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버전 영어버전 따로 있음
한 동안 짤로 유행했던 “넵“ 상황별 변주 시리즈를 아는지.
이메일마저도 느려진 요즘,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슬랙 같은 오피스 챗도 활성화되었지만 예전부터 사내 메신저도 많이 쓰고 있다. 주로 지시나 요청을 받은 “아랫사람들” 또는 동료라 하더라도 뭔가 헤게모니가 약한 쪽에서는 대답을 주로 하게 되는데, 가장 간단한 대답인 ”네“가 변주되기 시작한 것. 하이 콘텍스트 사회인 우리나라답게 상냥하게 맥이는 버전과 대놓고 맥이는 버전, 감정 없음 버전 등 여러 가지로 발전했다.
넵. 넵넵. 네넵. 넵! 넵~ 네. 네… 넹 넴. 자 이 다양한 변주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맞춰들 보시길. 그리고 당신이 저 대답을 듣는 입장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지도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특히 네. 하고 마침표 하나만 찍은 “네.“ 대답에 ”음, 내 지시나 부탁을 잘 이해했군 “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흔한 오피스 꼰대를 넘어 선사시대 사람일 터.
(치트키: 이 글에 삽입된 이미지 차트 참조)
자 그럼, 여러 명과 미팅할 때 표현하는 내용들과 실제 뜻을 살펴보자. 주로 1:1 미팅보다는 다자간 미팅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들이며, 대면 미팅이든 화상 미팅이든 상관없으나 대면 미팅에서는 이 표현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나 미묘한 동공의 움직임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상 미팅에선 주로 카메라를 끄고 참석하기 때문에 더욱 진의를 읽기 어렵다)
각각의 용례를 한글, 영어 순으로 적은 뒤 그 뜻을 한글로 적겠다. (혹시라도 그 뜻에 대해 반박 있을 시 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이해했습니다 / noted = 알겠으니까 했던 말 또 하지 말아 주셈
좋은 질문입니다 / that’s a grerat question =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질문할 때임?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 that’s interesting = 당신 지금 상황 판단 안 되지?
너무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파킹해 두시지요 / that’s a brilliant idea, let’s put that into a parking lot = 다음에 또 그런 허접 아이디어 내면 가만 안 두겠음
동의합니다. 제가 부연 설명을 좀 드리자면 / 100%, let me elaborate a little bit = 네가 한 얘기 다 틀렸거든. 사람들아 내가 정정해 줄게
오늘 회의 정말 생산적이었습니다 / today’s meeting was so fruitful = 오늘도 미팅이 산으로 갔군. 누구 때문인진 다들 알죠?
이 프로젝트의 리더인 분의 결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 project leader’s opinion matters = 모르겠고, 그냥 미팅 주최자인 당신이 알아서 정리할 거지?
요즘처럼 팀워크, 화합, 최고의 동료, 공감, 생산성, 기민함 (agility)가 실제로 중요한 기업 환경에서 쌍팔년도처럼 고성으로 싸우면서 의견을 피력했다간 바로 소셜 미디어에 등극함과 동시에 인사부의 부름을 받고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경영진, 관리자, 직원들 중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란 매 순간 크고 작은 결정을 해야 하고, 요즘처럼 다면적인 - multifaceted - 기업 환경에서는 소수의 결정이 아닌, 여러 이해 관계자들 -stakeholders-이 모여 회의를 통해 빠르고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화합하는, 협력적인 팀워크 - cohesive team- 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회의에서 외교적 언어 -diplomatic language-를 사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행간의 의미를 잘 읽으려면 비즈니스 랭귀지 감수성 -business language sensitivity- 를 키워야 하는데, 행간의 의미 (즉 눈치)를 읽는 것에 뱃속에서부터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사실 잘 맞는 역량일 텐데 왜 실제에선 아직도 비즈니스 랭귀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어쩌면 너무 외교적이어서 핑퐁만 하다 보니 누구든 용감하게 결론을 지을 -break the tie-사람이 내가 되기는 싫은 생각을 대부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