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카를 타고 하코네로!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 - 하코네

by 별빛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관광지에 산다.

하루에도 몇 대씩 한국에서 비행기가 들어오고, 여행의 설렘이 가득 찬 사람들을 늘 만나며 살아왔다.

그들의 '저도 여기 살고 싶어요~' 란 말을 들으며 여기 살고 있다는 걸 내심 으쓱하기도 했지만,

사실 난 늘 그들을 질투했다.


괌으로 온 지 10년. 강산이 한번 변했을 세월을 살면서도, 정작 우리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

시간이 나고, 휴가 계획을 세울 때면 그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갔었다.

분명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넜지만, 여행이라고 하기엔 여행 같지 않은 한국행이 우리가 다닌 전부였다.

이제 큰애가 7살이 되고, 작은애도 곧 5살이 되는 시점.

때가 왔다!

나도 애들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보자!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우리 가족의 첫 해외 여행지는, 도쿄였다.


괌에서 직항이 뜨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말아야 하며, 무조건 큰 비행기가 뜰 것! (저는 비행 공포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어야 하고, 음식도 맛있어야 함. 그리고 유나이티드 마일리지 사용이 가능한 곳.

이 조건에 가장 잘 맞았던 도쿄.

디즈니랜드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며, 4시간 이내로 도착이 가능하다.

다행히 마일리지 항공표도 남아있었다.

일단 티켓을 끊고, 호텔을 잡기 위해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디즈니랜드는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씨 각각 하루씩은 돌아야 하니 너무 빡빡하지 않게 3박을 하고,

남은 2박은 어디가 좋을까?

일본의 카이세키 디너를 맛보고 싶으니 료칸이 좋겠다. 노천 온천도 있는 곳으로!

스케줄을 짜기 시작하자 여행은 금세 구상되었다. 하코네 온천에서 2박과 디즈니랜드에서의 3박.

출발 2주 전부터 매일 새벽까지 짐을 쌌다. 너무 오랜만의 여행인 데다, 아이들과 함께하니 챙길게 끝도 없이 나왔다.


드디어 출발 당일,

아침 6시 40분 비행기라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중간중간 핸드폰 시계 본 게 대체 몇 번인지?

큰 캐리어 두 개와 작은 캐리어 두 개를 꽉꽉 채운 짐을 들고 우린 도쿄로 향했다.

3시간 반의 비행 동안 아이들은 잘 있어 주었고, 우리의 첫 호텔인 미카와야 료칸을 향해 하코네로 출발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신주쿠 도착.

이제 기대하던 로망스 카를 타고 갈 시간. 미리 두 달 전부터 예약을 요청해 두었던 전망석은 과연 어떨지? 처음 기차를 타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이런저런 기대를 하며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과 커피도 사들고 즐거운 마음으로 로망스 카에 올라탔다.

앞과 옆이 모두 창인 로망스 카의 전망석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고,

기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창밖의 일본을 느끼며 갈 수 있었다.

로망스카의 전망석은 열차의 맨 앞자리로 통창을 통해 밖을 보며 갈 수 있다.


드디어 하코네 도착.

산속의 상쾌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우리가 여행 중임에 새삼 행복함을 느꼈다.

이런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6월의 하코네는 낮에는 덥지만 반팔 입고 돌아다니면 땀이 나진 않을 정도,

밤에는 쌀쌀해서 긴바지에 간디 건을 걸쳐야 할 정도의 날씨였다.

일 년 내내 푹푹 찌는 덥고 습한 곳에 사는 우리에겐 정말 완벽한 날씨였다.


버스를 20분쯤 타고 료칸에 도착. 일본 특유의 친절함이 가득한 이곳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우리 방은 기대 이상이었다.

깔끔한 다다미방에 붙어있는 테라스 문을 열자 프라이빗 노천탕이 있었다.

닫혀있던 나무 창을 활짝 열자 정원에 푸른 모습과 맑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린 저녁까지 온천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룸서비스로 나마비루(생맥주) 2잔을 시키고, 노천온천에 퐁당 뛰어들었다.

보들보들 온천물에 우리 가족만 있을 수 있는 이 노천탕. 사방은 푸르른 정원.

긴 시간 비행기와 기차 타느라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무창을 여니 우리를 반겨주던 노천 온천이 보였다.


몇 시간을 놀았을까?

예약해둔 카이세키 디너를 먹을 시간이 왔다.

눈으로 먹는다는 말이 실감 나는 너무 예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기에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다더니, 입에 넣으니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음식을 서빙해주시는 분은 예쁜 기모노를 입고 무릎을 꿇은 채 극진하게 대접해 주신다.

남은 밥은 혹시 배고파질지도 모르는 밤을 대비해, 오니기리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리고,

달콤한 디저트를 끝으로 멋진 카이세키 디너는 마무리되었다.


눈으로도 입으로도 맛있었던 카이세키 디너


새벽부터 일어난 긴 이동을 하고, 물놀이까지 하느라 힘들었던 아이들은 바로 꿀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조용히 테라스로 나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하코네의 밤공기를 마셨다.

아... 행복하다!

이래서 여행을 하는 거지.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살랑 살랑 불어오는 초여름의 밤바람, 사그락 사그락 나뭇잎 소리와 싱그러운 풀냄새...

모든 게 완벽했다.


몇 시에 잠들었을까?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원래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 아닌데...? 피곤했을 텐데도 이 시각에 눈을 뜨다니, 나도 어지간히 여행이 좋았나 보다. 일분일초가 아깝고 자는 시간으로 낭비해 버리기 싫었는지도....

살금살금 일어나, 조용히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갔다. 혼자 모닝 온천을 할 셈이었다.

밤새 덮개를 덮어놓아 뜨거워진 온천물과 아침의 쌀쌀한 공기는 완벽하게 짝을 이루었다.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고요하게 혼자 즐기는 온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정신없이 지내는 내 평소의 시간들과는 완벽히 다른,

고요하고 잔잔한 혼자만의 시간.

그것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은 바로 이거구나!

이 느낌 잊지 말고 기억해야지. 그리고 이 추억을 연료 삼아 또다시 일상에 돌아가면 열심히 살아가야지....

다짐했다.

혼자 아침 온천을 즐기며 맞이한 일출


잠에서 깬 식구들이 하나둘 나와 온천에 동참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을 때

방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극진한 대접의 아침상이 차려졌다.

저녁에 비하면 비교적 간소하지만, 하나하나 정갈하고 깔끔한 맛의 일본식 아침상.

생선구이, 미소국, 계란찜, 반찬 등으로 이루어진 식사는,

아침부터 온천을 마친 우리에게 꿀맛이었고,

이대로 떠나기에 너무 아쉬워 며칠 밤을 더 묵고 싶게 만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번째 호텔로 이동

이번 숙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큰 호텔로, 프라이빗 노천탕은 없지만 온천탕이 유명한 곳이다.

일단 짐을 맡기고 하코네 관광을 하러 나갔다.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를 타고, 로프웨이를 타고 책에서 찾아둔 관광포인트를 찍었다.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는 길, 오와 쿠타니-지옥의 계곡이라 불리는-를 지날 때 중간중간 유황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정상에 도착해서 근처를 산책했다.

뜨거운 온천물에 계란을 담갔다 뺐다 하시며 검은 계란을 만들고 계시던 아저씨. 신기한 검은 계란 두 봉지를 사서 아이들과 사이좋게 나눠먹고, 어묵도,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역시 여행은 먹는 재미!

다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와 호수 도착.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탔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한 날씨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타는 유람선은 참 좋았다.


로프웨이, 유람선, 검은유황계란


삼나무 숲길도 걷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힘들어해서 호텔로 복귀.

너무 무리해서 많은 스케줄을 집어넣는 여행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계획은 세우지만 빡빡하지 않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쉬엄쉬엄 하는 여행.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다.

다니다 좀 더 좋은 곳은 한참을 머물고, 별로다 싶으면 금방 이동한다.

계획은 내가 가볼까 싶은 곳들을 정리해 놓은 리스트일 뿐, 일정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정하고 바뀐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대욕탕에서 온천도 하고, 정원을 산책 하기도 했는데,

이호텔의 최대 장점은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코와키엔 호텔의 아름다운 정원

다음날 아침, 이제 하코네를 떠나는 날.

딱히 일정을 정하지 않았던 날이라, 바로 디즈니랜드로 갈까 하다가 괌에서는 접하기 힘든 미술관을 들렀다 가기로 정했다.


산속에 있는 오픈 에어 뮤지움으로 산의 푸르름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작품들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중간중간 만개해 있는 수국들이 참 이뻤다. 가장 기대했던 피카소 관도 좋았지만,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아이들 놀이터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곳을 가장 좋아했다.


조각의 숲 미술관 (조코쿠노모리)



산과 호수, 온천과 미술관. 하코네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장소였다.

하늘은 청명했고,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먹는 모든 음식들도 맛있었고, 생맥주 또한 일품이었다.

언제든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 나를 힐링시켜준 곳.

늘 꺼내보고픈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 남겨준 하코네를 뒤로하고,

이제 아이들의 원더랜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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