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누님'이라 부르는 남자

기억되는 사람

by 경자의 서랍




내가 이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을 알린 사람이 딱 두 사람 있다. 오빠도 동생도 내 아이들도 아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의사고 또 한 사람은 교수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 인맥이 넓지는 않아도 수준은 높은 것 같아 보여 기분 좋다. 하지만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상담도 하고 적절한 약을 처방받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쯤 만나는 의사 선생님에게는 나의 어린 시절이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해서 말하게 되었고, 대학 다닐 때 소설과 시(時)를 배우며 내 글에 항상 칭찬을 해주시던 교수님에게는 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었다. 내가 아주 형편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허세도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사람을 더 추가하려고 한다. 대학에 다닐 동안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교수님이다. 사실 내가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었으나 글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 염려스러웠고, 내 글 주제가 '나 이런 글 써요'라고 말하기에 너무 개인적이고 내밀한 가정사여서 말하기 어려웠다. 내가 벌거벗은 채 광장에 서 있는 것처럼 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러니까 더 신경 쓰인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나를 '누님'이라 부른다. 우리는 아래로 띠동갑이다. 그 호칭이 싫지는 않지만 어찌나 어색한지 아직까지 자연스러워지지 않고 있다. 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불린 적이 처음인 까닭이다.


쉰여섯에 검정고시를 치르고 들어간 대학에서 1학년 2학기 수업을 들으며 처음 만났다. 막 스무 살이 된 아이들과 학교생활에 서툴게 적응해 나가던 때였다. 학교에는 학생들만의 커뮤니티인 '애브리타임'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이 있다. 그곳에는 시간표를 비롯해 대학생활 모든 정보를 편리하게 공유할 수 있다. 학기가 새로 시작되고 수강신청 시기가 왔을 때 우리는 그곳에 선배들이 올려놓은 교수 수업평가를 참고해 수강신청을 한다.


그곳에서 그는 '금요일의 남자'로 불렸다. 강의를 잘하는 것뿐 아니라 실력도 있고 아이들과 소통도 잘하고 재미있다는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많았지만, 과제가 많고 금요일에 꼭 수업을 한다는 불만스러운 평가도 드물게 있었다. 기숙사에 있거나 통학을 하는 아이들 모두 주말과 가까운 금요일 수업을 피하고 싶어 했다. 시험이야 어찌 되었든 일주일에 사흘이나 나흘에 수업을 몰아넣는 시간표를 짜려고 애썼다. 그게 성공한 수강신청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는 '고전산문'이 전공이었고 특히 '고전 문화콘텐츠'에 대한 연구와 지식이 해박했다. 내가 배움에 대한 열등감이 깊은 만큼 똑똑한 사람은 무조건 좋아하는데, 내가 처음부터 호감을 느낀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름 정보를 가지고 수강신청을 했는데 2학기에 실패한 과목이 2개나 있었다. 한 과목은 나 말고도 신청을 못한 아이들이 많아서 교수님이 인원을 늘려 준다고 했고 다른 과목 하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금요일의 남자'가 하는 수업을 신청하는 수밖에.


"저 나이 많은 아줌마는 왜 내 수업을 듣는 걸까? 신경 쓰이게.."


첫날 나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읽었다. 하지만 나는 학생이고 그는 교수였다.

처음부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나잇값 못하고 눈치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과 별개로 발달한 촉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내게 호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우유병을 빨 때부터 미움을 받으며 배우고 익힌 나만의 고유한 고급기술인 셈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느낌을 받으면 바로 관심 스위치를 먼저 꺼버린다.


'나도 너 따위 필요 없거든!' 이러면서.






지금도 생생한 강의 제목이 '글로벌 문화콘텐츠의 이해'였다. 물론 금요일 수업이었다. 그는 수업 때마다 책상을 둥글게 배치하도록 했다.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게 했다. 처음에는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했다.

그날도 그렇게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주제는 교재로 선택된,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마더구스 이야기의 의미'에 대한 토론식 수업이었다. 그 책은 내게 너무 난해했다. 누구나 그렇듯 호의적인 사람 앞에서는 덜 긴장하는데, 나는 그날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망했다.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내 촉이 틀렸을 수도 있지'

'한 학기 정도 버텨야지 어쩌겠어'

'이런 경험도 하면서 성장하는 거지'

'다음부터 이 교수 강의 안 들으면 그만이지'



나는 먹지 못하는 신포도일 거라 생각하며 여우처럼 돌아서다가, 이상한 편견이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반전시키고 싶은 오기가 살짝 생겼다가. 그렇게 한동안 변덕스러운 감정 기복에 시달렸다.






그즈음 어느 날 일기에 '그 교수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긴 강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적기도 했다. 무언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는 수업시간에도 스스럼없이 '누님!'이라고 불렀다. 학생식당에서 잔치국수나 떡볶이도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게 학교와 또래 아이들 문화를 많이 알게 해 주었다. 이제 시간이 지나갔고 기억나지 않는 것이 더 많아졌지만 대학수업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많이 채웠던 순간이었다.


ㆍ'지역특색 정리' 수업으로 전철을 타고 갔던 '아산'거리 수업

노량진 탐색'을 위한 2박 3일간의 서울 나들이

ㆍ어려웠던 미시사(微時史)와 구술사(口述史) 수업 후에 단행본 책까지 만들어 출간했던 값진 경험

젠트리피케이션' 보고서 쓰기 현장답사로 갔던 이태원거리

도서관 위층에 있는 '학교 박물관' 탐방하기

사라져 가는 지역문화를 담기 위한 '헌 책방'과 '재개발 예정 골목' 돌아보기


그는 다양한 방식의 열린 수업을 했다. 과제도 마찬가지였다. 어렵기도 했지만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과제는 없었다. 지정해 준 책의 어느 한 부분을 읽고 감상문을 써도 A4 딱 한 장 분량으로 써서 내라는 식이었다. 모자라도 넘쳐도 감점이었다. 쉬워 보여도 여간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다 읽고 개개인 맞춤 피드백을 준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나는 수강신청 때마다 그의 수업을 제일 먼저 장바구니에 담았다. 몇 번은 공강시간에 '교수연구실'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이들도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는 세상에서 살던 내가,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었다.


나는 친밀하기 않은 남자와는 밥을 먹지 않는다. 불편하고 싶지 않은 게 이유다. 이런 내가 유일하게 함께 밥을 먹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남자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은 물리적 거리가 먼 강원도 학교에 있어 섭섭할 만큼 마음도 멀어진 듯 연락이 서로 드물다. 그저 건강하고, 내가 그렇듯 그에게도 내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기를 욕심내본다.




(2학년 때, 교수님과 아이들과 '이태원' 답사 가서 찍었다. 이날 이태원이 내겐 생애 첫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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