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집' 순옥엄마

순옥 엄마 이야기

by 경자의 서랍




오랜 세월을 살면서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슴을 후비는 아픈 후회도 있고. 배 고플 때 먹었던 맛있는 음식도 있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 별들도, 보는 내내 울어야 했던 슬픈 영화도, 듣는 순간 가슴으로 들어오던 음악도 있다. 또 몰래 짝사랑하던 사람을 혼자 포기하던 순간일 수도 있다.



글을 쓰려고 옛 기억을 더듬다 보면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생각나는 사람이 헤어진 첫사랑 남자는 아니다. 바로 내 글에 가끔 나오는 오룡동 살던 '순옥엄마'다. 순옥이는 나와 나이는 같았지만 국민학교를 다른 곳으로 다녀서 가끔 보기는 했지만 말을 나누어 본 적 없다. 나는 순옥엄마와 더 많이 말하고 더 자주 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큰 우물'또는 '큰샘'이라고 하는 우물이 있었다. 물론 우리가 이사 갔을 때 이미 그 우물은 사용을 안 했다. 수도가 집집마다 있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우물물이 바닥이 보이게 말라버린 까닭이었다. 우물에 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삼각형으로 맞닿은 커다란 양철 지붕이 삭은 채 있었고 내 허리보다 높았던 우물 위에는 나무로 만든 덮개가 있었다.






순옥이네 집은 그 우물 바로 옆이었고 '대폿집'을 했다. 미닫이 유리문 위에는 '장포집'이라는 나무로 만든 작은 간판이 있었다. 순옥 아버지는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었다. 키와 몸집이 작고 상냥해서 천생 여자 같은 순옥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체격이 크고 눈썹이 진하고 목소리도 컸다. 가게 뒤쪽으로 살림집이 있었고 가게와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따로 있었다.


가끔 지나가다 보면 아저씨 서너 명이 연탄화덕이 있는 둥근 탁자 위에 몇 개 찬과 찌개냄비를 올려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순옥아버지도 꼭 어울려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술을 안 마셨으나, 큰길 옆에 있던 우리 집에는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다 들르기도 했고, 김장하는 날이나 비 오는 날 김치 부침개라도 부치면 나를 불러 순옥이네 집으로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큼하고 달짝지근한 막걸리 냄새가 물씬 났다. 가게 바닥은 시멘트로 발라 놓았는데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막걸리 항아리가 입구만 내놓고 묻혀 있었다. 나무로 만든 항아리 뚜껑는 투박한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항상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작은 체구의 순옥엄마는 내가 내민 노란 양은 주전자를 바닥에 놓고, 항아리 위에 얹힌 묵직해 보이는 나무 뚜껑을 한쪽으로 밀어 열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쌀됫박 크기에 기다란 나무손잡이가 있는 '막걸리됫박'을 항아리에 집어넣고 한참을 휘휘 저었다. 항아리가 깊은 만큼 됫박 나무손잡이도 길었다. 게다가 막걸리 항아리는 바닥에 묻혀 있어서 그렇게 하려면 무릎을 구부리고 상체를 숙여 한쪽 어깨가 항아리 가까이 닿아야 했다. 나는 그 막걸리 항아리가 도대체 얼마나 깊은 걸까 항상 궁금했다.


그 막걸리 됫박으로 한 번 떠서 주전자에 부으면 뽀얀 막걸리가 단 번에 가득 찼다. 내가 주전자를 들고 집에 오면 바로 뒤따라 순옥엄마도 종종거리며 우리 집으로 왔다.


"오늘 무슨 날인감?"이러면서..






순옥엄마는 부지런하고 인정이 많았다.

엄마가 나를 흉보고 조롱하며 이상한 흉내를 낼 때마다 내 편이 되어 한 마디씩 했다.


"경자엄마, 너무 그러지 말어, 사람 팔자 모르는건디.. 나중에 경자 덕보구 살지두 모르잖어?"



혼식을 장려하던 때여서 잡곡을 섞어 싸야 하는 도시락을 귀찮다며 하얀 쌀밥을 그대로 퍼놓아도 한마디 했다.


"새끼덜 밥 굶는디 그깟 보리쌀 좀 삶아서 올려주지~"


이러면서 도시락 싸는 아침마다 사발에 퍼온 보리밥을 우리 도시락에 올려 주었다.



어쩌다 가끔 밖에서 나를 만나면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밥은 먹었다니? 느이 엄마는 자식 악담해서 뭔 좋은 꼴을 보것다구 그러는지 모르것다. 이래 착한 애를.. 쯧쯧.."


나는 순옥엄마가 이렇게 할 때마다 서러움이 왈칵 올라왔다. 내편을 들어주는 다정한 한마디 말에 나는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일까? 다정한 엄마 딸인 순옥이가 부러웠지만 무언가 들킨 듯 창피하기도 해서 내가 먼저 순옥이를 보면 얼른 피하곤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는 오룡동에서 이사를 했고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은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가 된 순옥엄마를 동네 마트에서 만났다. 나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결혼 한 순옥이 오빠가 우리 동네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손주를 돌보느라 자주 온다고 했다.


"느이 엄마는 여전하다니?"


엄마 안부를 묻던 순옥엄마는 내가 잘 사는 거 같아 고맙다며 내 손등을 주름 가득한 손으로 연신 쓰다듬었다. 순옥이는 농사 많이 짓는 시골 부잣집으로 시집은 잘 갔지만 종손이라 제사며 농사일이며 집안일이 많다고 했다. 고생하는 딸이 안쓰럽다는 순옥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랬던 순옥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몇 년 전에 들었다.


남에게 욕먹지 않으며 사는 것도, 존경받으며 사는 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사는 것도, 돈을 많이 벌어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것도 나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어떤 때 문득 다른 이에게 기억되는 삶 또한 멋지고 가치 있지 않은가 싶다.



나도 누군가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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