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맑은 날
양동이로 물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방금 전까지 맑은 하늘엔 해가 반짝이고 있었는데, 잠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오니 베란다 창문으로 앞이 내다보이지 않게 굵은 빗방울이 쏟아붓고 있었다.
비를 더 잘 볼 수 있게 커튼을 활짝 젖히고, 귀를 기울여 차르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어렸을 적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면 엄마를 졸라 차를 타고 나가곤 했다.
필요하지 않아도 무얼 사야 한다거나, 먹고 싶지 않아도 지금 당장 먹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차 뒷좌석에 냉큼 올라앉아 창밖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보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차창을 때리는 타닥타닥 그 빗소리가 참 좋았다. 차를 탈 때, 차가운 빗방울이 두두둑 등뒤에 떨어져 오싹- 하는 그 찌릿함이 좋았다.
창밖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차 안에 있으면 왠지 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그래서 난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때로는 우산을 던져버리고 비를 맞기도 했는데,
따끔한 굵은 빗방울이 살갗을 때리는 느낌이 좋았다.
속옷까지 홀딱 젖을 만큼 비를 맞고 들어오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어김없이 날아들었지만, 깨끗한 목욕을 마친 것 같은 투명해진 내 마음이, 내 머릿속이 더없이 상쾌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엄마 차를 쓸 수 있게 된 친구의 제안으로 몇몇의 친구들이 급작스레 동해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아직 운전이 익숙지 않았던 그 친구의 빨간 프라이드를 앞뒤로 빽빽이 타고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산등성을 넘으며 동해로 달렸다.
그때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우르릉 꽝꽝 천둥이 치더니, 비가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냥 뿌옇기만 했고, 차위에서 누가 양동이로 물을 계속 붓고 있는 것만 같았다.
더는 운전을 할 수도, 그렇다고 고속도로 한복판에 서있을 수도 없었던 친구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최저의 속도로 차를 몰았고, 우리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그렇게 한참에 걸쳐 강원도에 도착했었다.
비가 쏟아붓는 찻 속에서, 비록 초보 운전 친구의 운전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찻속의 아늑함을 느끼며 참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창밖의 비를 보며 우리 집의 아늑함을 만끽하고 있다.
따뜻한 커피의 뽀얀 김을 콧등에 맞으며, 아이들의 조잘대는 수다소리를 배경 삼아,
커다란 야자수 잎을 두둑 두둑 두드리는 굵은 빗방울을 보고 있다.
이 빗물이 내 가슴속 찌꺼기들도 모두 쓸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기분이 맑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