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과 2021년. 30년 뒤의 차이.
1992년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였다. 나무위키에서 1992년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냥 달랐다.
그전까지 가수들이 “나 노래 잘하지” “나 춤 잘 추지” “나 멋있지”하는, 평가를 바라는 가수들이었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냥 “무대에선 이렇게 노는 거야”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 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시 기성세대들은 저게 무슨 노래냐 했고, x세대라는 (무슨 무슨 세대 이름이 기사와 마케팅 케이스에 쓰인 첫 세대) 이름이 붙은 70년 대생들은 저 사람들이 바로 우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며 열광했다.
그 뒤에 -그리고 거의 동시에- 등장한 듀스, 박진영, 솔리드, 터보, 패닉, Ref 등의 가수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면 그런 각각의 다른 색깔들로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1992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21년.
1992년에 30년 뒤 서태지와 아이들 중 누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남아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면 당연히 서태지를 꼽았을 테고, ‘아이들’을 맡고 있던 양현석과 이주노의 성패 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실제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한 1996년에 서태지는 잠적했었고, 이주노는 영턱스의 ‘정’ 제작자로 변신, ‘정’이 대박을 치며 라디오 디제이까지 하고 있었고 양현석이 제작한 힙합 그룹 ‘킵식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지금 2021년은?
서태지: 오리지널리티로, 1992년에 우리나라에 랩을 처음 도입했다는 것 하나로 (사실 그가 창작한 것이라기보다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얼리 어답터였을 뿐) 레전드로서 이름이 연명되고 있다. 명예의 전당 레전드 서태지 느낌. 하지만 현재 그가 케이팝이나 대중문화 씬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로에 가깝다.
이주노: 오리지널리티도 없는데 과거 한번 성공했던 콘텐츠와 역량 (영턱스의 정)의 어떤 점을 발전시키고 업데이트해야 지금에도 영향력이 있을지 간파하지 못했다. 시행착오를 통한 learning 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구설수 말고는 연예 기사에도 오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양현석: 지금 양현석이 케이팝 씬에서 가장 큰 영향력 중 하나를 행사할 수 있는 (몇 년 전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 운영과 제작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그가 일군 와이지 사단의 영향력은 지금도 글로벌하게 막대하다) 존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아주 작은 것 하나의 차이 아니었을까. 본인이 서태지와 같은 오리지널리티를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점 (self awareness) 그리고 실패에서 개선점을 계속 찾은 점(킵식스의 부진 이후 지누션, 원타임으로 이어진 시도 - failing forward)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를 지금의 성공으로 만들어 준 self awareness와 failing forward가 지금 그와 와이지에게는 가장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평범한 보통의 직장인인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러닝은 심플하다.
성공/ 실패의 결과에만 집착하면 발전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실패 자체를 힘들어하기보다는 실패에서 나아갈 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은 초기의 작은 성공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상 오늘의 라테 이즈 홀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