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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노루 Jan 03. 2019

춤곡 속에 가려진 그늘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2019년 기해년이 밝았습니다. 모두 황금돼지 해에 부자되세요!


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종로나 정동진에 가기도 하고, 산에 오르기도 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등살에 떠밀려 매년 꾸역꾸역 아차산에 오릅니다. 참고로 전 산보다 바다를 훨씬 좋아합니다만.) 혹은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집에서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 혹은 가요대상을 보면서 새해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올해 수상자들이 마음에 드시나요? 전 그저 소지섭이 대상 타서 기쁩니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해를 기념합니다.


2017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일명 '음악의 도시'라는 칭호에 걸맞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음악회를 통해 새해를 맞이합니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고,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저는 매년 이 공연의 영상을 볼 때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저를 꿈꾸곤 합니다. 드레스업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이 공연은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90여 개국으로 생중계되면서,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 세계 새해맞이 행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메가박스 17개 지점에서 이 공연을 1월 1일에 상영했고, 매진된 곳도 꽤나 많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공연, 그러니까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자, 이를 표방한 음악회들이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에 대항할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1941년 1월 1일 공연을 제1회로, 2019년 현재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은 상임 지휘자를 따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1987년 이래로는 신년음악회를 위해 매년 지휘자를 초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지휘자가 선정되는지는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이는 요즘 인기 있는 혹은 잘 나가는 지휘자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겠죠. (공연이 끝나고 나면 다음 해 지휘자를 발표합니다. 2020년에는.. 두둥~ 78년생 라트비아 출신의 지휘자 안드리스 넬슨스로 선정되었네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이끈 지휘자들


2019년 올해에는 독일 출신의 지휘자로, 현재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지휘자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틸레만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총 17명의 지휘자들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이끌었습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지휘자를 초빙하는 데 있어서 1990년대 이전까지는 빈 출신이거나 빈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지휘자들로 제한하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세상이 변화됨에 따라 이는 완화되어,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나 일본 출신의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자로 선정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특히 오자와 세이지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이끈 최초의 극동 아시아 지휘자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지휘자 선정에 한몫 단단히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리나라 지휘자도 이 무대에 하루빨리 섰으면 좋겠네요.)  


2002년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건배 행진곡>입니다. 2019년! "건배"입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지휘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뿐 아니라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지역' 축제로 시작한 만큼, 그 지역색을 살리기 위해, 빈 출신이거나 빈에서 주로 활동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곡합니다. 그러나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가 지역 축제에서 지구촌 축제로 변모됨에 따라, 지휘자 선정에는 그 제약이 비교적 많이 완화되었으나, 레퍼토리 선정만큼은 여전히 완고합니다. 한 예로, 1991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로시니와 모차르트, 그리고 슈베르트의 작품을 레퍼토리로 선정하자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아바도는 최고의 지휘자로 명성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다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특히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이 주요 레퍼토리로 선정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마치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추모제 같기도 합니다.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가운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이 가장 많이 연주됩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삼형제: (좌)에두아르트, (중)요한 슈트라우스2세, (우)요제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25년 빈에서 태어나 1899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그는 '쿵-짝-짝-' 3박자의 우아한 빈 왈츠를 확립시킨 작곡가로, 일반적으로 '왈츠의 왕'이라고 일컬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왈츠뿐 아니라, 19세기 빈의 살롱에서 왈츠와 더불어 인기가 많았던 폴카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폴카는 '쿵짝' 2박자의 빠른 춤곡으로, 왈츠와 폴카 두 춤곡은 서로 대비를 이루는 박자와 빠르기로 서로 보완적입니다. 이 외에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행진곡을 포함하여 다양한 작품들을 작곡하였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중심 레퍼토리로 연주됩니다. 이와 같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어쩌면 가볍다고도 할 수 있는 왈츠와 폴카와 같은 춤곡들과 행진곡, 그리고 서곡들이 2시간을 훌쩍 넘어 연주됩니다. 혹자들은 이 긴 시간 동안 춤곡만 어찌 듣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여는 즐거운 축제에 이만한 것이 없는 거 같습니다. 음악의 철학과 의미 따위는 잠시 버려두고, 그저 춤곡에 몸을 맡기며,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정식 레퍼토리보다 어쩌면 앙코르 곡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앙코르 곡이 이 축제의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앙코르 곡으로 빠짐없이 연주됩니다. 이는 이 음악회의 전통으로 정립되어, 거의 모든 지휘자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그 누가 뭐라 해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대표곡입니다. '빈 왈츠의 대명사'로 꼽히는 이 작품은 전쟁에 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오스트리아의 '제2의 국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도나우는 오스트리아의 젖줄로, 우리나라의 한강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아름답고 푸른 한강'인 거겠죠. 이 곡이 연주되기 직전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청중들을 향해 새해 인사를 먼저 합니다.


Prosit Neujah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4년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새해 인사를 들어보세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작품은 1848년에 작곡된 것으로, 당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오스트라의 육군 장군 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를 위해 작곡된 작품입니다. 승리의 행진곡인 만큼 2박자의 경쾌한 선율이 주를 이릅니다. 이 곡이 연주될 때만큼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가 아닌 청중들을 바라보며 지휘를 합니다. 청중들은 지휘자의 신호에 맞추어 박수를 쳐야 합니다. 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아, 많은 청중들이 이 곡에 맞추어 신나게 박수를 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여리게, 그리고 세게 박수를 쳐야 합니다. 이 역시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빨라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지휘자가 화낼 수도 있어요.)


2011년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이끄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기나긴 커튼콜이 뒤따르니 주의하세요.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새해맞이 행사로, 이제는 하나의 문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회를 신년음악회로 정립하는 데 있어, 열정적인 지원을 한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바로, 그 사람은 바로, 요제프 괴벨스입니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


괴벨스는 나치스의 선전장관으로, 1930년대 히틀러를 도와, 당의 확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던 그는 몸짓과 말 한마디 한마디로, 힘든 삶에 지쳐 있던 독일 시민들은 열광케 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디어와 문화를 교묘하게 통제함으로써, 그리고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을 선동해 나갔습니다. 실제로 그는 당의 행사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음악을 골랐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히틀러가 베토벤과 바그너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등장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베토벤의 교향곡들과 바그너의 행진곡은 괴벨스가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괴벨스의 역사적 의미는 히틀러 신화의 창시자였다는 것이다. (랄프 로이트)


괴벨스는 대중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도록 재미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단순하고도 분명한 내용들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전 전략을 가지고 있던 괴벨스는 1939년 12월 31일 송년 행사의 일환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춤곡으로 레퍼토리를 채운 연주회를 개최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는 1940년 12월 31일과 1941년 1월 1일에도 계속되었고, 1941년 공연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제1회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당대 빈 필하모닉은 나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1942년에는 단원 중 거의 절반이 나치 당원이었다고도 합니다.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춤곡들이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연주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연을 별생각 없이 그저, 즐깁니다. 그런데,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즐겁게 반복되는 단순한 춤곡 속에 어떠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말이죠. 화려한 춤곡 뒤에 가려진 그늘을 말입니다. 화려함 속에는 늘 추함이 가려져 있기 마련이니까요.


지식인들은 한 가지 주제를 자주 다루면, 사람들이 점점 무관심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다. 같은 내용을 계속 새롭게 주입하고, 새로운 증명 방식을 찾으며 점점 강렬하게 주입하면 청중은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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