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의 내용과 포장
몇 년 전, 직장인들을 물론, 씨 레벨 (욕 아님)들에게 교과서처럼 읽혔던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Reed Hastings)의 책 ‘규칙 없음 (No rules rules)’.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 테크 회사를 일군 성공한 기업가이자, 일잘러들만 모인다는 넷플릭스를 있게 한 기업문화가 궁금한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읽었던 책이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회사답게 넷플릭스 기업 문화를 완성하기까지의 시행착오는 물론이고 노하우까지 자세하게 케이스와 함께 기록해 놓아서 특히 국내 대기업에서 임원 리더십 교육 교재로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업 문화가 2-3일 교육한다고, 쎄오가 특별히 TF팀 만든다고 막 갑자기 만들어지고 그런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이 ‘규칙 없음’에서 자랑스럽게 역설하는 넷플릭스 문화 중 하나가 “피드백 문화” 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거의 인민재판인가 싶을 정도로 지위 고하 막론하고 피드백 세션이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회사 규모가 많이 커진 지금도 같은 방법을 고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회사 문화의 핵심인만큼 어떤 식으로든 계승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듣다 보면 ’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 ’아니 그땐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 ’ 너나 잘하세요 ‘ ’또 시작이네 ‘ ’ 지난번 일로 복수하는 거군 ‘ 이런 말풍선이 머릿속에서 팍팍 터지는 피드백.
하닫 보면 ‘아 내가 괜히 피드백 준다 그랬나’ ‘내가 뭐라고 이런 피드백을 주고 있나’ ‘내가 이런 피드백한다고 나 엿먹이는 건 아니겠지’ ‘아 얘기하다 보니 열받네’ ‘어라 말이 꼬이네 어쩌지’ 이렇게 나도 모르게 미궁으로 빠져 버리게 하는 피드백.
그런데 이런 피드백을 넷플릭스에서는 한 달에 한번, 올핸즈 미팅에서 누구든 손을 들고 창업자이자 씨이오인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바로 줄 수도 있고, 이메일로도 줄 수 있는데 많은 직원들이 실제로 엄청 샤프한 피드백들을 많이 했고 물론 상처가 된 피드백도 없진 않았지만 이런 피드백들을 통해 지금의 넷플릭스를 있게 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물론이고,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도 혼자만의 생각으로 인한 오류에 빠지지 않고 자율과 책임을 실천하는 문화로 잘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피드백 문화의 핵심은 4A, 즉 Aim to Assist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 Actionable (상대방이 피드백을 듣고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제시), Appreciate (피드백을 받는 사람은 시간을 내어 피드백을 주는 사람에게 꼭 감사할 것 - 피드백 내용을 떠나-), Accept or discard (피드백을 받은 사람은 그 피드백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를 잘 판단한 후 스스로 결정)인데 이걸 보면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피드백은 상대방이 시간을 들여 나에게 주는 선물이니, 그 선물이 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간에 그걸 고마워해야 한다. 받은 뒤 그 선물을 지금 사용할지, 나중에 사용할지, 간직할지 등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굳이 알릴 필요 없이 내가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물을 볼 때마다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겠지. 반대로 내가 준 선물 (피드백)을 상대방이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잘 사용하길 바란다면, 선물을 고를 때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상대방이 무엇이 필요한지, 어쩌면 의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필요할 수 있는 선물을 하려면 상대방에 대해 정말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선물을 줄 때는 포장도 중요한데, 피드백이라는 선물의 포장이 받는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선물 자체 (피드백 내용)는 맘에 드는데, 포장이 너무 거칠고 투박한 나머지 (말투, 표정, 사용하는 단어 등) 선물을 풀어보고 싶은 마음조차 들게 하지 않는 포장이라면 문제가 있을 터. 이런 경우엔 선물을 하겠다고 (피드백을 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선물 자체 (피드백 내용)에만 집중한 나머지 - 또는 선물을 주는 나에 너무 심취했을 지도- 어떤 포장 (피드백을 전달하는 톤과 단어)을 선택해야 할지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원인일 터.
하지만 현명한 피드백 리시버라면 포장이 맘에 안 든다고 귀한 내용물인 선물(피드백)을 열어 보지도 않고 팽개치거나 (말투와 단어에 격앙되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피드백을 다 듣기도 전에 감정적으로 폭발해 버리거나) 대충 받고 풀어보지도 않고 처박아 두지 (뉘예 뉘예 알겠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않을 것이다.
‘아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데 (피드백을 주고 싶은데) 자기 딴에는 고민한 포장 방식 (피드백 전달 방식)이 좀 별로구나’ 까지만 생각하고 빨리 그 포장 (톤, 표정, 사용하는 단어 등)을 마음속으로 먼저 필터링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핵심만 남겨야 한다.
그래도 그 포장이 너무 거칠어서 나에게 나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면? 그 자리에서 의미 없는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그 자리를 떠나서 기록으로 남겨 둔 다음 시간이 지난 뒤 (상처가 아문 뒤) 다시 돌아보고 내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피드백을 준 사람에게 가서 솔직히 얘기하면 된다. ‘그때 피드백은 너무 고마웠는데 전달하는 방식에 제가 상처를 받아 충격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주신 피드백들이 제게 너무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어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또 피드백을 주시게 된다면 방법만 재고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할 것 같아요’
그래도 포장이 너무 거칠어서 나를 계속 찌른다면? 그땐 내가 피드백 기버가 되어서 그 사람에게 피드백 방식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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