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시대, 왜 기업은 직원 몰입도 조사를 더욱 중시하게 되었나
2000년대 초, Y2K의 불확실성을 지나 맞은 새 천년의 시대, 전 세계는 21세기 샴페인 버블과 어울리는 닷컴 버블로 새 시대를 축하했다. 뒤 이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닷컴 버블의 전 세계적 붕괴와 함께 장기 침체를 가져왔고 기업의 수장들은 너도 나도 “비전 2020”을 만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직원들이 근면 성실하게 충성하면 2020에는 장밋빛 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달콤한 약속과 j curve 성장을 약속했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겠지. 2020년이 전 세계 인류가 모두 잊고 싶은 재앙의 해가 될 줄은. 그런데 이런 재앙의 해가 가져다준 뜻밖의 기회가 있으니 - 물론 이런 기회가 올 것이라고도 아무도 예상 못했겠지 - 78억이 넘는 사람이 같은 위기 (코로나 바이러스)를 동시에 겪으며 각종 생리적, 사회적, 문화인류학적, 경제학적 실험을 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런 다양한 실험 기회 중 나를 비롯한 직장인들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재택근무’ 아닐까 싶다. (물론 기업의 오너이거나 ceo라면 코로나로 예상과 달리 떨어지거나 오른 매출이 가장 와닿는 실험이겠지만 이건 공감하기가 어려워서)
2020년 설날 이후 (그때까지만 해도 우한 독감이라 불리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대표들과 인사부 헤드들은 거대한 눈치보기 게임에 들어갔다. (누가 먼저 1을 외칠 것이냐)
유형 1. 동종 업계 다른 기업들의 동향 파악: 문제는 수건 돌리기처럼 누구도 먼저 나서서 “기준”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인사부는 매일 다른 회사 재택근무 기준 모니터링하느라 업무만 더 추가됨.
유형 2.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라 (aka 정부 눈치가 보이니) 재택근무를 시행하지만, 집에서도 사무실에서와 “동일한” 업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하는 윗전들이 있는 곳. IT부서는 전 직원 메신저 및 줌 설치 및 줌 미팅 교육하느라 업무가 또 추가됨. 아침 9시에 모두가 줌 카메라를 켜고 안녕하세요 점호를 한 웃픈 이야기.
유형 3. ‘자발적인’ 규정을 만들고자 임원진이 모였으나, 재택근무에 대한 각자의 상반된 취향만 확인하며 서로 빈정 상하는 회의만 반복한 또 다른 웃픈 이야기.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재택근무하기 싫은 재경부 헤드와, 본인이 필요할 때 직원을 바로 불러 눈앞에 대령시켜야 하는 대표와, 나는 재택근무를 원하는 젊은 직원들을 잘 이해하는 멋진 윗전이고 싶은 영업부 헤드의 재택근무 주장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대면회의만 하고 같이 식사하다가 결국 코로나에 걸렸다는 웃픈 이야기.
아무튼 왜 이렇게 코로나가 가져온 재택근무에 대한 썰이 길었냐 하면, 대표와 윗선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짧고 긴 재택 근무를 해 온지 만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대개 조직적 실험이라는 것이 아무리 파격적이라고 해 봐야 길어야 6개월 정도 실험을 하는데, 만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조직적 근무를 하는 곳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해 온 것이다. 재택근무를 오래 하다 보면, 적응의 동물인 인간은 그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적응과정을 거치며 생각해 낸다.
현업 직원들: “vpn과 와이파이, 노트북만 있어도 업무가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한 날 한 시에 같은 공간에 출근하면서 얼굴 대하기 싫은 사람들과도 하루 8시간씩 거짓 친목을 도모해야 할까? 일하는 곳이 회사인데 이렇게 원격으로 일만 해도 능률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나 뭐 하고 있나 매번 체크하는 윗사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부탁하는 윗사람 없으니 능률이 더 오르는데?” “출퇴근 시간 아끼고 점심 같이 먹으러 가지 않아도 되니 취미를 즐기거나 투잡을 해도 되겠는데?” “굳이 회사에 충성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데?”
관리자들: “회사에 정시에 출근해서 바쁜 척하고 팀원들 관리하고 보고서 취합하는 걸로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해 왔는데 이렇게 원격으로 일하니 너무 불안한데? 내가 일하고 있다는 걸 윗 분들에게 어떻게 알리지?” “직원들 내가 안 본다고 메신저 온라인 상태로 해 놓고 딴짓하는 거 아니야?” “회식을 못하니까 온라인 치맥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유행이라고 뉴스에 나오던데” “이런 위기 상황에도 나처럼 회사를 생각하는 걸 우리 직원들도 배워야 할 텐데”
재택근무를 하며 하게 된 새로운 생각들 중, 현업 직원들과 관리자들의 생각이 가장 다른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직원들의 “더 이상 회사에 매이지 않아도 되겠는데?” vs 관리자들의 “위기 상황에도 회사를 생각하는 나”. 하지만 조직의 미래를 책임지고 사업을 키워 나갈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현재의 관리자들이 아니라 현업 직원들이다. 그리고 이런 직원들이 더 이상 회사 업무에 몰입하지 않고 최선 (관리자가 보기에)을 다하지 않는 상황은 의식이 깨어 있는 경영인들에겐 눈앞에 닥친 새로운 위기일 것이다.
예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더더욱 대부분의 기업에서 (오래된 재벌 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외국계 기업이든) 직원들의 몰입도 조사에 열을 올린다. 왜 최근 들어 이런 추세가 더욱 심화되었을까?
근거는 매우 희박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
80년대: 서구든 동아시아든, ‘기업’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평생직장은 가능했다. 조직에 충성하면 최소 중산층의 삶 (내 집, 내 자동차, 자녀들의 고둥 교육)이 가능했다. (은행 이자가 최소 15%이던 시대였으니 월급만 따박따박 모아도 인생에 큰 변수는 없었을 것이다). 충성하는 조직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재화와 고용 안정성만 부여하면 되기에 직원의 몰입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관리자가 조직을 장악하고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데 도움이 되는 직원 단합회/체육대회라면 몰라도.
90년대: 세기말의 염세주의가 조금씩 퍼지고 있었고 우리나라에도 IMF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긴 했지만 그래도 고학력과 스펙을 만들어 줄 열정이 있으면 계층 이동이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7-80년대처럼 고시를 패스하고 부잣집에 장가를 들거나, 의대를 나와서 열쇠를 세 개 받고 결혼한다는 통념도 먹히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충성하며 줄을 잘 서면 회사원의 별이라는 임원을 꿈꿔볼 수 있었다. (임원이 되면 난초 가득한 방과 비서, 기사가 패키지로 제공된다) 기업은 미래의 임원이 되기 위해 충성을 다할 ‘미래의 인재들’을 좋은 대학에서 잘 선발해서 데리고 오면 그다음은 스펙 좋은 직원들이 알아서 회사에 올인했기 때문에 굳이 몰입도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좋은 인재가 미래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면 되었을 터였다.
2000년대: 위에 언급한 닷컴 버블 붕괴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문직들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다. 기업의 임원을 꿈꾸며 회사 입사를 해야 하는 인재들이 아예 의대, 법대 (지금은 의전원, 로스쿨)로 대거 방향을 선회하던 시대. (서울대 공대보다 지방의 의대가 더 들어가기 어려워진 첫 시대가 아니었을까) 좋은 인재들이 기업에 들어오는 것이 앞으로는 쉽지 않겠디는 경각심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지만 8-90년대에 열정과 충성으로 그 자리까지 가신 윗전들은 이런 현상을 세대 차이로 치부해 버리거나 (요즘 젊은이들은…), 선구적인 기업들은 직원들의 몰입도가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 연구를 시작한 기업들은 아마 2022년인 지금엔 많은 데이터와 경험이 쌓이지 않았을까.
2010년대-지금: 충성과 열정도, 노력으로 이룬 고 스펙도 가상화폐 투자나 주식, 타고난 금수저를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는 이런 현상을 더욱 앞당긴 것 같다. 비전 2020을 세울 때만 해도 2020년이 코로나로 우리를 이렇게 엿 먹일 줄 몰랐던 바로 그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설상가상으로 시중 통화가 많이 풀리면서 고정 자산인 부동산에 돈이 더욱 몰리게 되었고 이제는 회사에 대한 충성이나 노력으로 이룬 고 스펙보다는 부모님 캐시나 가상화폐 투자 실현 이익금이 아니면 내 집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이자 디지털 네이티브인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재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당장은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과 월세 렌트비가 있어 회사에 다니지만, 이 회사에 뼈를 갈아 넣었을 때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 했을 때) 40이 넘어, 그것도 0.8% 확률밖에 되지 않는 임원이 되었을 때 내 손에 쥐어지는 돈으로 백세 시대를 안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40대에 임원 되면 50 되기 전에는 떠나야 할 텐데?) 아니면 회사에서는 해야 할 일만 하고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 다른 소득원 (주식, 가상 화폐, 유튜버…)로 실제 이익을 챙길 것인가.
누가 봐도 후자가 아닐까? 요즘은 임원이 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들도 늘어 나는 추세라고 하니까 말이다.
내 영혼과 충성을 담보로 잡혀 봐야 이제 더 이상 기업은 중산층의 삶을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성장을 위해서는 인재의 영입과 그들의 조직 몰입도는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기업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비즈니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관리자들은 매년 하는 직원 몰입도 조사를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까.
피해야 할 자세: 단순히 스코어를 시장 점유율 분석하듯 등락폭만 보는 것 / 다른 부서와 내 부서의 스코어를 비교하며 자괴감이나 우월감에 빠지는 것 / 몰입도 조사의 이면을 보지 않고, 이 항목은 퇴사한 직원들의 입김이 세서 낮은 것이고, 이 항목은 다른 부서도 같은 문제라고 정신 승리하는 것
바람직한 자세: 스코어 이면의 인사이트를 읽고, 진지하고 겸하 하게 받아들일 것 / 누구보다 리더가, 관리자가 최전방에서 진지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 / 직원들이 몰입도 조사를 계기로 솔직하게 의견과 감정을 얘기할 수 있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 합의된 액션 플랜을 정기적으로 트랙킹 하면서 같이 논의하는 것
불확실성의 사회이든, 확실성의 사회이든, 결국 조직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조직”에 대한 믿음 아닐까. 그리고 리더라면 이런 믿음을 조직원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거의 유일무이한 리더의 할 일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