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컬처와 동북아 컬처는 어쩌면 상극
요즘의 판교어 또는 대기업 언어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직장인들 대화는 이런 식이다.
“로스님 - 위계질서를 없애기 위해 직급을 붙여 부르지 않고 “님”을 붙여 부르긴 했지만 김운형 상무님을 하루아침에 운형님이라고 부르기엔 우리 안에 뿌리내린 k유교의 단단함이 생각보다 강한 탓에 궁여지책으로 판교에선 토종 한국인이지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외에 영어 이름도 갖고 있는 판교인이 다수이다. 영어 이름의 어원은 주로 즐겨 보는 외화 시리즈 (여자 판교인의 경우 레이첼이나 모니카를 선택하려면 부지런함은 필수! )나 외국 연예인이 대부분이다 - 과 이번에 삼육공 피드백 사이클이라 싱크를 잡아야 하는데 너무 프레셔야. 작년 까지는 메모로 작성해서 시스템에 올리면 됐는데 올해는 메모도 쓰고 꼭 싱크도 인 퍼슨으로 하라고 하니. 일도 바빠 죽겠는데 잇 이즈 쏘 어노잉! “
에이미 님의 하소연을 듣고 있던 소피아님 (이 분은 영어 이름이 세례명이라 뭔가 더 정통성이 있는 느낌이다)이 한숨을 쉬며 답한다.
“내 매니저는 피드‘백’이 아니라 피드 ‘포워드’를 하래나. 어디서 또 리더십 세미나 같은 것 듣고 왔나 봐. 피드백받는 것도 힘들지만 윗사람에게 피드백 주는 건 진짜 트릭키해. 인 퍼슨으로 하면 또 넌버벌 랭귀지가 80%잖아. 피드백 주래서 주는데 듣는 매니저가 언컴포터블한 표정 지으면 더 프레셔 받아서 말도 더듬고.. “
에이미 님은 또 이렇게 받아친다.
“나도 지난번 사이클 때 그래서 우리 매니저가 나한테 피드백 줄 때 묘하게 복수하는 느낌이었다니까. 그래서 HR에 조언을 구했더니, 특히 윗사람에게 피드백할 때는 써서 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야 감정이나 컨버세이션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줘야 할 피드백을 끝까지 다 줄 수 있다고. 그래도 피드백을 줄 때는 꼭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팩트 베이스로 하라고 하는데, 난 매니저에게 할 때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 대부분 내가 섭섭했던 적만 생각나고 그게 사실인 것 같은데 매니저는 아닐 수도 있잖아”.
소피아님은 걱정이 더 생긴 눈치다.
“히유.. 피드백 사이클만 되면 너무 스트레스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주변에 보면 피드백 사이클 직전에 선거 운동 하듯이 웃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잘하고 절대 흠 잡힐 행동 안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뭐 저렇게까지 정치적이어야 되나 싶었는데, 피드백 사이클 지나고 보면 그 사람은 기버로도 리시버로도 다 평가가 엄청 좋았데! 피드백도 결국 일처럼 눈치껏 해야 하는 건지.. ”
에이미 님도 거든다.
“윗사람에게 피드백받으면 솔직히 그게 퍼포먼스랑 연결되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이잖아? 그리고 윗사람에게 피드백 줄 때도 그래. 첨엔 정말 매니저가 이 점만은 고쳐줬음 하는 바람으로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아무리 수평 조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나 봐. 이런 점은 고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피드백하고 나서 그땐 서로 웃으며 방을 나갔는데 그다음부터 사이가 더 서먹해졌다니까… 그리고 매니저가 내가 준 피드백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다른 팀원들도 피드백 줄텐데 내 피드백만 받아들이진 않겠지… 그럼 피드백 세션 이거 왜 하냐? 시간만 들고 사이도 서먹해지고… 우리나라엔 안 맞는 거 아냐?”
어쩌면 에이미 님이 포인트가 있는 얘기를 한 건지도 모른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까지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선 느 어쩌면 “피드백 문화”라는 것 자체가 잘 맞지 않는 옷일 수 있다. 동북아인들은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도 밝혔듯 - 집단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근면, 성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책임감을 강조하는 문화가 익숙하다. 집단의 성과를 위해 조직원들은 늘 완벽을 추구하고 그를 향해 근면하고 성실하게 달리며 중간 점검도 해야 하기에 중간중간 과업에 대한 지적과 수정은 필수이다. 말하자면 스파르타식인 것이다. 칭찬에는 인색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대신, 집단이 성과를 만들면 집단의 성과가 곧 개인의 성과와 명예가 된다. 삼성전자, 현대 자동차, 바이트댄스, 미쓰비시 등 회사 이름과 오너 경영인들은 어느 정도 알려 있지만 현재 CEO 나 스타 C 레벨은 조직적으로 장려하지 않는 동북아 회사들과는 반대로, 애플, 테슬라, 구글, 메타 등은 CEO와 C레벨들의 리더쉽과 스타성읋 전략적으로 장려한다.
동북아의 언어와 문화는 또한 굉장히 함축적 (하이 콘텍스트 문화)이기 때문에, 예스가 예스가 아니고 노가 노가 아닌 상황들이 자주 발생한다. 이런 문화에서 피드백까지 주고받으려면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와 뉘앙스까지 골라서 그리고 언어 이외의 랭귀지까지 신경 써가면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조직원들에게 부가적인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어차피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직원은 고과로 평가를 해서 불이익을 주고 잘하는 직원은 더 나은 보수와 승진으로 보상을 주니 말보다 행동이라는 것이 동북아 회사들의 문화 아닐까.
반면 서구의 경우, 현재 미완인 것을 받아들이고 같이 만들어가자는 식이다 보니, 아무래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기대를 공유하는 것은 꼭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게 되니까. 개개인의 다른 점을 존중하라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고 자란 (특히 미국) 서구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작은 성과라도 칭찬하는 환경에서 자라 온 경우가 많다. (you are so special!) 하지만 개인으로서 반짝거림을 조직에 가지고 와서 모두가 자기 식대로 빛나기만 한다면 조직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을 터이다. 그래서 서구 회사들이 조직의 비전을 강조하고 그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 같다. 예리하고 가끔은 충격이 되는 피드백 (“당신이 이 점을 고치지 않으면 당신 팀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 힘들겠어요”) 을 주고받지 않으면 루즈해지기 십상이니까. 피드백으로 구성원들이 자기 성찰과 타이트한 관리를 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피드백이 필요할까? 세대가 바뀌고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고 구성원도 한국인만이 아닌 다양하게 이뤄진 지금은 피드백을 통해 구성원들이 더 성찰하고 성장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사회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피드백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한국이든 서구이든 어떤 나라이든, 피드백의 본질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때 당신이 이래서 내가 섭섭하고 힘들었다” 가 아닌, “당신의 이런 점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우리 팀의 퍼포먼스에 이렇게 영향을 주었으니 이렇게 해보면 좋겠다” - 즉,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한 말인지, 꼭 필요한 말인지, 그리고 상대방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내용인지 생각하고 감정적인 언어를 가급적 배제하고 전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