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필요한 '내면아이'

인정할 것인가?

by 경자의 서랍



지난 어느 신문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글을 읽었다. '내면아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의 칼럼이었다. 가짜뉴스나 근거 없는 믿음이 인터넷시대에 만연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것 중 하나가 '내면아이'이론이라는 것이다.


'내면아이 이론'이란 누구나 어린 시절 상처받은 자아가 있고, 그 때문에 성인기에 정서적 고통을 겪는다. 그러므로 유년기 상처를 찾아내 충분한 애도를 거쳐 떠나보내고 긍정적 서사를 새로 만들어 '내면아이'를 튼튼하게 키우면 정신적 어려움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것이 그 이론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내면아이 이론'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가짜 과학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80년대 초 '존 브래드쇼'라는 심리학자가 들고 나와 인기를 끈 것일 뿐이다. 어려운 삶에서 그런 것을 한번 믿게 되면 어려울 때마다 다시 찾게 된다. 개인의 의지가 성격과 삶을 결정하는 것이고 과거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없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면서 굳세게 인생을 살라'는 내용으로 글을 마치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자아가 단단하게 확립이 안되어서인지 지금도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하거나 일리 있는 말이라면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잘 믿어버린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라는 믿음이 가는 전문가가 쓴 글이라서 내 생각은 다시 복잡해졌다.






나는 '내면아이'이론을 믿었다. 나는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속에는 어릴 적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었다. 그때 받은 유아기적 상처나 아픔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랐었더라면..' 수도 없이 내가 마주쳤던 상황들을 잠 안 오는 밤이면 반추하며 회상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어릴 적 일들을 곱씹으며 과거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 후회하거나 너무 늦어 해결하지 못하는 성인기 부적응 같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의지나 성격이 건강하고 굳건하지 못해서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넌 나약한 것일 뿐이야!'




지워지지 않는 기억




살다 보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어릴 적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글 단골 주제인 우리 엄마 잔소리와 신경질, 내가 받는 미움은 이사 가는 곳마다 동네 사람 대부분이 알 정도였다. 엄마는 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하기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경자엄마는 참 이쁘고 야무진 사람인데 남편 잘 못 만나서 지지리 고생하는구먼"


자신의 잔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그런 시선으로 자기를 평가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 험담의 대상이었다. 나는 종종 그들의 그런 대화를 듣곤 했다.


"참 경자엄마는 해두 너무해, 남편이나 자식들이 뭔 죄가 있다구 허구한 날 그렇게 악다구니를 해 쌌는지 모르것어. 식구들이 착하니께 견디지~ 원"


의도하지 않게 저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싫고 창피했다. 나는 지금도 오십 년이 넘게 살아온, 거의 천안토박이임을 절대 말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첫 번째는 혹시라도 어느 학교를 다녔냐고 물으면 국민학교만 다녔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이고, 두 번째는 엄마에게 구박받으며 가난하게 자란 것을 들킬까 부끄러워서 이다.


드물지만 어떤 때,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만나기 싫은 옛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결혼식장이나 백화점, 시장과 같이 사람 많은 곳이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결혼해서 먼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한결같이 못생기고 살찌지 않아 커다란 외모 변화가 없는 것이 원망스럽다.






내 어린 시절을 알만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작게 쪼그라든다. 엄마 구박은 주변사람들까지 나를 무시하고 깔보며 하찮은 존재로 업신여기게 했다.



'내가 지금 어때서? 지난 일로 주눅 들 필요 없잖아? 내 잘못도 아니었는 걸!'


아무리 당당해지라고 자신에게 타일러도 다 부질없다. 영락없이 그 시절 혼나고, 쫓겨나고, 나가 죽으라는 악담을 듣고도 반항 한번 못하던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던 그 무렵 어린 나로 돌아간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업신여기고 깔보던 그 시선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순간 그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주눅 들어 부끄럽게도 미성숙한 퇴행적 반응이 나타난다.


벗어나지 못하는 형벌럼 그런 날 밤에는 잠들지 못한다. 바보같이 처신한 내게 화가 났다가 억울했다가 가슴에 뜨거운 것을 삼킨 듯 불이 났다.







아무리 전문가가 '내면아이'는 과학을 근거로 없다고 말해도 내겐 필요하다. 나 자신을 깊이 있게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는 까닭이다. 치료되지 않은 '내면아이'는 지금까지 내 어리석고 후회 많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그럴듯한 명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는 아직 고통받고 있는 내부적 '내면아이'가 있어야 하고, 존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 아이의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앉고 흉터까지 사라져 어릴 적 기억속에서 내가 해방될 때까지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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