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라졌다.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그날은 엄마와 함께 사는 '극한 일'을 해 내고 있는 동생 흉을 길게 보았다. 엄마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나와 통화할 때에는 오빠와 동생 흉을 보고 동생에게는 내 흉을 본다. 직장에 다니는 오빠나 동생보다 나와 통화하는 횟수가 잦으니까 주로 오빠와 동생 흉을 듣게 된다.
"니가 몰러서 그렇지, 걔 성격 이상해 야, 어려서는 모르것더니 아주 하는 짓이 니 아부지랑 똑 같다니께~ 어쩌믄 지가 나한티 그럴 수가 있는겨?"
ㆍ늘 마시는 박카스를 항상 있던 곳에서 치워 놓은 것은 나 보고 먹지 말라는 것 아니냐
ㆍ아파트에서 열리는 '장터'에 다녀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설탕 묻힌 도넛 한 개를 안 사 왔더라
ㆍ배달 온 음식그릇이 버리기 아깝길래 어디 쓸데가 있겠지 싶어서 닦아 놨더니 묻지도 않고 홀랑 버렸더라
ㆍ설거지하면서 뎅그렁 거리는 소리를 내는 건 내게 불만 있는데 말을 못 해서 그런 거 아니냐
ㆍ고양이 간식 주지 말라고 했는데 그깟 거 좀 배부르게 줬다고 간식을 나 모르게 감춰놨더라
ㆍ향기 나는 섬유유연제도 제 옷에만 사용하고 내 옷 빨 때는 안 넣어주더라
ㆍ내가 한 설거지를 한번 더 하는 것은 내가 한 것이 더럽다는 거 아니냐
ㆍ화분에 물 한 번을 안 주는 것은 나보고 주라는 거 아니냐
ㆍ음식물 쓰레기가 꽉 차도 알아서 버리는 법이 없다
ㆍ김치부침개를 해서 모녀가 식탁에 앉아서 먹으면서 나 보고는 먹어보란 소리도 안 하더라
"오장육부 뒤집어지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 줄 안다니? 내가 참구 사니께 그렇지 이루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읍다"
이런 말로 항상 마무리가 되는데, 엄마 말 거의 대부분은 왜곡되었거나, 거짓말이거나, 사실에 허구를 더한 '팩션'이다. 어려서부터 이골이 난 우리들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엄마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좋게 좋게 기분을 맞추며 전화를 받는 일에 선수가 다 되어 있다.
어느 날이다. 그날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거의 우는 소리였다.
"내가 억울해서 살 수가 읍다, 니 오빠를 내가 어떠케 키웠는디.. 나한티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니?"
엄마는 최근 들어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들을 위해 '요양원'에 가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당장 가겠으니 알아보라고 했다가, 기침이 심하니 기침이나 가라앉고 나면 가겠다고 했다가, 여태 있었던 거 겨울이나 나면 가겠다고 했다가, 처방받은 약이나 다 먹고 가겠다고 했다. 가기 싫은 마음을 어린애처럼 갖은 핑계를 대며 미루는 것이다. 우리는 엄마가 요양원에 보내질까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보내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엄마도 가려는 마음 없이 자식들 눈치 보며 해보는 말치레일 뿐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니덜은 나 빨리 죽었으믄 하지? 니덜이 빨리 죽기 원하니께 나는 오래 살거여~ 내가 누구 좋으라구 니덜 원하는 대루 일찍 죽는다니? 요양원? 내가 거길 왜 간다니? 거기가믄 죽어서나 나온다는디, 나는 벽에 똥칠하도록 오래오래 살어서 니덜한티 복수하고 죽을 거여~ 내가 못할 줄 안다니? 내가 진절머리 나게 오래 사는 게 니덜한티 하는 복수여!"
몇 달 동안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럽게 전화를 해서 괴롭게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오빠가 한마디 했다.
"엄마 요양원에 안 보낸다니까요! 엄마는 요양원에 가두 그 이상한 성격 때문에 여러 명이 생활하는데서 어차피 있지도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마요"
평생 본인을, 이쁘고 야무지고 경우 바르고 배려심 많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엄마가 가장 많이 들으면서도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성격 이상하다'는 말이다. 그 소리는 엄마의 화를 돋우는 어떤 스윗치 같은 것인데 오빠가 그만 그 스윗치를 무심코 건드리고 만 것이다.
다음 날 오후 엄마가 사라졌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 바깥출입이 제한적인 사람이 집안에서 나간 것이다. 전화기도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엄마만 사라지면 매번 얼굴이 하얗게 질려 찾으러 다니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나는 엄마가 나갔어도 신척도 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열 번도 더 했을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차장 옆 유난히 커다란 벚꽃나무 그림자가 동쪽으로 길게 누울 무렵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무슨 일이 있었냐는 무심한 얼굴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이럴 때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가장 즐겨보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말없이 보고 있었다.
사나흘 후 엄마가 스스로 털어놓은 그날의 내막은 이렇다.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며 경비아저씨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여기서 한참 떨어진 시골로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이거 한 가지밖에 없다 싶어서 목이라도 매서 죽어버리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가(人家)도 없는 산길에 내려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택시기사가 거동도 불편한 노인이 이런 곳에 무슨 볼일이 있어 내리는지를 물었다. 개인사정이니 묻지 말고 내려나 주고 가라고 했다. 택시기사는 눈치가 이상했는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다시 타라고 하더니 처음 탔던 곳에 내려주고 갔다. 그래서 목적 달성도 못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택시기사가 어찌나 눈치가 뻔하던지.. 안 그렇것냐? 걸음두 제대루 못 걷는 노인이 인적두 읍는 산길에 내려달라구 하니께 그럴만두 허지!"
듣기에 그럴듯한 이 이야기는 완전 엄마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나는 그날 엄마가 어디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아파트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내게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 집 엄마가 오늘 어쩐 일인지 엘베를 타더라구, 그래서 몸두 불편하신디 혼자 어디 가시느냐구 물었더니 혹시라도 우리 애들 보거든 나 봤다구 하지 말라구 하시대. 오늘은 또 뭐에 맘이 상하셨는지 자식들 걱정 좀 하라구 일부러 전화기두 안 갖구 간다믄서 아래층 402호 할머니네 마실 가시던디?"
이런 엄마 딸이라는 사실이 가끔은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