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지나 지천명, 나는 하늘의 뜻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74년생.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세대’로 불린 첫번째 세대. 80년대 컬러 티비와 주한 미군 방송, FM라디오, 핫뮤직, 스크린과 함께 10대를 보내고, 90년대 배낭여행, 이스트팩과 챔피언 후드티, 게스 청바지와 폴로 티셔츠 그리고 락카페부터 청담동 카페 1세대였던 하루에까지 경험한 X세대.
일반 전화기와 삐삐, 시티폰, 벽돌 핸드폰, PCS (아시는 분?) 부터 모토로라 레이저폰, 엘지 프라다폰과 초콜렛폰, 아이폰, 아이패드와 맥북까지 경험한 유일한 세대.
LP, 카세트 테이프, CD, MP3 를 지나 스트리밍으로 이어지는 음악 서비스들을 다 경험한 세대.
압구정 로데오 거리와 방배동 카페 골목을 장악했던 카페 보디가드에서 삐삐를 기다리고, 청담동 플라스틱 카페에서 어제 소개팅했던 남자 얘기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돋보기 없이는 힙스터 카페 메뉴판 읽기도 어렵고 성수동 핫플에 가면 괜히 뻘쭘해지는 세대.
그럼에도 라떼 이즈 홀스를 시전하거나 아재 개그, 아줌마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는 늙은 꼰대가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며 전전긍긍하는 나이.
응답하라 시리즈 나올 때마다 내 얘기같아 괜히 먹먹해 하고, 슈가맨 볼때 마다 올불 하며 추억에 눈물 글썽이지만 혹시나 시대에 뒤처질까봐 신곡도 새로 나온 드라마도 열심히 찾아 듣고 보는 나이. (아마도 x세대가 20대이던 시절, 칙칙해 보였던 40대가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닐까 불안한 심리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핸드폰에 꽃 사진, 풍경 사진이 많아지고 카톡 프사에 ‘늘 지금처럼’ 감성 글귀를 쓰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중년.
그런데 정말, 나는 지천명이라는 50대를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떤 50대가 멋있는 걸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언니 오빠들의 50대는 술과 담배가 만들어 준 무너진 턱선과 나온 배를 하고 옛 영화를 후배들에게 팔고 있는 남자 연예인들 아니면 탄수화물을 완전 끊은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예전만 못한 몸매와 그로 인해 불안해 하는 눈빛과 태도만 남은 여자 연예인들뿐. 아니면 재산이나 자리가 모두라서 그걸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50대 남녀들 뿐.
지나온 날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해 하고 나눌 줄 알며, 그동안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큰 실수를 한 것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사죄할 줄 알며, 앞으로도 무엇이든 계속 배워 나갈 의지와 마음의 여유가 있으며, 이룬 것들을 정리하고 후배들에게 물려 줄 준비를 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30~50년의 인생을 현명하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 그런 50대를 찾아 배우고 싶다.
아니다, 그런 50대를 못 찾았다면 내가 그런 50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골똘히 생각해 볼 차례이다.
나는.
아직도 힙합을 좋아하고. 반스 스니커즈에 조거 팬츠, 무톤 코트에 스냅백을 쓰는 걸 좋아하고. 호텔 레스토랑보다는 가로수길 골목 슬라이스 피자집을 좋아하고.
투팍을 사랑하지만 로직을 재발견했고, 비서와 기사를 제공한다는 잡 오퍼는 너무 부담스럽고 혼자서 일정 조정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2년 뒤 아들이 성년이 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엄마 잔소리가 아직도 와 닿지 않아서 연말엔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사이트를 드나들고.
일찍 일어나야지 다짐하면서도 지금도 새벽 2시까지 글을 쓰고 있는, 아직도 한심한 47세. 지천명은 무슨,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옛날 사람들은 50세에 하늘의 뜻을 다 알았다는데 나는 왜 아직도 내 생활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