다니? 꼭 니들한티 복수하고 죽을껴~!"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또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면회 온 내 얼굴을 본 것이다. 저러기 시작하면 팔에 꽂혀있는 주사며 소변줄이며 호흡기까지 몸에 연결된 모든 것들을 빼내 동댕이치면서 집에 간다고 침대에서 벌떡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그런 힘은 또 어디서 나오는지 말리는 사람까지 밀쳐낸다. 그러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재빠르게 내 표정을 힐끗 살핀다. 엄마 병원비며 입, 퇴원 결정에 내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고부터 내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나 이러는 거 싫지?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란 말이다' 엄마가 심술을 부리는 와중에 나를 관찰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 엄마 속마음은 내 손바닥 위에 있다. 엄마를 똑 닮은 나는 이제 점쟁이라도 된 듯 엄마 속뜻을 훤히 읽는다. 하지만 옛날처럼 반항 한번 못하던 만만한 내가 아니다. 일부러 한번 해보라는 듯 신척도 안 한다. 애가 타는 쪽은 이번에는 엄마다.
엄마는 손을 떨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파킨슨'을 진단받았고 그 이후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났다. 그게 벌써 코로나 이전이니까 한 6~7년은 되지 않았나 싶다. 거동이 불편하게 되어 집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한 것도 2년여에 가깝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심부전이나 천식, 신부전 같이 공식적으로 진단받은 병은 물론이고, 중간중간 골절이나 폐렴, 요로감염 따위로 입원을 하며 병원을 드나들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는 대학병원이 두 개나 있고, 시에서 운영하는 의료원과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큰 병원이 또 있다. 굳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의료접근성이 좋다는 말이다.
입원이 잦아지게 되고 입원을 하면 보호자가 필요했다. 어려서 받은 미움의 앙금으로 나는 엄마를 안 좋아하지만, 직장에 다니지 않아 시간이 많은 내가 보호자 노릇을 해야 했다. 간병인을 써도 되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남편도 꼬박 2년간 병원생활을 했고 그만큼 나는 병원에 익숙한 편이지만 이제 나도 늙었고 더구나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 엄마 병간호라니..
여섯 명이 쓰는 병실에서,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밤낮없이 환한 불빛이며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발소리, 이것저것 잦은 검사, 밤이면 사람들 코 고는 소리까지, 밥때를 놓치거나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되었다.
"밥은 먹었다니? 얼른 가서 입맛에 땡기는 거 사 먹구 와라! 너까지 이게 무슨 생고생이라니.."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저렇게 말해놓고 내가 나가면 남아 있는 병실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지가 여기서 뭐 하는 거 있다구.. 나이는 환갑두 넘은 것이 밤새 처 자는 거밖에 더 하남? 있으나 마나 하다니께~"
보호자가 없어도 되는 병원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다니던 대학병원에도 보호자 없이 운영되는 병동이 있었지만 엄마는 대상이 되지 못했고, 자꾸 안 좋아지면서 입원을 하면 가족이 꼭 상주를 해야 하는 '준중환자실'로 가야 했다. 그곳은 환자의 남, 여 구분이 없었고 3명이 쓰는데도 공간이 좁아서 많이 불편했다. 한번 입원하면 보통 일주일 이상이었고 어떤 때는 보름을 넘기기도 예사였다.
그래서 병원을 옮겼다. 그곳은 보호자 없이 운영되는 병실에 엄마의 입원이 가능했다. 천식과 심부전으로 폐에 물이 차서 호흡곤란이 오면 나는 119를 불러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데다 아파 늘어진 엄마를 나 혼자는 다루기 어려웠던 까닭이었다. 나를 못 미더워 한 엄마가 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항상 위급한 상황에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했으므로 나는 엄마가 병원 바꾼 것을 모를 줄 알았다. 그랬는데 입원실로 올라간 지 이틀 만에 저 사달이 난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대학병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자신의 병은 잦은 두통으로 오래 먹어 온 '약중독'에, 평생 참고 사느라 생긴 '화병'이 늙고 나이 먹으니 쇠어져서 생긴 것으로 요즘 젊고 실력 없는 웬만한 의사들은 알 턱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입원을 하고 치료를 오래 해도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병원과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야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인데 대학병원에서도 못 고친 것을 일반병원에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학병원도 성에 안 차는데 일반병원이라는 것이 그만 화를 돋운 것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저런 상황을 거의 매일 겪어야 했다. 하루에 한 번 면회시간 때나 아니면 전화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담당 요양보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 한다.
"어머니 때문에 힘드시겠어요. 보통 할머니가 아니셔~"
만약 자식에게 빚이 아니라 가치 있는 재산이라도 남겨줄 것이 있었으면, 엄마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최고병원을 고집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지금도 엄마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을.
그 말을 차마 못 하고 참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