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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잔혹사

지금 회사에서, 조직에서 힘드신가요? 그건 조직 잔혹사 때문입니다.

by Savvy

2021 추석 “안방극장”의 1위는 화제성 면에선 아무래도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아닌가 싶다.

옛날 어렸을 때 골목에서 하던 놀이들이 이렇게 잔인한 게임으로 바뀌다니. 모두 오직 돈만이 절실해 모인 밑바닥 인생이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서 발을 헛디뎌 움직임이 감지된 게임 참가자들이 즉시 총살을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부터,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여서 같은 목적 (오징어 게임에서는 돈) 을 향해 달려갈 때 어떤 본능들이 살아 날뛰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여기서 오징어 게임 얘길 너무 많이 하면 스포이니 드라마의 줄거리보다는 드라마에서 발견한 조직 (사람이 둘 이상 모였을 때 만들어지는 집단)의 생태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조직/회사란? (aka 학교와 다른 점):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을 하며 경쟁자를 물리치는 사람들에 대입해 보면 아하! 할 것이다.

- 조직/회사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모두 달려야 하는데, 대개 그 목표란 위에서 주어진 것이다. 바텀 업 방식으로 목표를 올려도 결국 위에서 내려오는 탑다운 목표가 조직의 목표가 되는 것이 다반사이고, 좀 자유롭고 너그럽다는 조직에서는 바텀업으로 올라온 의견을 조직의 목표에 한 줄 정도 추가하는 타협안이 마련되는 정도이다. 우리 회사는 소비자들의 하루하루가 행복할 수 있는 행복 혁신을 가져다주는 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비전을 실행할 중요한 재원입니다,라고 위에서, 교육에서 주입하겠지만 그 비전을 “이룬다”라는 것도 윗선의 목표인 것이다. 자의로 게임에 참가했으나 (법적으로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그 게임판을 벗어나려면 최후의 승리자가 되거나 죽어서 나가는 방법밖에 없는 오징어 게임처럼. (너무 극단적인가?)

- 동료/팀원/조직원은 그 공동의 목표 (실상은 오너/ceo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화 정예 부대로 갖추는 것이 조직의 방향이다. 최적화 정예 부대란, 조직의 목표를 단기간에, 확실하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낼 스킬 (회사에선 그것을 capabilities -역량)이라고 포장해서 부른다)을 갖춘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스킬을 가진 사람들을 부릴 줄 알거나 (회사에선 이걸 people management 역량이라고 부른다), 이도 저도 아니면 윗선 대신 손에 피를 묻혀 주거나 분위기라도 살려 줄 잔 재주라도 있는 사람들 (회사에선 이걸 interpersonal skill - 대인 관계 역량이라고 부른다)로 이뤄진 사람들이다.

- 결국은 승자 독식. 수평 조직을 지향한다는 조직/회사도 의사 결정 기구 (board / 임원진)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최고 결정 책임자 (ceo)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의사 결정 기구에 있는 사람들이 쉽고 명확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 주는 승자가 그 게임 (회사)에서 주는 상금 (승진과 연봉 인상, 인센티브)를 독식할 것이다.


한 회사에 같이 입사한 10명의 동기들이 있다고 치자. 처음에는 동기모임이다 하면서, 갓 취업 경쟁을 뚫은 승리자의 기분을 같이 만끽하며 아 이것이 동료애구나 할 것이다.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동기 모임을 가지면서, 나를 괴롭히는 상사, 협조 해 주지 않는 옆 부서 대리/과장들을 성토하며, 역시 동기 없는 회사 생활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구나 하며 내가 너 때문에 회사 다닌다, 를 술 먹을 때마다 시전 할 것이다.

나는 엑셀을 잘 못해서 상사에게 맨날 깨지는데, 엑셀 피봇의 신인 동기 덕에 보고서 제출 시간을 앞당기고 나면 동기 사랑이 마음속에 확 박히며, 그래, 내가 회사를 떠나도 동기들만은 남겠구나 하며 회사에 생긴 내편들에 대해 뿌듯해할 것이다.

동기들 중 위에 기술한 “최정예 부대”로 선발되어 먼저 승진한 자 (또는 윗선의 낙점을 받은 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윗사람들 입장에선 자, 이제부터 재미있는 게임 시작이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들과 과제들에 이들을 투여해 보면서 평가를 시작한다. 윗사람들끼리의 주간 회의에는 업무 얘기는 최대 50%, 나머지 50%는 조직, 즉 사람에 대한 얘기이다. 누가 문제이고 누가 일을 잘하고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드러내 놓고 얘기하진 않는다. 부서장들도 조직원이기 때문에 본인 부서원들을 “띄워야” 하는 의무가 있는 동시에 다른 부서장들과도 “갈등 없이 잘 지내면서도 나의 두각을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간접적 화법으로 이런 논의들은 이뤄지게 마련이다.


윗선들은 이런 공식적 자리를 통해 아랫 직원들에 대한 평가, 즉 누구를 최정예 부대로 남길 것인가를 논의하는 “파워”를 제도적으로 갖고 있지만, 요즘은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을 영리하게 찾았다. “블라인드” “잡플래닛” 같은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기업 평가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여기서 형성되는 여론, 의견들이 회사의 결정에 미치는 제도적 파워를 갖고 있진 않지만, 기업 이름은 실명으로 공개되고 2차, 3차 확산이 가능한 디지털의 특성상, 이곳에서의 의견들도 이젠 회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갖게 되었다. (모 대기업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블라인드에 직원들이 올린 글을 정리해서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갑분싸 보고가 정례화되었다고 한다. 임원들도 사람인지라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받고 그야말로 갑분싸 된다고)


이렇게 위로 (블라인드, 잡플래닛을 통해 직원들이 위를), 아래로 (고과 평가와 임무 부여를 통한 평가로 윗선에서 아래를), 옆으로 (어제는 동기였으나 오늘은 가장 빨리 물리쳐야 할 경쟁자가 된) 경쟁과 평가, 반목과 오해, 각종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조직원들이 단합하여 만들어 내는 대상들이 있다. 어느 조직이건 양상이 비슷한데, 이 대상들을 만들어 내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표면적인 짧은 평화가 찾아온다. 그 대상들은:

1. 메시아: 대개 조직이 골로 가고 있을 때 (매출 하락, 점유율 또는 이익률 하락 등 대부분 실적 하락으로 인해 서로 죽일 듯 싸우고 있을 때), 서로 싸우다 지친 조직원들은 메시아를 기다린다. 외국계 회사의 경우엔 경질된 현 expat사장이 가고 나면 새 expat 사장은 매출도 이익률도 올려 주고 팀 스피릿도 극강으로 끌고 갈 완벽한 존재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아마도 오너의 한 말씀을 기다리지 않을까?

2. 잔다르크: 메시아가 빨리 당도할 가능성이 적거나, 메시아가 다른 것에 신경 쓰느라 우리 조직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면 조직은 이내 조직 안에서 잔다르크 역할을 해 줄 사람을 물색한다. 대개 임원이나 팀장들 중 가장 만만한 사람 (나이가 어리거나, 여자이거나 - 통계상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조직의 수장을 여자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무리 투수라고나 할까. 그리고 마무리 투수는 마무리를 제대로 하면 본전, 제대로 못하면 독박이다)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모아지며 그 사람을 프로트 라인으로 조금씩 푸시한다. “우리 중에서 가장 의견을 솔직하게 내시잖아요” “지금 상황을 본사에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상무님 뿐이에요” 왠지 모를 의무감에 “그래, 내가 이 위기를 타파해서 나의 리더십으로 우리 조직을 구하겠어” 하고 나서 보지만… 잔다르크의 결말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으로 화형 당했다.

3. 마녀/빌런: 잔다르크는 그래도 처음엔 성녀로서 조직을 구원할 사람이라는 타이틀이라도 붙지만, 마녀는 처음부터 마녀이다. 사실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을 때 가장 만들기 쉬운 존재가 마녀이다. 저 사람은 성격이 이상해서, 능력이 없어서, 리더십이 없어서, 마이크로 매니징만 일삼아서, 책임감이 없어서, 협업을 못해서.. 마녀/빌런으로 만들 이유는 이천오백억 개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조직은 이분법 논리와 레이블링을 좋아해서, “누구누구는 리더십이 없어 문제” “누구누구는 협업이 문제”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 사실과 상관없이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조직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메시아도, 잔다르크도, 마녀/빌런도 아닐 거란 착각.

만약 저 3개 중 하나라면 그래도 나는 메시아나 잔다르크일 거란 착각.

회사와의 계약관계에서 그저 을일 뿐인 대다수 우리는 마녀/빌런이 되어 보지 않고 조직생활을 끝내는 경우란 없을 것이며, 그나마 메시아/잔다르크는 오너이거나, 오너에게 낙점받은 특수한 몇 명의 - 오징어 게임에서의 주인공 이정재 같은- 운 좋은 사람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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