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한 조각 '꿈'

나도 꿈이 있었지

by 경자의 서랍



나도 가능한 꿈이 있었다.


도자기공예며 한국화며 이것저것 개갈 안 나게 찔끔거리며 배우러 다니다가 그 무렵에는 달리기에 빠져있었다. 마라톤 대회 연습하느라 까맣게 그을려 뛰러 다니는 나를 남편은 마땅찮아했다. 시골에 다니며 풍경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고, 먹을 갈아 제법 그럴듯하게 사진 속 풍경을 그려내는 화실에나 다녔으면 하는 눈치였다.


"내가 소정리에 조그만 작업실 하나 만들어 줄 테니까 그림이나 그리지!"


남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공모전에 내놓아 가끔 상을 타기도 하는 내 그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실력인 줄 알고 있지만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고는 어림도 없었다. 잘난척하고 싶은 허세에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변변찮은 그림 실력에도 작업실 소리에는 귀가 솔깃했다.


매실나무 몇 그루 베어낸 곳에 작고 예쁜 공간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도 심어 가꾸고 친구들 불러 수다도 떨면서 차를 마시면, 글이며 그림은 그냥 거저 써지고 그려질 듯했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었다.


십 년쯤 지나 내가 환갑즈음이면 그동안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내 이야기를 쓴 책도 한 권 만들어 '전시회'를 해볼까 하는 뭔가 그럴싸 한 꿈이었다. 그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쓴 책을 한 권씩 선물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은 무엇이라도 가능하게 만들겠다 싶었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받은 '학대'의 트라우마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학대는 주변사람들까지 나를 무시하고 깔보며 하찮은 존재로 업신여기게 했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이곳에서 '어려서는 그렇게도 천덕꾸러기 더니 저런 재주가 있었구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인정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간절하게도.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삶이란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그해 봄에 남편은 뇌종양을 진단받았다. 가을이 생일인 내게 선물로 해주겠다던 남편의 '작업실' 약속은 우리 두 사람의 꿈이 되어버린 채 먼 하늘로 혼자 먼저 가 버렸다.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남겨진 나는 그 땅을 팔아 아이들 학비를 댔고, 결혼을 시켰다. 지금은 쌀을 사서 내가 밥을 해 먹고 산다. 그때 부서진 꿈조각하나 겨우 주워, 늘지 않는 구독자 수를 고민하며 3년 넘게 글을 쓰는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살고 있다. 나에게 꿈을 주었던 남편이 내 곁을 떠난 지 16년이라는 꿈처럼 긴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그때처럼 다시 꿈꿀 수 있을까?


(내가 그린 그림 '눈 내린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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