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야만의 사회에 대하여
22.10.29 밤 10:30. 아들이 영상을 보여줬다 “엄마 이거 봐. 지금 이태원이래”
수십 명의 사람들이 cpr을 받고 있는 영상.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가장 소식이 빠른 트위터와 틱톡을 열어보았고, 이태원에 군중이 몰려 넘어지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있다는 소식이었다.
새벽 1시까지 모니터링을 했고 guardian 지에 crowd crush기사가 난 걸 본 순간, 단순 사고가 아닌 거란 걸 직감했다.
바로 회사에 알리고 보고하고 팀원들의 안전 확인 후 인사부에 전 코리아 직원 안위 확인 요청을 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 평균 연령이 30세다)
인앱 아웃 앱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느라 비상 연락을 돌리고 본사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사상자 숫자는 늘어만 갔다.
일요일 새벽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속보를 보며 정신없이 회사 직원들 안위와 비즈니스 조치를 취하고 돌아보니,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좌절이 밀려왔다.
너무나도 황망하게, 그저 1년에 하루, 좁은 이태원 길에서만 주어지는 코스튬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젊은 생명들이 어처구니없게 떠난 2022년 10월 29일.
그런데 우리에겐 기시감이 있다. 8년 전 2014.4.16 수학여행길에 오른 304명의 아이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낸 그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시스템도 사회도 언론도 정부도 뭐하나 나아진 것 없이, 아니 오히려 도태되었다.
세월호 때처럼 정치 쟁론에 희생이 될까 두려워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쁜 못난 사람들.
그러게 서양 명절 챙기느라 왜 거기까지 갔냐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사람들.
휴우 나도 이태원 갈 뻔했는데 안 가서 다행이라며 발랄한 핼러윈 사진 올리는 사람들.
종특이라고 한정 짓기엔 그냥 너무 좌절이다.
그리고 깨달은 것.
세월호 희생자들의 친구 세대들이 8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 희생자들의 연령대이다.
한 세대에게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는 처절한 반성으로도 절대 채워 줄 수 없는 20대의 상실감.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를 겪고도 수십 년에 걸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과연, k뽕에 빠져 자랑스러워할 만한 시민의식 수준인가.
여전히 나만 아니면 돼. 내 주변 사람들만 아니면 돼. 하고 안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어린아이들에게도 가르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라고.
비인간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한국 사회. 숨 막힐 만큼 혐오스럽다.
나는 잘하는데 남이 문제.
나만 아니면 돼 로 가득 찬 공감능력 결여의 사회.
문명의 시작이, 인간과 유인원을 가른 지점이 ‘공감’의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린 아직도 비문명,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이태원 참사까지 ‘나만 아니면 돼’로 묵과하고 지나간다면 우리는 모두 야만인이다.
‘근조’가 쓰인 리본조차 못 달게 하는 애도기간이라니. 눈 가리고 아웅 하며 to do list 체크하는 정치인들. 경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