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이불에 대한 기억

by 경자의 서랍




내가 어릴 적에는 목련이 지고 장미가 필 즈음이면 겨우내 덮었던 솜이불을 정리하는 것이 겨울나기 김장만큼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오늘 바스락거리는 여름 이불을 꺼내면서 어릴 적 깔고 덥고 자던 솜이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본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연탄아궁이가 있는 온돌방에서 솜이불을 덮었다. 솜이불은 우리에겐 너무 크고 무거워서, 이불을 개켜서 장롱에 넣는 일은 항상 아버지 몫이었다. 동생과 나는 한 개의 요 위에서 이불도 함께 덮었다. 그렇게 식구들이 겨우내 덮던 이불과 요 홑청을 새로 시쳐 정리하고 얇은 봄이불로 바꾸는 일은 나름 아주 큰 일이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겨우내 덮어 때가 탄 홑청을 뜯어 내는 것이다. 우리 집은 셋방이라 방이 넓지 않아서 그런 날은 이불이 방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홑청을 뜯어 낸 이불과 요는 벽돌담 위에 걸쳐서 햇볕을 쪼이게 했다. 나는 그것이 질색이었다. 햇살에 드러난 요의 소창 속싸개에는 우리들이 어쩌다 오줌을 지린 자욱들이 몇 군데씩 희미한 얼룩으로 남아 있었던 까닭이었다.





뜯어 낸 홑청은 다라이에 넣어 발로 밟거나 빨래 방망이로 두들겨 빨았다. 그리고 커다란 들통이나 양은솥에 넣어 삶았다. 그것을 삶을 때면 메주콩을 삶거나 간장을 달일 때처럼 마당에 솥을 걸고 장작을 땠다. 빨래 양이 많아서 연탄불의 약한 화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삶아지는 홑청을 엄마는 기다란 막대기로 이리저리 뒤집었다. 불조절이 안되면 빨래 삶는 물과 거품이 솥밖으로 넘치기도 했다.



뽀얗게 삶아진 홑청은 빨랫줄에 널어 말렸다. 일반 빨래보다 크고 무거운 홑청이 땅에 닿을까 봐 처진 빨랫줄을 중간에 들어 올려주는 '바지랑대'라는 긴 막대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면으로 만든 주머니에 찬밥을 넣고 손으로 주물러 찌꺼기 없는 뽀얀 풀물을 만들어 풀을 먹였다. 혹시라도 햇볕에 풀 먹인 홑청이 너무 뻣뻣하게 마르면 입으로 물을 머금었다 '푸우'하고 고루 뿜어서 촉촉하게 했다. 그래야 다듬이질발이 잘 받았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이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가운데 솔기를 기준으로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맞추어 접었다. 그렇게 하려면 두 사람 힘의 균형이 맞아야 했다. 나와 할 때도 있었는데, 마르고 힘이 없던 나는 엄마가 세게 잡아다니면 그 홑청에 딸려가 넘어지기도 했다. 뭐 하나 야무지게 못한다고 혼나는 건 뻔한 순서였지만 대부분 어른들 둘이 마주 잡아 접었다. 그런 다음 접은 홑청을 면보자기에 싸서 주면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밟는 것이 내 몫의 일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밟다듬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지루해서 계속 엄마에게 물었었다.


"아직도 더 밟아야 돼?"


그렇게 '밟다듬이'적당히 정리가 된 홑청은 다시 접어서 다듬이 돌 위에 얹어 다듬이질을 했다. 다듬이질은 엄마 혼자 할 때도 있었지만 품앗이처럼 동네 아주머니가 와서 도와줄 때가 많았다. 좁은 다듬이 돌 위에 얹힌 이불홑청을 두 사람이 네 개의 다듬이 방망이로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 내리치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탁탁 타다닥 탁탁 타다닥'


나는 귀가까이 올라오는 다듬이 방망이가 실수로 머리를 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 구경을 했다. 그렇게 집중해서 보면 오줌을 참을 때처럼 찌릿찌릿한 느낌이 온몸에 들곤 했다.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다듬이 돌과 방망이)




우리 집에는 다듬이 돌은 없고 박달나무로 만들었다는 매끈하게 잘 생긴 한 쌍의 다듬이 방망이만 있었다. 다듬이질을 할 때마다 엄마는 셋방 살이 하느라 시집올 때 해 온 그 좋은 다듬이 돌을 팔아먹었다고 길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다듬이질을 할 때면 방망이만 가지고 다듬이돌이 있는 집으로 가서 해 오곤 했다. 자주 다니는 이사에 무거운 다듬이돌은 다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 잘 못 만나서 그 좋은 다듬이 돌 하나도 간수를 못 했다니께.."



다듬이질까지 모든 과정이 끝난 홑청은 깨끗하고 다림질을 한 것처럼 주름하나 없이 반듯했고, 한나절을 햇볕아래 있던 이불에서는 포근하면서 뽀송한 햇살냄새가 났다.


온 과정을 끝낸 홑청을 펼쳐놓고 그 위에 이불을 얹어 시침질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다듬이질 전 홑청을 발로 밟는 것과 홑청을 시칠 때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을 맡았다. 엄마 바늘에 실이 짧아지기 전에 꿰어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이불 시침질을 할 때면 엄마는 오른쪽 검지에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골무를 끼었다. 오래 쓴 골무는 가운데가 닳아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아 삶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반듯해진 홑청 위에 솜이불을 펼쳐놓고 시침질을 하던 그때가 또렷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솜틀집 풍경



솜이불이 오래되어 납작하고 단단해지면 무겁고 보온력도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이불 홑청과 속싸개를 뜯어 내고 솜만 홑청에 싸서 이고 '솜틀집'에 간다. 그곳에서는 기계를 이용해 눌린 솜을 새것처럼 부풀리기도 하고 솜을 다시 재단해 크기가 다른 이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솜틀집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운동회날 팔던 솜사탕과 비슷한 솜먼지가 기계가 덜덜거리는 진동에 따라 공중에 떠다녔다. 높은 천장 대들보에도 전깃줄에도 솜을 트는 기계 위에도 솜뭉치가 눈처럼 얹혀있었다.



납작하게 눌렸던 솜은 기계를 통과하는 순간 가져올 때와 달리 한껏 부풀어졌다. 머리에 수건을 쓴 솜틀집 아주머니는 가느다랗고 긴 대나무를 가지고 기계에서 나오는 솜들을 탁탁 치면서 나란히 맞추기도 하고 돌돌 말아 겹치기도 했다. 장날이면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솜을 틀러 온 할머니들이 투박한 나무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솜은 해마다 틀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따라 솜틀집에 다녀오면 내 머리 위에도 하얗게 솜먼지가 묻어있었다.



이제 사라져 가는 희미한 옛 기억들이다.




(이미지 : 이미경작가의 이불그림 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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