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일까?
'내 속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왔나 몰러~'
걸핏하면 엄마는 말했다. 자신을 하나도 안 닮고 못생긴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어렸던 어느 날, 감기에 걸려 며칠 콧물을 줄줄 흘리며 아팠을 때였다.
"경자 쟤는 아무래도 머리통이 썩어 나는 거 같어. 그렇지 않으믄 코가 저렇게 하염없이 나올 수가 있는감?"
엄마는 같은 말도 듣는 사람 마음을 후비는 천박한 표현을 썼다. 저렇게 말하면 뭔가 더 나은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국민학교 6학년 겨울방학이 다가올 즈음, 연탄불을 갈다 뜨거운 물을 쏟아 왼쪽발에 화상을 입었다.
변변한 치료를 안 한 탓인지 상처는 오래갔다. 물집이 터지고, 진물이 흐르고, 나을 때가 되자 허물이 벗겨지면서 긁고 싶은 가려움증이 생겼다.
자다가 나도 모르게 긁어 피가 나기도 했다.
엄마는 내 발 화상이 다 나아 흉터가 울긋불긋하게 생겼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밉다 밉다 하니께 갖은 풍악이구먼!"
화상을 입은 날, 울고 있는 내게 딱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지 입으루 들어가는 건 누가 안 가르쳐줘도 야무지게 처먹으면서 다른 일은 왜 그와 같이 못하나 몰러~'
나는 밥 먹을 때도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지금도 새롭고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든가, 빨리 먹는 것이라든가, 아무 음식이나 먹고 한 끼 때우면 된다는 식의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룽지도 맛있게 누른 날만 먹는다고 혼나고,
김장김치도 맛있는 배추 가운데 부분만 먹는다고 혼나고,
과일도 맛없는 것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혼나고,
내 입에 맞는 반찬이 있는 날은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는다고 혼나고,
생선을 먹을 때도 맛있는 부분은 안 가르쳐줘도 어찌 아는지 그 부분부터 먹는다고 혼났다.
정작 나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로 트집 잡고는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서 들어오지 말라'라는 말로 내 쫓겼다.
가끔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그리 어렵니? 잔소리 안 듣게 잘 좀 해봐라'
누구보다 간절하게 그러고 싶었지만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걸레의 물기를 꼭 짜오지 못해서 혼나고,
일을 시키면 손 발 놀리는 꼴이 느려서 속 터진다고 혼나고,
밥 먹은 자리 걸레질을 시키면 음식 흘린 얼룩이 그대로 있다고 혼나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못했다고 혼나고,
알아서 하는 일이 없고 시킨 일만 겨우 한다고 혼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면 불러도 못 알아듣는다고 혼나고,
잠이 많고 게으르다고 혼났다.
갖은 구박과 조롱 소리를 일상처럼 들으며 그것을 구실로 사흘거리로 한 번씩 집에서 쫓겨났다.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던 나는, 해가지고 누군가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동네골목을 떠돌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스스로 들어가면 '나가 들어오지 말랬더니 누가 너더러 들어오라고 하던?'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무서운 얼굴을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아버지도 동생도 밤이 깊도록 찾으러 나오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해 부엌 한쪽 귀퉁이에서 기르던 누렁이 '메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항상 부엌문은 메리가 드나들 수 있도록 두 뼘만큼 열려 있었다. 내가 메리품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아버지가 찾으러 나왔고 나는 메리 털을 옷에 잔뜩 묻힌 채 그대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몸속 깊이 파고든 한기는 이불속에서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몸을 떨며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메리와 잠이 든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메리를 좋아했고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머지 식구들은 내가 밖에서 밤이 깊도록 떠돌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슴 아프도록 참으로 지난(至難) 한 시간이었다.
지금 그 골목 오래된 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하지만 어린 내가 서성이며 남겨 놓은 배고프고, 서럽고, 춥던 발자국들은 내 기억이 남아 있는 동안 이곳저곳 빈 틈 없이 가득히 살아있을 것이다.
나는 어째서 그때 그 기억들을 잊지 못하는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저 때 내 나이 열 살 언저리 1970년대 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