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빚꾸러기
"오늘 느이 엄마가 소금 사 왔나 보다"
밥상에 오른 국이 짜면 아버지가 농담처럼 뼈 있는 말을 한마디 했다.
엄마는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아버지가 안정된 직장생활을 오래 못한 탓도 있지만 우리 집이 가난하게 살았던 가장 큰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수입의 한도 내에서 지출을 하거나 부업을 해서라도 벌이를 늘이거나, 아니면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계획 없이 쓰다가 생활비가 모자라면 빚을 냈다. 지금처럼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카드를 쓰던 때도 아니었고, 가까이 지내는 이웃에게 변통을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엄마가 돈을 변통하는 사람은 동네에 사는 주변 사람들이었다. 때로 오빠친구네 이거나 또는 동생친구네 집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늘 돈을 여기저기 빌리러 다니는 '빚꾸러기' 집이라는 것이 창피했다. 엄마가 돈을 빌린 집 친구를 만나면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 오빠나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계획 없이 빌린 돈을 제 때 갚지 않아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들 목소리는 늘 컸고 그 소리는 나에게 익숙했다.
'이자는 왜 안 주냐?'
'준다고 약속한 날짜를 어기지 않았냐?'
'왜 매번 거짓말을 하느냐?'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빚은 언제 갚느냐?'
'언제 줄지 갚을 날짜를 말해라!'
한번 심하게 악다구니를 치고 가면 한동안은 잠잠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대추나무 연 걸리듯 돈을 빌린 엄마는 여러 사람에게 자주 시달려야 했다. 빚쟁이들이 다녀가고 나면 엄마 신경질은 다른 날보다 심하게 이어졌고 그것을 받아내는 것은 오롯이 나머지 식구들 몫이었다.
평소에도 다르지 않지만, 빚쟁이들이 다녀간 후에 아버지는 더 엄마에게 절절매며 비굴해 보일만큼 비위를 맞추었다. 그건 마치 시골 개들이 주인이 가까이 가면 지레 몸을 뒤집어 배를 보이며 꼬리를 치는 것과 흡사했다. 돈을 빌려오고 쓰는 건 엄마였는데도 그랬다.
"아버지가 못나서 느이 엄마가 고생하잖니. 내가 많이 벌어다 주면 느이 엄마가 저럴 일두 없구.."
아버지는 자신을 탓했다. 엄마는 빌려서라도 돈이 생기면 한동안 티가 났다.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옷이며 그릇이며 색다른 것들을 사들였다. 그것은 가난한 우리 집에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쌀이나 연탄을 외상으로 들일 때도 허다했으므로 나는 그런 빚이나 좀 갚았으면 했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느이 엄마 집에 있냐?'라고 연탄집 아주머니가 묻는 것은 엄마에게 연탄값을 받으러 가려는 거였다.
십만 원을 빌려 먼저 빌린 오만 원을 갚으면서 엄마는 약속했던 이자보다 더 주었다. 엄마는 그런 쓸데없는 돈을 자주 그리고 많이 썼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느이 엄마가 원래 기마이가 좋지 않니?"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돈에 대해서는 철저했지만 엄마가 하는 일에는 그냥 저렇게 말하고 넘어갔다. 엄마는 식구들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우리 집 '절대권력'이었고, 아버지는 자신이 돈을 충분하게 벌어다 주지 못해서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엄마는 돈을 빌려 오면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헤프게 써댔다. 어쩌다 떡을 해도 많이 해서 여기저기 돌렸고 계란을 삶아도 한판을 몽땅 삶았다. 먹는 거 가지고 궁상떨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남아서 상하면 여지없이 버려야 했다. 빚이 점점 불어나고 있는데도 택시를 타고 거스름돈이 조금 남으면 그것을 받지 않았고,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충동적으로 물건을 샀다.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저런 소비형태는 동네 아주머니들 입방아 주제가 되기 십상이었다. 엄마는 내가 들어도 뻔한 거짓말을 예사롭게 하면서 돈을 빌렸다. 식구들 중 누가 갑자기 아프기도 했고, 오빠가 수업료를 몽땅 잃어버리기도 했다.
엄마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일은 오래 지속되었다. 빚을 갚지 못한 대가로 집에 있는 냉장고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고, 법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중독처럼 '빚꾸러기' 짓을 멈추지 못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엄마는 정말 외상이라면 소도 잡을 듯이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처럼 쓰면서 뒷일을 생각 안 했다.
엄마는 덧셈과 뺄셈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돈을 쓰고는, 빚이 불어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려 했다. 결국엔 '돈두 못 벌면서 어디 가서 십 원짜리 하나 변통해오지도 못하는 주변머리 없는 느이 아부지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 엄마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술을 먹니? 아니면 담배를 먹니? 그렇다구 사치를 부리구 노름을 하는 것두 아니구 누구처럼 춤바람이라두 났다는 거냐? 내가 다 잘못한 거믄 그 돈을 나 혼자 어디에 썼단 말이라니?"
엄마는 오래도록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늘그막에 한정식을 파는 식당으로 허드렛일을 하러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