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기: 재회
오늘은 오랜만에 막내 숙모를 뵈었다. 평소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였다. 저번 주부터 한두 번씩 안부 문자가 오시더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명절에도 뵙지 않는 숙모를 서울에서 만나다니. 참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하고, 걱정을 하였다가 나중에는 무슨 할 말이 있으신가 하고 신경이 곤두서고는 했다.
막내 숙모는 본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다. 흔히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밝은 톤의 목소리와 웃는 얼굴상, 가끔 던지는 농담조의 말투까지 말이다. 막내 숙모를 깊이 알 지는 못하지만, 대략 그런 느낌이다.
결국 오늘 막내 숙모를 만났다. 안양에서 잠실까지 오신다고 했다. 더욱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다니. 정말 큰일이 있으신 건가. 그래도 오시겠다니 어쩌겠는가.
언니가 막내 숙모를 먼저 만나 월드 몰 식당가에 자리를 잡았다. 늦게 도착한 나는 식사 자리에 합류했다. 막내 숙모의 얼굴을 보니, 잠깐 안도가 되었다. 안색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을 빼신다고 작은 반창고가 몇 개 얼굴에 붙어 있었다. 그래, 점을 빼실 정도면 무슨 일이 있으시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밥을 먹으며 이러저러한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대부분은 결혼 생활은 어려운 거라는 등, 결혼은 굳이 안 해도 되지 않냐라는 등 같은 얘기였다. 밥을 마시고 차를 마시러 가서야 오늘 오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엄마였다.
엄마가 꿈에 나오셨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우리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셨다. 엄마가 왠지 "우리 애들 좀 챙겨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보며 엄마를 참 닮아간다고 말하셨다. 젊었을 적 얼굴은 내가 거의 알지를 못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닮는 모양이었다. 막내 숙모는 오빠 결혼식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휠체어에 있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막내 숙모도 엄마가 그립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생전에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빠는 바쁘고, 자식들은 타지에서 공부하고, 이모들이 오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다. 자주 사람들이 오긴 했지만, 거의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보면,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새삼 엄마가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을 챙기고, 배려하고, 나눠주는 것이 엄마의 본성이었다. 엄마는 늘 그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중심으로 모든 오해도, 나쁜 모습들도 와해되어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다. 난 자리가 큰 사람이라고 하던가.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리에게 연락이 오는 사람들을 보면, 엄마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지 싶다. 생전에 엄마가 알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분명 주위 사람들에게 따듯함의 씨앗을 많이 뿌려주었던 것 같다. 그 씨앗들이 점점 자라나 엄마에게 돌려주고픈 따듯함을 우리에게 대신 전해줄 때가 많다.
막내 숙모의 어머니도 아프시다 했다. 그러면서 그 일을 일찍 겪은 우리가 참 안쓰럽기도 대견하다고도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를 더 만나고 싶으셨다고도 했다. 결국 죽음이라는 매개체가 다시 우리를 재회하게 한 것이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특히 엄마의 죽음은 그 여파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 과정을 겪을 막내 숙모를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영원히 살면 좋겠지만, 죽음이 있기에 어쩌면 감사함이 더 커지는 걸 수도 있다.
오늘의 재회는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끝이 났다.
모두가 그리워하는 우리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2019년 02월 22일 금요일
제목: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