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편

선라이즈가 없는 선라이즈 호텔

by SUN KIM


제주도에서는 전복죽

배가 고팠다. 세화바다 풍경으로 배가 채워지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제주도에 왔으면 전복죽을 먹어봐야지'라며 '오조 해녀의 집'을 찾아 갔다. 오조 해녀의 집은 꽤 컸다. 한적한 편이었고, 단체 손님이 두 팀 있었다. 혼자 온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열심히 보시던 어머님 중 한 분이 두리번 거리던 나에게 다가와 주문을 받으셨다. 제주도 바람처럼 재빠르게 상이 차려졌다.



"이거 일인분 반찬이에요..?"


반찬의 양이 어마어마 했다. 다른 사람이 올 거라고 착각하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머님은 1인분이라고 친절히 일러주셨으나 그 푸짐함에 놀랄 뿐이었다. 추천 맛집 답게, 전복죽에는 커다랗게 쓱쓱 썬 전복 살들이 알차게 들어 있었고, 전복내장을 넉넉히 넣어 끓여낸 깊은 맛이 났다. 진하고 순수한 맛이 감탄을 자아냈다.


함께 나온 반찬도 '여기가 제주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처음 본 해조류 무침은 물론이거니와 감으로 만든 반찬도 있었다. 감을 반찬으로 먹어본 것은 처음이나, 지금도 그 맛을 있을 수가 없다. 심심하고 시원한 그 맛을 내는 조리법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으나 감 반찬을 홀린듯이 먹어 치웠다. 결국 반찬까지 홀랑 다 비웠다.


도에 넘치는 커다란 전복죽과 여러 반찬그릇까지 발우공양하듯 깨끗이 비워졌다. 그 순간 이상하리마치 따뜻한 어머님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혼자 잘 먹어서 놀라셨나보다. 그런 시선엔 아주 익숙하다. 이럴 때는 최대한 예의바르고 밝게 계산을 한 다음 얼른 식당을 빠져나오는게 제일이다.


성산일출봉 전기차 충전소

숙소로 출발하려는 차에 차 계기판을 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출발할 때보다 배터리가 20% 정도 줄어 들어 있었다. 분명 150km라고 그랬는데. 불안한 마음에 충전을 처음 시도해보기로 했다.


참고로, 전기차 충전소 앱을 다운 받으면 제주도 충전소들의 위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단, 전기차 충전소를 찾을 때 주의해야 한다. 해당 차의 충전방식을 지원하는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닛산 리프는 충전기 CHAdeMo(차데모)라는 급속 충전기가 구비되어 있는 곳에서 충전할 수 있다.


다행히 성산일출봉 주차장 안에 충전소가 있었다. 급하게 찾아간 주차장은 엄청나게 넓으나 불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충전 시간이 40분이라니..차 안에 혼자 있기는 너무 어둡고 무서웠다. 그 때, 주차장 끄트머리에 파리바게뜨 가게가 보였다. 구원을 받은 느낌으로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 어둠 속을 총총 걸어 나갔다.


주위가 어두우니 문득 혼자라는 게 실감이 났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려움이 고독을 일깨워 주다니.


혼자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 얼마나 고독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강박증상이 있는 내담자들이 이런 기분일테지라고 생각하며 종종걸음으로 어둠을 해치고 밝은 매장에 들어섰다. 안도감이 들었다.


2층짜리 건물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뭔가 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크림빵을 하나 집어들었다. 피곤해보이는 주인장에게 괜히 눈치가 보여 아메리카노도 함께 주문했다. 서울이나 제주나 사장님들이 함든건 마찬가지구나. 아무도 없는 넓은 2층이 내 세상이 되었으나 얼른 숙소에 가고 싶은 마음만 더 컸다. 조급증이 왔는지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며 기다리다 40분 '땡' 하자마자 일어섰다. 다 충전이 되었겠지!


이럴수가. 그단세 누가 충전기를 빼 놓았다.


충전 상태는 고작 10%가 오른 65% 였다. 내일 하루종일 돌아다녀야 할텐데. 큰일이었다. 그렇다고 파리바게트를 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둠 속에서 또 다시 고독감을 누리며 대기하느니 아침 일찍 나와 다시 충전하는 편을 선택했다. 결국 마음 한 구석이 석연치 않은 상태로 숙소로 향했다.



성산일출봉과 '선라이즈'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데일리앱으로 예약한 '선라이즈'라는 호텔이었다. 선라이즈. 성산일출봉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결정한 터였다. 물론, 가격이 한 몫했다. 베이커리 카페가 1층에 있다는 사실이 두 몫을 했지만.



호텔 내부는 깨끗하고 방도 생각보다 좋았다. 분명히 성산일출봉이 보인다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밤이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보니 조금 낮은 건물들만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맹세코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프론트이지요? 혹시 제가 예약한 방이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방인가요..?"

"네! 그럼요. 아침이 되면 보이실 겁니다."

전화너머로 들린 매니저님의 말투는 단호했다. 건실해 보였던 매니저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아침에 보이겠지.


포기 속도가 LTE인 나는 씻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다음날 동선을 확인하고자 <나홀로 제주> 전자책을 켰다. 침대에 엎드린 채 제주 남동부에서 가고 싶은 곳을 적기 시작했다. 성산일출봉, 우도, 섭지코지, 김영갑 갤러리, 신천목장, 쇠소깍. 너무 많다. 특히 제주에 있는 특색있는 카페들을 소개하는 내용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카페코지, 서연의 집, 제주 테라로사...너무 많다.여러 후보지를 정해놓고 동선을 따라가면서 시간별로 그때 그때 결정하기로 했다.


여행의 묘미는 여백이니까.


문제는 동선을 다 짰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살짝 잠이 들었다 깨고 나서는 잠이 통 오지를 않았다. 배가 고파서일까. 설레어서일까. 몸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일어나서 긴바지로 갈아입었다. 새벽 2시가 되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기행문을 쓰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편을 계속 써내려 가다보니 5시가 다 되어 갔다.


몸은 계속 간지러웠다. 아무래도 시트의 문제인 것 같았다. 세탁을 안 했거나, 세탁이 잘못 되었겠지. 결국은 이불을 반으로 접어 침낭처럼 몸을 돌돌 말아 누웠다. 내 살결이 이불 청결도에 예민하다는 사실을 새벽 6시에 깨닫다니. 나에 대해 하나는 확실히 알았으니 이번 여행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난 그 새벽에 옷을 껴입고 온 몸을 시트로부터 격리시킨 다음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8시.

해가 떴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다. 어제 밤에 보였던 낮은 건물만 잔뜩 보였다.


'속았군....' 시트와 전망 사건이 겹치니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는 사실이 더이상 나에게 장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1-2=-1'이 아니던가.

성산일출봉이 보이지 않는 선라이즈 호텔이라니. 선라이즈가 없는 선라이즈 호텔이었다.


그럼 이제, 진짜 선라이즈를 보러 가야지 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참고로, 예약할 당시 이 호텔은 리뷰가 굉장히 좋았던 곳입니다. 개인적인 리뷰이니 과도한 일반화는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호텔에 악의적인 감정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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