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리뷰: 연극 <오이디푸스 (황정민 주연)>를 보고
연극 <오이디푸스>를 본 지가 꽤 되었다. 리뷰를 쓴다고 생각만 하고서는 쓰지 못했지만 오늘은 과제 하나를 없애는 기분으로 써본다. 정말 좋은 연극이었기에.
https://1boon.kakao.com/interparkplay/181217A
연극<오이디푸스>를 보게 된 것은 우연히 본 포스터 때문이었다. 단지 강렬한 눈빛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클릭을 해보았다. 배우 황정민이었다. 한층 더 흥미가 생긴 나는 상세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들은 한 인간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신탁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지만 결국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H0-YE-jP3U
부은 발 오이디푸스
본디 오이디푸스의 뜻은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멀리, 사랑하는 사람들오부터 멀리 도망을 간다. 걷고 또 걷고 뛰고 또 뛴다. 발이 부르터도 멈추지 않는다.
이름은 부모로부터 받은 최초의 저주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처럼 끝없이 걸어 새로운 땅에 정착했다. 자신이 최대한 멀리 떨어지면 가족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연극의 초반은 신탁을 받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예언자를 찾아간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알려달라고 울부짖는다. 예언자는 오이디푸스에게 “진정 운명의 화살을 당기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이 말은 신탁을 모르고 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이디푸스는 아는 쪽을 선택했고 불길한 신탁을 듣고 말았다. 그리고 이 신탁을 굳게 믿은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로 걷고 뛰며 먼 길을 떠난다.
스스로가 만든 저주
운명의 삼거리에서 한 무리와 마주친 오이디푸스. 이 무리들이 “썩 물렀거라, 이 더러운 놈!”이라며 오이디푸스를 내쫓는다.
난 더러운 놈이 아니야!
오이디푸스는 머리를 싸매며 이 무리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더러운 놈”이라고 소리치자 화를 참지 못하고 무리를 모두 살해한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신탁을 믿지 않았다면, 자신을 ‘더러운 운명’을 타고난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사람을 죽일 정도의 분노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가슴 속 깊이 자신은 ‘더러운 운명을 타고난 더러운 자’라고 믿고 있었고, 그 무리는 오이디푸스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연극 말미에 자신이 죽인 삼거리의 우주머리가 자신의 아버지인 걸 알게 되는 오이디푸스.
어쩌면 그가 신탁을 믿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어쩌면 자신이 불행하고 더러운 존재라는 인식만 없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스스로가 믿은 저주따라 자신을 파괴시키고 만다.
불행한 호기심 그리고 통제 욕구
운명의 삼거리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은 오이디푸스의 집착에 가까운 호기심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자신이 운명을 통제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이제 그만하세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결국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는 자살을 택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욕구로 결국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신을 대신하려고한 오이디푸스의 오만함에 신이 벌을 내린 것 같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는 스스로 불행한 운명을 선택해나간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신탁을 듣기로 결정한 것도, 그것을 믿기로 선택한 것도, 끝까지 확인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모두 그의 선택들이었다. 결국은 그의 선택들이 그의 운명을 만든 것이다.
사람은 생각하는대로 산다고 했던가. 자신이 불행한 운명이라 굳게 믿었던 오이디푸스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어쩌면 불행한 예언을 듣지 않고 믿지 않고 살았다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예언자같은 존재들이 주위에 있다. 우리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부정적인 예측부터 하는 사람들 말이다. 부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말보다 훨씬 강력하다. 부정적인 말을 듣고 믿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상응하는 작은 선택들을 하고야 만다. 긍정적인 끝을 믿는 사람과 부정적인 끝을 믿는 사람은 작은 선택들이 달라져 결국 운명이 달라진다. 그러니 우리는 단호하게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들을 쳐낼 수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배우 황정민
마지막으로 배우 황정민에게 찬사를 보낸다. 연극을 보는 내내 황정민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흔히 듣는 연극 톤이 아닌 영화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말투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듣던 독특한 어투에 풍부한 성량, 대사의 완급조절, 과하지 않은 마임이 더해져 황정민만의 오이디푸스가 탄생했다. 보여지는 연기가 아닌 내면적인 연기라고 느껴지는 멋진 연기였다. 다시 볼 수 있다면 꼭 재관람하고 싶다. 배우 황정민에게 박수를.
2019년 07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