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은 좀 버리자!
내가 요즘 짐정리를 하고 있다.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책, 내가 혼자 찍은 사진, 내 생전 다 못쓸 것 같은 그릇들, 이제 또다시 그려보겠나 싶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각종 화구와 여기저기 공모전에 내 보냈던 액자 그림들도 정리를 했다. 공방에 다니며 열심히 만들어 보관하고 있던 도자기로 만든 공예품은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네 마당으로 보내 버렸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도 하지만 왜 내가 진즉에 버리고 살지 못했나 싶게 홀가분한 기분도 든다. 혼자 살기에는 방이 네 개나 되는 넓은 집이어서 구석구석에서 짐들이 많이도 나왔다. 그것들을 장만할 때는 필요해서였겠지만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 편의점에서 사 온 스티커를 열 장도 넘게 붙여 내버려야 했다.
그것들이 있거나 없거나 나는 변함없이 밥을 먹고 잠을 잤다. 하나하나 보면 그것들이 가진 이야기들이 떠오를 것 같아서 애써 외면했다. 내게 이제 옛 기억 따위의 가치는 없다. 가끔은 짓눌려 숨이 막히기도 하니까.
며칠 동안 한바탕 집을 뒤집어엎고 대충 정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러다 팬트리 박스 안에서 그릇을 발견했다. 그것은 종이로 만든 종이그릇이었다. 이십 년 전 어느 봄날에, 주택에 살 때여서 저것들을 온 마당에 널어놓고 말리던 것이 생각났다. 꺼내 놓고 보니 아직도 색이 곱다. '아, 이것들이 여기 있었구나!'싶으면서 아직 버리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반가웠다. 살림을 정리 중이면서도 이 그릇과 만들던 기억까지 스티커를 붙여 쓰레기처럼 버리기는 그냥 싫었다. 그렇게 '그냥'이라는 하찮은 이유로 당분간 놔두기로 한다. 소중한 기억을 되살려 만든 나름 작품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핑계로 '이제 공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라고 하면서.
내가 어릴 적 오룡동에 살 때, 이 종이그릇을 처음 만났다. 오룡동할머니는 부잣집 외동딸이어서 시집올 때 할머니 수발을 들어줄 몸종까지 데리고 왔다고 한다. 안방 한쪽에는 굉장히 귀한 거라는 장롱과 서랍이 많이 달린 반닫이장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할머니는 색이 고운 이 종이그릇에 겨울이면 한과를 담아 놓고 우리가 가면 두어 개씩 꺼내 쥐어 주었다.
한과가 담긴 종이그릇은 색동저고리 소매 색처럼 알록달록했다. 그것은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 예전에는 딸을 시집보낼 때 정성스럽고 예쁘게 만든 이것에 '이바지 음식'을 넣어 보냈다고 했다. 떡이나 강정, 다식, 정과. 엿 등 마른 것들을 넣어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종이그릇은 봄이나 가을에 만들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 빠른 시간에 마르면 겉면이 갈라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은은한 햇살에 은근히 말려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신문이나 우리가 다 쓴 공책처럼 못쓰는 종이를 모았다. 그것을 잘게 찢어 커다란 다라이에 넣고 물을 부어 불렸다. 하룻밤을 꼬박 불린 종이는 흐물흐물했다. 그런 다음 밀가루풀을 큰 솥에 가득 쑤었다. 흐물 해진 종이와 밀가루 풀을 돌절구에 넣어 찧는 것이 다음 일이었다. 종이는 손으로 물기를 꼭 짜서 풀과의 농도를 어느 정도 맞추었다.
그러면 절구에는 이것이 신문지였나 싶을 만큼 종이로써의 흔적은 없이 거무튀튀하게 찰진 반죽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오룡동할머니는 그것을 '종이죽'이라고 했다. 내가 만든 것은 작은 소품이지만 그때는 커다란 항아리나 다라이를 틀로 사용했다. 바탕이 되는 틀에 종이죽을 고르게 펴 발라 만드는 종이그릇이기 때문에 틀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종이그릇 모양이 정해졌다.
항아리에 바르면 항아리 모양 그릇이 나오고 양은 밥통에 바르면 밥통모양 종이그릇이 태어나는 것이다. 얼마나 솔직한 작업인지.
첫 번째 작업은 풀기가 있는 종이죽을 틀이 되는 것에 고른 두께로 펴 발라 주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너무 두껍게 바르면 투박했고 얇게 바르면 그 부분이 주저앉거나 떼어낼 때 구멍이 났다. 종이죽을 고르게 입은 틀은 응달로 옮겨졌다. 열심히 절구질을 하여 다라이 가득 만든 종이 죽은 항아리와 함지박 같은 큰 틀에 바르고 나면 금방 없어졌다. 응달에서 종이죽을 바른 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얗게 말라갔다.
항아리를 틀로 사용한 것은 바짝 마르기 전에 칼로 반죽을 세로로 몇 군데 갈랐다. 항아리는 배가 나오고 입구가 좁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틀에서 분리가 되지 않았다. 바짝 마르기 전에 배를 가른 종이죽그릇을 항아리 틀에서 조심스럽게 분리해 낸다. 지금처럼 랩과 같은 것 없이 맨 항아리에 바른 종이죽이었으므로 그것은 많은 경험과 조심스러움으로 떼어내야 했다. 틀과 잘 분리가 되면 칼로 자른 부분은 창호지에 풀을 발라 자른 부분끼리 붙여줬다. 틀에서 분리가 되고 나서야 형태를 갖춘 종이그릇은 햇살을 맘껏 쬘 수 있었다. 수분이 마르면 종이그릇은 단단하고 가벼워졌다.
그것들이 마를 동안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서 색종이를 가위로 예쁘게 각종 모양으로 오려냈다. 종이그릇에 붙여 꾸미려는 장식이었다. 색종이는 시장에 가면 무당들이 사용하는 무속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그곳에서 샀다. 눈을 부릅뜬 불상이나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온갖 화려한 색상의 평소 볼 수 없는 장식들이 왠지 무서워서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바짝 마른 종이그릇에는 초벌로 기본 한지를 발랐다. 꼼꼼하게 한지를 바른 그릇은 또다시 햇살아래로 갔다. 풀기가 마르면 그때서야 비로소 색깔이 있는 종이를 예쁘게 배합을 해서 발랐다. 못생긴 항아리에 붙어있던 거무튀튀한 종이죽이 화려한 그릇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꽃모양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색종이를 바른 그릇 표면에 붓으로 니스칠을 했다. 그러면 종이표면이 반짝거리면서 윤이 났고 물이 금방 스며들지도 않았다. 종이그릇은 만들기 어려운 만큼 날을 잡아 한번 만들면 여러 개를 만들었다.
틀을 항아리로 만든 것은 쌀이나 콩과 같은 곡식을 담았고 작은 함지박은 바늘이나 실, 골무등을 넣어 놓는 반짇고리로 썼다. 함지박으로 만들어 뚜껑이 있는 것에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옷들을 넣어 놓기도 했다. 종이그릇은 생각보다 단단했지만 아무래도 물이나 불과는 상극이었다.
옛날에는 쉬운 게 없었다. 종이그릇을 만드는 데도 며칠이나 걸렸다. 이제 종이그릇을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그릇도 있었단다. 이런 그릇은 이렇게 만들어 썼단다.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나는 왜 이렇듯 쓸데없는 기억들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어린 시절 기억에 의존해 이것들은 만들면서 나는 까닭 없이 들떴었고 즐거웠었다. 오랜만에 이것들은 보고 나른하게 옛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온전히 할머니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오래전에 내가 만든 각종 모양의 종이그릇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