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휴가

코로나가 내게 준 것

by 별빛

벌써 5개월이 넘었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조바심 없이 자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자고

하루 종일 침대와 소파를 왔다 갔다 하며 핸드폰, 노트북, 티브이, 책 무언가를 보다 깜깜해지는 일상.

중간중간 배가 고파지면 무언가 먹고, 청소기를 돌리고 싶으면 돌렸다가, 빨래가 쌓이면 세탁기를 돌리고

밤이 되면 졸리지도 피곤하지도 않지만 침대에 누워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는 삶.

게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도 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모든 게 불확실한 예측 불가능의 삶...


나는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두 아이를 키웠고,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였으며,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아침 눈떠서 침대에 누울 때까지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빠 늘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지우며 해나가야 할 정도였다.

올빼미형 인간인 나는, 새벽 4시-5시 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했고, 하루 수면시간은 5시간을 채 채우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일 년 넘게 생활이 이어졌을 때 드디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손이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생리할 때가 되어 그런 걸까?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며칠 지났지만 그 통증은 점저 더 심해졌고, 옷감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는 경지에 이르렀다.

병원 시설이 열악하고 비싸기만 한 이곳보단 한국에서 치료받아야겠다고 그날 밤 바로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괌에 사는 장점 중 하나는, 한국에 다니기가 비교적 쉽다는 거다.

하루에도 몇 대씩이나 비행기가 뜨고, 4-5시간이면 한국에 도착하니까...


그렇게 한국의 한 유방 외과 병원을 찾았고,

몇 가지 검사를 거친 결과 유방 농양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유방에 염증으로 농양(고름주머니)이 생긴 건데, 몸의 어느 부분에도 생길 수 있는 병이라고 했다.

원인은 과로와 불규칙한 식사 등으로 주로 제때 식사하지 못하는 바쁜 직업의 사람들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치료는 고름 주머니의 고름을 주사기로 빼내고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고, 처방받은 약을 들고 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약이 다 끝나도록 증상은 좋아지질 않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여전히 가슴은 붓고 아팠고, 미열도 있었다.

하루만 더 먹으면 괜찮겠지를 수없이 반복하다, 열이 심상치 않게 오르던 날밤 나는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먼저 갔었던 병원에 가서 증상을 설명하니 의사 선생님은 지금 염증이 더 심해진 상태로 자기는 더는 해줄 게 없다면서 입원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당장 가야 한다고 했다. 염증이 피로 퍼져 패혈증이라도 온다면 큰일이라는

무서운 말을 하면서...


바로 근처의 제법 큰 여성 전용 병원으로 간 나는 일사천리로 입원을 했다.

2인실이었지만, 다른 환자가 없어 혼자 쓰는 방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 당장 입원 치료해야 한다고 겁을 주셨지만,

사실 나는 너무나 멀쩡했다.

단지 그냥 가슴이 조금 아플 뿐.... 그것도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은데...

병원에서 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앞 다이소에서 사 온 삼선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울도 세워두고 그렇게 2주간의 입원 생활을 시작했다.

항생제를 주사로 맞고, 약으로 먹고, 유방의 염증은 칼로 절개해 긁어 내고 소독하는 끔찍이도 아픈 (출산의 고통보다 더한) 치료를 하고 2주 후 나는 완쾌돼 퇴원할 수 있었다.


입원 기간 내내 단백질을 잘 챙겨 먹어야 했는데, 마침 병원 앞에 삼계탕 집이 있었고,

사지 멀쩡하고 생활에 제한이 전혀 없었던 나는 매일 외출해서 삼계탕을 먹었다.

2주 동안 내가 없이 우리 애들은 어쩌나,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은 어쩌나 처음엔 걱정하던 마음이,

어느새 입원 생활을 즐기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은 무얼 먹지?

삼계탕이 질릴 때면 샤부샤부도 먹고, 갈비탕도 먹었다.

완벽히 나만을 위한 시간.... 나의 휴가.

약먹을 시간에 맞춰 내 세끼의 식사시간도 칼같이 지켜졌다.

병원에서 나오는 아침식사가 꽤 이른 시간이었어서, 기상시간도 당연히 그에 맞춰졌고,

밤엔 책 읽는 것 외엔 딱히 할 게 없어 일찍 잠들었다.

완벽한 수면과 식사시간이 지켜지고 있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나자 상처는 회복됐고, 드디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는 내게, 선생님은 "꼭 식사 제시간에 챙겨 드시고, 수면시간 잘 지키시고, 과로하거나 무리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또 생길 거예요."라고 겁을 주셨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학강사일을 그만두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건 친정 엄마가 도와주셨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사업체도 더 이상 내가 밤새워 일할 필요는 없어져 내 몸을 챙기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픈 이후, 나는 휴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남편과 함께 긴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또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사업체는 하나 더 늘었고, 내가 해야 되는 일도 더 늘어났다.

다시 나는 일속으로 빠져들었다.

딱히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뭐든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갈 맡겨두지 못하고 힘들고 귀찮아도 다 내가 했다.

여전히 나는 바쁘게 일하는 두 아이의 엄마로 또 그렇게 살고 있었고,

2020년 3월 15일 그런 내게 다시 한번 "STOP" 사인이 날아들었다.


COVID -19 락 다운.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는 괌에도 상륙했고,

작은 섬에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가진 이곳에 제대로 퍼졌다가는 큰일이 날 거라며 다들 무서워했다.

그렇게 섬은 생활을 멈췄다.

병원, 마켓 등의 필수 사업장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은 문을 닫았고, 나와 남편의 사업체 두 곳도 문을 닫았다.

주말에도 늘 바삐 일하느라 아이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곤 했는데,

24시간 집콕하는 생활이 시작된 거다.

그리고 그 시간은 벌써 5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몇 달은 이어질 것 같은 상태다.

중간에 락다운이 풀리고 마스크를 쓴 채 어느 정도 외출과 외식이 허락되기도 했지만, 2차 웨이브가 온 지금은 다시 락다운 상태이다.

아이들은 그 사이 학년도 바뀌도 학교도 시작했다. 물론 온라인 수업이지만 말이다.


코로나가 준 강제 휴가

나는 실컷 잠을 자고, 넷플릭스를 가입해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아이들과 각종 보드게임을 하며 보냈다.

잠시 확진자가 잠잠해졌을 때는 마스크와 소독제를 잔뜩 챙겨가 조심하며 호캉스도 즐겼다. 호텔 수영장은 여전히 불안해서 주로 사람 없는 비치에서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카약도 타고, 낚시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면서...

몇 년째 바빠서 꺼내보지도 못했던 책장의 책들을 모두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쌓아놓고 하루에 한 권씩 읽어치우기도 하고, 생전 만들어 본 적 없는 감자탕이나 충무김밥 같은 음식들도 만들어 먹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보냈던 2주간의 휴가 때만큼 완벽한 수면 시간과 식사시간은 아닐지라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나 압박감 없이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휴가처럼 그렇게 보냈다

어쩌면 지금은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라고, 너무 무리해서 일만 해서 또 몸에 탈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 이런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걸 지도 모른다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이 긴 휴가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들로 밤잠을 설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이 시간은 어차피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 시간이니까...

그래서 나는 걱정 대신 즐기기로 했다.

나의 휴가를.

언젠가 이 시간이 끝났을 때,

완벽히 재충전된 몸으로 바빠질 날들을 맞이하고 싶다.

그럼 더 기쁘게 나의 일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진 아무 걱정 없이 지금처럼 게으르게 달콤한 휴가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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