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내가 운동을 시작했다.
아파트 내에도 제법 규모가 크고 잘 갖추어진 피트니스센터가 있어 잠깐 다닌 적이 있다. 하지만 운동복을 입은 채로 앞 집이나 같은 엘베를 이용하는 이웃을 마주치는 것이 편하지 않다는 하찮은 이유로 그만두었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곳은 집에서 가까운 '문화센터'다. 시에서 운영하는 그곳은 수영장과 목욕탕까지 있다. 시설도 좋지만 가격도 합리적이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수영과 아쿠아로빅, 헬스, 필라테스, 바디핏, 퓨전워크아웃이라는 수업도 있었다. 나는 요가와 헬스와 스트레칭의 그 어디쯤 된다는 '바디핏'을 신청했다.
온라인 신청이 열리는 새벽시간에 수강신청을 하듯 로그인을 하고 기다렸다. 경쟁이 치열해서 클릭이 조금만 늦어도 신청에서 떨어진다고 한다. 나름 빠른 클릭부심이 있던 나는 제일 인기가 좋다는 오전 9시 타임을 성공적으로 신청할 수 있었다.
운동은 장비빨이라는 주변의 부추김에 '까짖거'라는 생각으로 교대로 입을 색깔이 다른 '레깅스' 몇 장과 기능성 웃옷도 색 맞추어 샀다. 운동화와 양말도 빠질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우리 집에는 택배 상자가 매일 현관 앞으로 던져졌다.
첫 수업이 있었다.
물 한 병과 땀이 나면 닦을 수건도 야무지게 챙겼다. 1대 1 수업이 아니라 열명이 한 그룹으로 받는 수업이었다. 맨 뒤에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는데 대충 봐도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교실 안 거울 속으로 몸매가 드러나는 찰싹 붙는 레깅스를 입은 내 모습이 반사되어 사방에 보였다. 에구머니나!!
엉덩이가 드러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운동용 반바지를 위에 덧입기는 했지만 많이 낯설었다. 배꼽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젊은 엄마들이 내 앞에 둘이나 있는 것을 보고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상체운동을 하는 날은 설거지할 때 그릇 들기도 힘들었고, 다리운동을 위주로 하는 날은 화장실 변기에 앉을 때마다 '아이고'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럴수록 운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한 달이 지났다.
꼭 끼는 레깅스도 익숙해지고 남들 8킬로짜리 케틀벨을 들 때 6킬로도 쩔쩔매던 것이 여유 있어지고 허수아비처럼 제각각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던 팔다리도 한결 나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줄어드는 '근감소증'을 질병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운동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느 날이었다.
한 사람이 조금 늦게 왔다. 정원은 열명이지만 거의 한 두 명쯤 참석하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어~ 이상하다. 수강생이 열한 명이 되었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출석 한 번 불러야겠는데요?"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넘친 한 사람이 누구일까? 순간 불길한 예감이 내 등짝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키오스크를 통해 재등록을 하는데 나는 사우나 이용권만 끊고 '바디핏' 등록을 깜박한 것 같은 생각이 스친 것이다.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다니.. 운동을 끝내자마자 1층에 있는 '안내'에 가서 확인을 부탁했다.
"재 등록을 안 하셨는데요? 빈자리는 다른 분이 들어오셨어요"
그럼 그렇지! 바보 멍청이!!
내겐 뻔뻔함이라든가 배짱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 그런데 등록도 안 한 채로 운동복을 입고 선생님에게 자세 교정까지 받으면서 공짜 수업을 일주일이나 받은 것이다. 오늘 만약 열명이 다 오지 않았다면 나는 다음 수업에도 세상 해맑은 얼굴로 운동을 하러 갔을 것이다. 아 부끄러워라!!
사무실로 갔다.
수업을 끝낸 선생님이 있었다. '오늘 넘친 한 사람이 나였다고.. 착오가 있었다고.. 등록을 한 줄로 알고 있었다고.. 죄송하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면서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데 염색 안 한 하얀 머리 뒤통수가 유난히 뜨거웠다.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