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셋맘 May 26. 2022

어서 와 군관사는 처음이지?

Part1.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다

 군부대라곤 강의하면서 몇 차례 다녀온 게 다였던 나는 나름 군관사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곳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루빨리 우리의 보금자리가 배정되길 바랐다.



 2016년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던 때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예물, 예단, 가구, 가전까지 최소화하는 미니멀 웨딩이 유행했고, 혼인신고는 1년이라도 살아보고 느지막이 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유행에 맞춰 결혼은 간소하게 혼인신고는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지만, 이 계획에는 두 가지 차질이 빚어지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첫 번째는 관사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혼인신고를 마쳐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혼인신고를 마치자 진짜 부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손만 잡고 잘 수 없게 되었고, 극적인 하룻밤의 결과물로 첫째 아이를 얻었다. 엄마는 임신 사실을 알자 동네 남사스럽다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까지 내게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나는 엄마의 반응이야 어떻든지 간에 하루빨리 남편과 살림을 합쳐 신혼을 즐기고 싶은 철없는 마음뿐이었다.



 관사가 배정되던 날, 난생처음으로 군인아파트라 불리는 곳에 가보게 되었다. 남편은 도심 근처에 있는 관사라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가 좋을 거라 내게 말했다. 집에서 출발해 40분을 달려 고속도로를 내리자 화려한 도심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학병원, 대형마트, 식당, 경찰서 등 남편이 말한 대로 정말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환경으로 보였다. 도심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갔을까? 저 멀리 고가 다리 위로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OO 사단 남문입니다.’ 나는 그 문구를 보자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남문 입구에 도착하자 긴 언덕이 보였고,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이 군부대, 왼쪽이 군인아파트로 불리는 군관사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의 보금자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미래가 상상되어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늦은 밤 남편과 헤어지면서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며 평생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차가 군인아파트에 멈춰서자 나는 부푼 꿈을 안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심 속 자연. 나는 그곳을 이렇게 표현했다. 화려한 도심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군인아파트는 도심에 아파트를 짓고, 안팎으로 공원을 조성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심 속 자연’을 강조하던 여느 아파트 광고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은 꾸밈이 없는 자연 그 자체였다. 단출한 아파트 몇 개 동 뒤로는 낮은 산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주변은 온통 철조망이 막고 있었다. 나는 군부대와 연결된 곳이니 보안상 철조망을 쳤을 거로 추측했지만 군인아파트에 살면서 보안 외에도 철조망을 쳐야 했던 또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산짐승 때문이었다. 아파트 뒷산에는 다양한 산짐승들이 살고 있었는데 나는 살면서 가장 많은 멧돼지 떼와 고라니를 군인아파트에서 목격했다. 놀라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타 부대 관사에 살고 있던 지인의 말을 들었을 때다.

“우리 아파트 뒷산에 멧돼지가 산다니까. 완전 신기하지?”

“말도 마. 우리 관사에는 고라니가 그렇게 내려와서 음식물 통을 열어서 먹고 간다니까. 얼마나 똑똑한지 몰라~”

그녀도 이미 도심 속 자연을 체험하고 있었다.



 군관사는 20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허름한 아파트였다. 남편은 이 아파트 꼭대기 층에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외관부터 높은 층수까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자 나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5층이라니! 앞으로 임신한 몸을 이끌고, 또 아이를 낳아 아이와 함께 오르내릴 생각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자 드디어 눈앞에 우리의 보금자리가 나타났다.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막상 문 앞에서니 다시 기대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집은 외관을 봤을 때 이미 예상했던 대로 실망스러웠다. 거실과 베란다에는 언제 생겼는지도 모를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고, 방문은 누가 발로 거세게 찼는지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기야~ 우리 진짜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 맞지?”

실망감에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해버렸다. 굳어가는 내 표정을 읽은 남편은 문은 보수요청을 할 것이며 집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주겠노라며 나를 달랬다. 이후 방문은 보수를 마쳤다고는 했으나 실제로 보니 구멍보다 더 큰 합판으로 덧대어 놓아 보수를 한 것인지 더 망쳐놓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여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그 문을 보고 혹여라도 부부싸움의 흔적이라 생각할까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주방에는 아담한 싱크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 찾아보기 드문 사이즈로 봐서는 예측건대 몇십 년 전에 들여놓은 것이거나 아파트가 지어졌을 당시부터 있었던 것 같았다. 좁은 화장실은 변기에 앉으면 문을 닫을 여유 공간조차 없어 반드시 문을 닫고 변기에 앉아야 했고, 욕조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낡아 차라리 없었으면 했다. 입주하고 얼마 안 돼서 군관사 전체 화장실 리모델링을 했었는데 그때 집집마다 떼어낸 낡은 욕조를 쌓아놓은 것을 보고 묵은 체증까지 싹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덕분에 우리 집 화장실은 조금 더 넓어졌다. 부대 내에서 관사 생활을 한 남편은 이 모든 것에 익숙했을 테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관사를 둘러보는 나로선 집을 보는 내내 한숨과 놀라움의 연속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살면서 때때로 벌어졌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었다. 임신 중 불면증으로 잠을 뒤척이다가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에라도 참가하려는 듯 열창하고 있었는데 수준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우리나라 최고 연예기획사 중 한 곳인 JYP의 수장 박진영은 이런 말을 했다. 자고로 노래는 공기 반 소리 반이고. 하지만 그의 노래는 백 퍼센트 생목소리로 부른다기보다 내지르는 것에 가까웠다. 한참 동안 이어진 그의 노래로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고, 당장에라도 달려가 오디션의 심사위원이 되어 심사평을 날려주고 싶었다.

‘제 점수는요~ 죄송하지만, 당신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잠들어 있던 남편에게 그의 만행을 얘기했더니 의외의 반응이었다. 군관사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웬만하면 그냥 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는 수없이 남편을 봐서 그냥 참고 잠을 청하기로 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 후로 그는 한밤중에 몇 번이나 노래를 더 불렀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관사 생활은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를 소개해준 동기 오빠의 가족 외에도 남편의 선·후배 가족 다수가 관사에 살고 있었고, 나는 그 덕분에 그들의 아내와도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들은 내가 군인아파트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특히 남편의 야근과 회식 그리고 당직이 잦을수록 우리의 전우애는 더 빛을 발휘했다. 해가 지도록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한 집에 모여 저녁밥을 해결하기도 했다. 평소 친분이 없던 사람이라도 금세 친해지는 곳이 바로 군인아파트였다.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오래도록 함께 우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군인아파트에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거나, 이사를 앞두고 있거나, 남편이 먼저 타 부대로 이동하고 관사가 나올 때까지 아내 혼자 남아 아이를 키우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더 따뜻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군관사는 처음 겪어보는 익숙지 못한 환경에서 잘 적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