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한 때는.
나는 마라톤을 뛰었었다.
2004년 봄에 처음 시작하여 2008년 봄에 마무리를 했다. 남편이 아프지 않았다면 몇 년쯤 더 했을지도 모른다.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 풀코스 4번과 하프코스 21번을 뛰었다. 적지 않은 횟수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 일들이 그렇듯이 지금 생각하면 '겨우 그까짖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때 나는 스트레스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한계치에 다다랐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그것을 이겨내려면 내 몸을 힘들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 떠올렸었다. 어렸을 때도 그랬으니까.
창호지 한 장을 발랐을 뿐인 미닫이 문 너머로 '너 같은 거 쓸모없으니 나가 죽으라'는 엄마악담이 들렸다. 허구한 날 되풀이 되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죽어버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몸에 상처를 냈다. 그것을 쥐어뜯어 피를 내고 딱지가 앉으면 그것을 또 뜯어 냈다. 조금 커서는 병원에 가서 사랑니와 내성발톱을 뽑기도 했다. 평소에는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때 기억이 떠 올랐다. '몸을 마음만큼 힘들게 하면 지금의 스트레스를 이겨낼지도 몰라' 그런 생각으로 며칠 동안 고민해서 선택한 스스로의 고행이 달리기였다.
지금까지 자전거도 한 번 안 타봤을 정도로 운동을 싫어하고 못하던 나는, 남들 다 한다는 에어로빅도 수영도 골프도 테니스도 볼링도 한 번 해본 적 없었고 달리기는 그중 최악이었다.
어쨌든 나는 새벽이면 집에서 가까운 종합운동장의 보조경기장으로 갔다. 왜 그런지 다양한 운동을 하러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나만 처다 보는 것 같았다. 그런 부담스럽고 부끄러운 착각을 극복하는데만 한 달도 넘게 걸렸다. 물론 달리기 실력은 형편없었다. 운동장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뛰는 자세가 얼마나 어설펐는지 다른 사람들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자세교정을 해 주고 갔다.
"가슴을 더 펴시고 허리도 너무 구부정해요"
"시선은 땅을 보지 말고 저 멀리 앞을 봐야 해요"
새벽 찬공기를 마시며 달리면 그나마 살 것 같은 날들이었다. 그해 시월에 이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봄부터 쉬지 않고 새벽이면 운동장을 달린 내 달리기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쯤은 가뿐하게 운동장을 달릴 수 있었다.
나도 대회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새벽마다 달려온 내 달리기를 평가받고 싶었다. 10킬로와 하프사이에서 무슨 배짱이었는지 하프마라톤을 신청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역시 뭘 모르면 대담해지는 법이다.
대회날이 되자 '잘 뛸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느껴졌지만 작은 설렘도 있었다. 교통통제로 차가 없는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어 달린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기하고 벅찼다. 하지만 하프코스는 만만하지 않았다. 구간 중간에 있던 낮은 오르막도 가파른 언덕처럼 힘들었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도 빼버리고 싶을 만큼 무게가 느껴졌다. 거기다 반환점을 돌 때쯤부터 발이 아파왔다. 도착지인 운동장이 멀리 보이는 지점에서는 그만 주저앉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다리를 절며 뛰었다. 육체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완화시키고 극복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다 해도 상관없었다. 꼭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뛰기로 했으니까.
결국 나는 해냈다. 처음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완주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자는 첫 마음과 달리 2시간이 살짝 넘는 기록이 못내 아쉬웠다. 발만 아프지 않았더라면..
피니쉬라인을 지나 그늘로 가서 운동화를 벗자 양말이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운동화가 작아서였을까? 뛰는 자세가 이상했을까? 왼쪽 발톱 두 개가 살에서 떨어져 나와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그날 나는 왼쪽 발톱 두 개를 잃었지만 무려 하프코스 마라톤을 뛰었고 '완주메달'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성취감은 대단했다. 무엇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동기가 되었던 스트레스는 생각도 안 났다. 내게 닥친 일을 해결하기보다 회피하면서 비겁하게 뒤로 숨기만 하던 내가, 마주쳐 맞설 용기 같은 것이 생겼다. 나의 처방은 성공한 것일까?
그 뒤로 나는 몇 번의 하프마라톤을 더 달린 후 '가을의 전설'이라는 춘천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춘천마라톤'에서 첫 풀코스를 뛰었다. 2006년 10월 29일이었고 '4시간 29분 12초'의 기록이었다. 그다음 해 춘천마라톤을 한 번 더 뛰었고, 서울의 '동아마라톤' 풀코스도 두 번 뛰었다.
이제부터 스트레스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버렸으니까.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다닌 일'과 '25번의 마라톤'을 뛴 것이다. 항상 엄마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또는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라는 핑계로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니었다면 이것은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성공적으로 해낸 일이었다.
"백리도 뛰던 엄마가 그까짓 거 가지고 왜 그래?"
내가 가끔 게으름을 피우면 우리 애들이 말했다. 풀코스를 뛰고 온 뒤로 한동안 그런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스물한 번의 하프마라톤과 백리를 네 번이나 뛰어다니던 그때 그 기운으로 지금을 건강하게 버티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때로 근거 없는 엉터리 같은 처방이 약이 될 때도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