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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하는 돌멩이 May 27. 2021

연결고리

하루살이철학#2

connection


제니-스티븐(가명) 부부가 위탁가정(foster care family) 되기로 결심한건 결혼하고 오년이 지난 후였다.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를 꿈꿨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반가운 소식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몇 번의 유산 끝에 간절히 원하는 아이가 꼭 내 몸을 통해 낳은 아이가 아니여도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결심은 두 부부에게 절망의 끝에서 살아남기 위한 합리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부모가 되고픈 희망을 버리지 못했고 그렇게 지역의 한 기관을 통해서 위탁가정을 권유받게 되었다. 위탁가정은 아직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을 임시로 위탁해서 돌보아주는 가정을 말한다. 아직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은 주로 원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거나 방임상태에 놓여있는 상태에서 발견되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고, 아주 소수의 입양성공률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위탁가정을 거치면서 성인 (만18세)이 될 때까지 정부로부터 보호서비스를 받게된다. 특히 이민자 출신의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과 다른 문화권의 위탁가정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고, 불안정한 위탁가정을 떠돌다보면 사회부적응 확률이 더 높아지는 현실에 처해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지역의 위탁가정 출신의 현황을 보면 약 80%이상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범죄, 마약 등에 연루되는 상황이었다. 제니-스티븐은 위탁가정이 되기 위한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치며, 자신들에게 올 아이들이 비록 3개월에서 6개월정도 되는 시간일지라도 잠시나마 따뜻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첫번째로 부부에게 온 '연'이라는 이름(가명)의 아이는 눈이 참 맑은 이제 막 여덟살이 된 남자아이였다. 그동안 위탁부모를 위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아온터라, 부부는 연이가 긴장하지 않도록 천천히 집을 소개해주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함께 세워보자고 말해준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들에게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일부러 과거의 사연을 묻지 않고 지금 무엇이 하고싶은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만 대화를 시도해본다. 하지만 잔뜩 얼어붙어서 방안에서 웅크리며 소통을 거부하는 연이는 그런 부부의 시도가 낯설어 방어태세로 더욱 무장해본다. 그렇게 두 주 정도가 지났다. 여전히 연이는 말이 없었지만, 부부의 따뜻한 분위기에 어느덧 스며들어 적응이 되어갔다. 여느때처럼 식사를 하는 중에 연이는 바다를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바다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학교에서 바다에 관련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았단다. 부부는 아이가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 반가워서 내일 하루는 둘다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 길에 연이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인다. 부부는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연이가 처음으로 보는 바다 앞에서 행복해하는 얼굴이 비로소 또래의 아이같이 평범해 보였고, 그 평범함을 마주한 연이의 미소가 부부의 가슴을 깊이 울렸기 때문이다. 연이는 전에 있었던 가정의 부모로부터 심하게 학대를 받아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연이의 몸 구석구석에는 멍투성이들이 남겨져있었고, 이따금씩 아이가 내뱉는 거친 말들 속에서 그간 연이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해본다.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광경이 믿을수 없다는 듯 설레어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부를 향해서 손을 내밀어본다.

그렇게 마주잡은 손으로 셋은 한 가정이 되기로 결심했고,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고 난 후 지금까지 십여년간 연이와 함께 위탁가정이 되어서, 새로운 아이들을 위해 잠시나마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거처가 되어보려고 하는 중이다. 연이 역시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 지금의 가정에 적응하려 애쓰는 중이다. 혹여나 자기처럼 이 집에 방문한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면 어떻게하나 하는 두려움때문에 가끔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연이 역시 타자를 맞이하는 과정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중에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고통들을 품은 아픔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는 잔잔한 움직임들이 담겨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곳에 모인 청중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로 다른 타자들이 함께 함'의 의미와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타자들'이 사회적 고통을 읽어내고 치유와 화해로 향할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본다. 현실적으로 자기자신이 아닌 타자들을 향해 얼마만큼 참여할 수 있는 것일지, 타자와 함께하는 삶이 과연 가능한 것일지가 궁금하고, 살고자 희망하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을 통해서 타자와 함께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학자이다. 무언가를 사유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의 한계를 넘어서 고정시키거나 물화(reify)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사유방식을 '비판이성'이라고 정의했다. 이성을 필두로 한 계몽의 역사가 자기중심성의 역사 였기에, 비판이성은 이러한 이성중심주의 역시 철저히 비판하며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를 전제한다. 자기중심성은 대상을 타자 그자체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기제를 통해 타자의 본래성을 훼손시키고 이를 정당화시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이성의 과정은 타자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고, 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도구적 이성으로 나아간다. 자기중심성과 도구적 이성은 개인과 타자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각자를 소외시키는 분리된 삶으로 여기게 만든다. 비판이성은 이런 의미에서 타자성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사유방식을 자기중심적 고정상태가 아닌, 타자를 향한 개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끊임없이 물화된 사유를 정당화시키는 자기중심성은 서로를 분리시키고 소외시킴으로써 사회적 고통을 발생시킨다. 비판이성은 그런의미에서 비판적 유물론으로 나아간다. 유물론은 개인들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변혁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제들을 보이도록 밝혀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의 유물론이 비판적인 이유는, 무언가를 당연하게 주어졌다는 긍정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대 때문다. 긍정주의는 자기중심적 메커니즘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예를들면, 필요나 생산이라는 부분적 단면만을 주어진 완성된 형태로 고정하고 그것만 해결하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심의 여지없는 믿음상태를 긍정주의라 한다. 비판적 유물론은 이러한 긍정주의를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타자성을 억압하는 현실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자 한다. 


비판이론에 따르면, 타자와 연결된 자기인식은 자기반성으로 향하게 한다. 사유하는 것은 타자를 인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노력은 이성을 통해서 이루어져야하고, 비판이성을 통해서 서로를 분리시키고 소외시키는 사회고통 메커니즘을 밝혀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비판적 유물론은 더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현실에 놓인 사회적고통을 변혁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비판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타자와 함께 한다는 건, 타자를 위해 울어준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자기자신를 위한 '의미의 작업'이다. 서로를 속이는 자기중심성의 메커니즘 때문에 자기소외와 고통에 시달렸던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바로 비판이성을 통해 타자와 연결된 자신을 인식할 때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타자 인식이라는 위의 전제가 여전히 자기 중심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그럼에도불구하고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자와의 연결고리 안에서의 자기인식이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물화하는 사유가 아닌 열려있는 사유를 가능하게하고, 서로를 분리하고 소외시키는 사회가 아닌 '다름들을 인정해주는 함께함'의 사회로 이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사유방식의 실천은 너와나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첫 단추가 된다. 나이브한 긍정주의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비판이성과 비판적 유물론을 통한 '비판적 유토피아'가 열려있는 사유를 향해, 그리고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구원시키기위해 지금 여기에 도래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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